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이별, 연결

단편 - 9

by ForestOfApocrypha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직원의 명랑한 목소리가 내 등을 또렷이 두드렸다. 나는 느릿느릿 열리는 자동문을 지나 밖으로 나왔다. 1월의 차디찬 공기가 내 온몸을 휘감았다. 나는 단단히 낀 방한 장갑을 꽉 잡아당겼다. 그리곤 바퀴에 달린 손잡이를 천천히 밀어내기 시작했다. 어저께 내린 눈이 녹자마자 한파가 찾아와, 보도블록에는 얼음 조각들이 잔뜩 껴 있었다. 나름 착좌감이 좋은 휠체어임에도 미세한 얼음 요철들이 내 온몸을 진동시켰다. 옆의 도로는 제설을 계속해서인지 비가 온도로 처럼 눅눅함만이 감돌뿐, 매끈한 모습이었다. 가끔 지나가는 차들의 전조등이 그 반들반들함을 더욱 상기시켰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 쉬고는, 울퉁불퉁한 감성을 체념한 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나름 따뜻하게 입고가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집에 도착하니 온몸이 떨리고 있었다. 오는 길에 끊이지 않았던 요철들의 흔적 또한 남아 있어, 온몸을 근육통이 휘감는 느낌이기도 했다. 나는 현관에 휠체어를 대충 세워두고는, 집 안으로 기어들어 가기 시작했다. 마치 탈피하는 애벌레처럼 외투와 장갑들을 바닥에 구르며 훌렁 벗어 젖히곤 바로 화장실로 들어갔다. 본래 화장실이라면 바닥 타일 덕분에 냉찜질하겠지만, 매트를 크게 깔아놔 그나마 나은 상태였다. 나는 욕조 안으로 몸을 대충 밀어 넣고는 물을 틀었다. 순간 뜨거운 물이 나왔지만, 움직일 수 없는 발에 떨어져 고통을 속으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샤워가 다 끝나고 대충 주변을 정리한 뒤, 매트리스 위에 굴러 올라갔다. 마치 탈피한 애벌레에 껍질을 씌우는 것처럼, 이불에 몸을 돌돌 말아 매트리스 중앙에 몸을 멈춰 세웠다. 그리곤 몸을 비틀어 현관 쪽을 향하게 했다. 축축함을 뒤집어쓴 휠체어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자기 전에 항상 휠체어를 볼 수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리는 습관이 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단순히 마음의 안정을 얻는 것을 넘어 느껴지지 않는 따스함이 가슴 한쪽에 추가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었다. 예전에 큰맘 먹고 비싼 걸 사서 그런가, 오랫동안 사용해서 그런가, 오랫동안 탄 자동차에 애정을 가지는 사람의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빛바랜 가죽 좌판과 등받이, 군데군데 갈라진 플라스틱 부품들, 색이 바랜 프레임, 그나마 최근에 바꿔 깨끗했지만, 오늘 일로 인해 더러워진 바퀴까지. 휠체어를 이런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걸 제삼자가 본다면 지금보다도 더 이상한 취급을 할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내 이야기를 듣는다면 이해해 주리라고 생각했다. 오늘 나는, 저 휠체어와 마지막 밤을 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대의 발전으로 전날 밤에 오프라인 가게에서 시킨 물건을 다음날 점심에 받는 건 일상이 되었다. 그게 비록 비주류에, 무겁고, 크며, 꽤나 비싼 물건이라도 말이다. 항상 오는 택배 기사분은 나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번에도 소소한 사례와 대리 언박싱을 교환하기로 했다. 항상 조그마한 물건들만 시키는 내가 크고 무거운 걸 시키니 당황한 눈치였지만, 내용물을 보고는 완벽히 이해한 표정을 나에게 보여 주곤 떠났다. 새 휠체어는 말 그대로, 엄청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최신형 모델에 비싸기까지 하니(기함 급을 샀다), 당연한 모습이어야만 했다. 고급스러운 무관 카본 프레임에 밴들거림 하나 없는 고무와 플라스틱 부품들, 인체공학적이면서도 심미성을 챙긴 바퀴 손잡이, 2배 가까이 가벼운 무게까지. 항상 무겁게만 느껴지는 내 몸을 휠체어에 얹으면 조금이나마 가볍게 느꼈지만, 새 휠체어는 차원이 달랐다. 자전거는 그냥 이길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느껴질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새 휠체어에 적응하기 위해 동네 산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니, 현관이 너무나 비좁게 느껴졌다. 아직 예전에 타던 휠체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일단 내버려 두고 있기 때문이다. 새 휠체어의 훌륭한 주행 경험은 접어두고, 나는 휴대전화기를 꺼내 휠체어 처분법을 검색했다. 너무 오랫동안 한 휠체어를 탄지라, 어떻게 처리하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검색해 보니 폐기물 스티커를 사용하면 된다고 하여 새 휠체어 적응 훈련을 좀 더 해보자는 심리로 편의점을 향해 출발했다.

