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민영 May 13. 2024

힐링캠프에서 희망을 찾다

당뇨수치 460일 때 찾은 자연건강법으로 운영하는 힐링캠프!!!

부모님들은 7남매 모두가 음악 하기를 원하셨다. 그 당시 정트리오 3남매가 텔레비전을 틀면 여기저기서 나올 때였다. 부모님의 간절한 염원과 경제적 안정으로 인해 나는 시골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엄마 아버지의 성화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 당시 전교에서 피아노 배우는 유일한 아이였다. 남동생이 다니는 유치원 선생님 집에서 배우는 피아노는 너무나 재미가 없었다. 거짓말로 둘러대며 빠지기 일쑤였다.      


부모님의 바램대로 성악을 전공한 먼저간 둘째언니

로, 피아노, 7남매 중 세명이나 음악을 전공한 결과가 나왔다. 그 꿈 제대로 펼치지도 못하고 둘은 먼저 세상을 떠났지만



하지만 운명의 장난인 걸까? 사범대학교에서 영어를 전공하게 되었지만 결국 갑작스러운 언니의 죽음으로 언니가 운영하던 음악학원을 내가 떠맡게 되었다. 영어를 전공한 내가 음악학원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돌파구가 필요했다.


아마데우스클래스라는 창의적인 음악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이 프로그램 덕분에 음악학원으로 우뚝 서는 획기적인 시스템을 구축해 나갈 수 있었다.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아성을 만들게 되었다. 시스템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 지금도 시스템이 갖추어진 곳에서 사업을 하게 되었다.

 

1평짜리 칸막이 피아노 연습실에서 아이들을 탈출시키고 클래식 음악을 듣는 이의 감성에 맞게 활동하며 재미있게 음악을 접할 수 있게 했다. 다른 피아노 학원과 달리 교육비를 높게 받았음에도 대기자가 줄을 서게 되었다.


임대한 학원 건물 큰돈을 들여 수업 방식에 맞게 인테리어를 했다. 이것 또한 신의 한 수가 되어 활발하게 학원경영을 할 수 있었다.      


  

 학원과 어린이집을 운영하며 3층 건물을 구입해 1층에는 학원, 2층에는 어린이집, 3층에는 우리 가족이 사는 집으로 살면서 많은 아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반짝거리는 아이디어가 있다 보니 아이들은 점점 늘어났고 급기야 3층 거실에서도 관리 선생님 한 분을 둘 정도로 아이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다른 학원에 비해 교육비를 더 많이 받았음에도 대기인원이 생길 정도로 학원이 잘 됐다.      


무엇이든지 새롭게 시도하는 것을 좋아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바로 실행했다. 학원 아이들을 데리고 다양한 체험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에버랜드 등 놀이시설에 가서 줄 서서 기다리다 지치는 그러한 활동은 우리 아이들에게 시키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창의적으로 할 수 있는 활동으로 시작했던 천연염색하기, 도자기 만들기, 농사 체험도 했다.



남편이 주관하는 환경교육과 뗏목탐사 등을 통해 학부모님들과 유대관계도 돈독하게 하게 됐다. 이렇게 다양한 활동을 하다 보니 MBC 방송사에서도 촬영을 나올 정도로 항상 학원 아이들은 넘쳐나게 되었고 하는 학원마다 잘 되었다. 덕분에 아주 윤택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학원 가족 행사를 마무리하다 보면 항상 푸짐한 바비큐 파티를 열어 실컷 먹고 마시게 된다. 매주 수요일이 되면 학원은 파티다. 그중 제일 쉬운 것이 고기 구워주고 빈대떡 부쳐주고 과자 떡 푸짐하게 사서 먹이는 거였다.


단순당과 고지방이 가득한 파티!!! 

돈도 아끼지 않고 몇 년 동안 아이들을 위한다는 생각으로 나쁜 음식을 먹이는데 많은 돈을 지출했다. 육식이나 밀가루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먹거리를 주었다는 것이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나 무했었다.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면서도 나는 87kg이라는 몸무게를 유지했다. 항상 비싸게 주며 하는 다이어트에도 불구하고 요요로 힘겨워하고 있었결국, 30대 초반부터 먹기 시작한 당뇨약과 다양한 스트레스로 몸은 너무나 피폐해졌고 그럴수록 먹는 것으로 풀어나가기 일쑤였다.


당뇨약은 점차 많아지고 당이 잘 잘 잡히지 않자 병원에서는 살 뺄 것을 권고했다. 이래도 저래도 빠지지 않으니 두 동생과 함께 주사도 맞으러 다니고 천안에 있는 신경정신과에 가서 다이어트약도 먹고 카복시라는 주사로 이산화탄소를 맞으면 지방이 깨진다고 하여 열심히 맞으러 다니기도 했다. 물론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서 식품도 먹었으나 그때뿐이었다.     




이런 노력에도 살은 빠지지 않으니 성주와 용운이 두 친구의 권유로 함께 산에 다니기 시작했다. 계절에 상관없이 매주 평택 천안 아산 인근의 산을 거의 다니는 산 마니아가 됐다. 점차 함께 다니는 친구들이 늘어나게 되었고 내 살도 점차 빠지기 시작해 72kg까지 내려오게 되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침에만 먹었던 당뇨약을 저녁까지 먹게 되었다. 약의 양도 많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때는 과도한 운동이 내 몸을 더욱 차게 만든다는 자연의 이치를 몰랐었다.      


  

높은 산을 다니니 호흡은 가빠졌고 코로 숨 쉬지 않고 입으로 쉬는 호흡 방식으로 내 몸속은 더욱 차디차게 바뀌어 가는지를 몰랐다. 그뿐인가 산에 갈라치면 냉동실에 물 맥주를 얼렸다. 시원하다 못해 머리가 깨지는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차가운 것만 찾았다. 그런 하나하나의 상황들이 나를 병들게 하는 줄은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만큼 자연의 이치를 몰랐다. 지금도 나와 같은 우를 범하는 분들이 많아서 그런 분들에게 나의 어려웠던 건강상황을 알려주고 가장 기본이라도 지킬 것을 안내하려 한다.     


나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다 보니 두 달 동안 고혈당으로 병원을 오가게 됐다. 병원에서는 인슐린 맞을 것을 권고했고 인슐린 주사 놓는 연습을 시키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아버지의 인슐린 쇼크사를 경험한 나로서는 인슐린 맞는다는 것이 결국 나를 죽이는 길임을 알고 있었기에 여러 방면으로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마침 산에 함께 다니며 나의 건강을 많이 신경 써 주었던 친구 성주 덕분에 자연의 이치로 자연 건강법을 운영하는 곳에서 힐링 캠프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청주에서 여는 1박 2일 건강캠프를 가게 되었다.    

  

2018년 6월 24일 나 평생 잊을 수 없는 귀하고 감사한 날이 되었다. 내 그동안 살면서 정한 최고의 결정을 하는 날이 되었고 내 삶을 치유할 수 있는 희망을 보게 되었다. 힐링캠프에서는 내 스스로 할 수 있는 운동과 내 몸에 열 넣는 방법 그리고 미네랄의 중요성 강의를 통해 천일염 먹는 방법 그리고 음식의 종류 음식의 양 음식을 먹는 방법을 통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줬다.



나를 살리고

내 가족을 살리고

내 이웃을 살리는 가치 있는 일을

하게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39세 뇌경색으로 남동생 휠체어의 삶을 살게 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