단편 - 10
지금까지 걸어온 길들을 떠올려본다. 어려운 현재와 불안한 미래를 헤쳐 나가며 뒤에 남겨 놓은 과거들을 다시 한번 바라본다. 생각보다 먼 곳까지 이어져있다. 그곳에 지평선이 있다면, 분명 그 너머에도 과거들이 늘어져 있을 것이다.
나는 뒤를 향해 몸을 돌린다. 내가 걸어온 길, 지나쳐 온 현재, 걱정했던 미래들이 다시금 실감된다. 수 없이 많은 모노리스 덩어리들에 장면의 파편들이 오밀조밀 박혀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모노리스를 확인해 본다. 앞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나의 모습, 그러다 갑자기 멈춰 선 나의 모습, 그리고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는 나의 모습이 세겨져 있다. 나는 그 모습을 손으로 직접 만져 본다. 매끈한 대리석이거나 잘 연마된 강철 같은 촉감이 내 손을 타고 온몸으로 흘러 들어온다. 서늘함에 몸이 떨려왔다. 무의식적인 두려움이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활짝 피어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무엇이 두려운가? 나는 왜 과거의 장면을 하나하나 다시 보고, 느끼는 것을 본능적으로 싫어하는가? 내 실수는 영원히 파헤쳐지면 안 되는 것이어서인가? 지금의 나보다 성숙하지 못한 모습을 직면해서인가?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는 의심을 심을 수 있어서인가? 다시는 바라보기 싫은 끔찍한 무언가인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지금 내가 볼 수 있는 이 모노리스들은 최소한 내가 다시 봐야 한다고 무의식이 판단한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다면 진즉에 형태도 없이 사라졌을 테니까. 다시 볼 필요가 없는 기록물은 시간의 흐름에 흘려보내면 되니까. 그저 그렇게 지나 보내면 되는 거니까.
기억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나는 내 기억을 직면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그 모노리스들을 더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끔찍함, 차가움, 역함, 작열통, 답답함, 분노, 우울, 체념. 모든 것은 결국 내가 가진 것이고, 내가 품고 가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이 모든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렇게 나는 기억의 흔적들을 더듬으며, 본래 가던 방향과 반대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내가 앞만 보고 나아갈 때처럼 눈앞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들을 떠올려본다. 내가 겪었던 수많은 일들이 떠오른다. 내가 현재와 미래라고 불렀던 그것은, 이제 내 과거가 되었고 기억 속에 영원히 남게 되었다.
나는 뒤를 향해 몸을 돌린다. 수많은 모노리스 덩어리들이 눈에 들어온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모노리스를 확인해 본다. 여러 색으로 뭉쳐진 희미한 장면만이, 그러나 은은한 온기가 느껴지는 형태가 세겨져 있다. 가장 최근에 느낀 감각이지만, 가장 멀게 느껴지는 것이기도 했다.
지금 분명 거울을 본다면 내 얼굴에는 희미하지만 확실한 미소가 떠올라 있으리라. 나는 기억의 흔적들을 느끼며, 본래 가던 방향과 반대로 나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