추운 겨울에도 온몸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정도의 힘을 쓰고 나서야, 예전 휠체어를 폐기물 주거지에 가져다 둘 수 있었다. 매트리스, 침대 프레임, 의자 따위와 같이 서 있는 휠체어를 보니 왜인지 모를 씁쓸함이 느껴졌다. 여전히 내가 자기 전에 보며 느꼈던 그 따스함, 애정은 마음속에 남아 살아갈 것이지만 영원한 헤어짐은 항상 마음이 편치 않은 것처럼. 나는 오랫동안 함께 한 자동차가 폐차되는 모습을 보는 것처럼 우두커니 옛 휠체어를 바라보다, 천천히 집을 향해 움직였다. 분명 겨울이고, 바람이 불지 않았지만, 집에 가는 내내 약간은 후덥지근한 바람이 내 등을 은은하게 두드리는 것이 느껴졌다.




휴대전화기가 요란하게 진동하는 소리와 함께 부스스 잠에서 깨어났다. 아침 6시 15분이었다. 평소 일어나던 시간보다 45분이나 빨랐다. 알람을 잘못 맞췄나 싶었지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온 것이었다. 나는 헛기침을 하며 목을 조금이라도 깨운 뒤,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 그, 혹시, 휠체어 버리신 분 맞죠?"

익숙하지 않은, 귀에 때려 박는 듯한 남성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휴대전화기를 귀에서 살짝 떨어뜨렸다.

"어떤 일 때문에 그러신가요?"
"아, 그, 이게, 그, 뭐냐..."

내가 느끼는 남성의 목소리만큼 지금 사건에 익숙지 않은 듯한 반응이었다. 계속 말을 절던 남성이 천천히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그, 휠체어가 여기서는 회수를 못 해요. 다른데 버리셔야 해."

이 무슨 소리인가, 매트리스 같은 거대한 물건은 잘만 실어 가던데. 나는 의문이 들었지만, 잠결에 정신이 없던 상태인지라 일단 얘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아... 그런가요? 그러면 어디에 버리면 될까요?"
"이거 그, 어디냐, 거기, 여기 말고 다른데, 알아요?"

알 턱이 없었다.

"혹시 어딘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남성이 말해준 곳은, 내가 원래 버리던 곳에서 어림잡아 10분은 더 가야 나오는 곳이었다.

"아니, 거기까지 제가 어떻게 가요. 그 휠체어 보시면 알겠지만 움직이기가 쉽지가 않아요."
"아니 택시, 그 택시 기사한테 부탁하면 되잖아요."

타인의 도움을 썩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좋지 못한 선택지였다. 애당초 그런 걸 잘했으면 버릴 때 어려움을 겪지도 않았다.

"아니 그... 아니에요. 제가 오늘 다시 가지러 가서 말씀해 주신 데에 버릴게요. 그럼 됐죠?"
"어, 그, 그렇게 하세요. 일단 여기에 놔둘게요."
"네 수고하세..."

내 형식뿐인 감사인사조차 다 듣지 않곤 전화를 끊어버렸다. 목소리와 잘 어울리는 성격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6시 30분이었다.

"... 30분 일찍 출근한다는 느낌으로."

나는 혼잣말을 구시렁거리며 천천히 몸을 침대 밖으로 끌고 나갔다.




한파가 온 겨울 아침은 끔찍이도 추웠다. 분명 며칠 전 휠체어를 주문하고 집에 갈 때 꼈던 방한 장갑도 손가락이 굳는 걸 막지 못할 정도였다. 나는 날씨에 연연하지 않는 휠체어에 부러움과 감사함을 느끼며 원래 옛 휠체어를 버렸던 곳에 도착했다. 어제같이 있던 폐기물 친구들은 다 사라지고, 혼자만 쓸쓸히 최후를 기다리고 있었다. 땀 흘리면 덜 춥겠지 하며 휠체어를 챙기려는데, 붙여둔 폐기물 스티커가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춥고 바람 불어서 떨어졌나 싶었지만, 찢어진 종이 자국이 눈에 띄었다. 세상에, 휠체어에 붙은 폐기물 스티커를 훔쳐가는 사람도 있다니. 각박한 사회에 혀를 끌끌 차며 옛 휠체어를 바라보았다. 예전에 버릴 때 느꼈던, 약간은 후덥지근한 바람이 이번에는 내 몸에서 휠체어 쪽으로 부는 느낌이 들었다. 그저 내가 오면서 땀을 약간 흘린 것일 수도 있지만, 왜인지 모를 확신이 들었다. 나는 한참 동안 옛 휠체어를 바라보았다. 휠체어도 나를 바라보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곤 확신했다. 나는 이 휠체어를, 집에 가지고 가야겠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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