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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와 간월암 사이, 민주주의를 보다

에피소드_9971

by 인또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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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월암. 작년 서해 여행에서 우연히 만난, 고요하고도 멋진 절경.


올해는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절친 가족과 함께 다시 찾았다.
한 차로 이동하다 보니, 길 위에서 정치 얘기가 불쑥 나왔다.
의외로 목소리가 커지고, 온도가 올라갔다.
왜일까? 우리는 각자 다른 정보의 강물 속에서 헤엄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알고리즘이 던져준 물살, 내가 속한 집단의 프레임, 그리고 그 너머 국가의 틀까지…
다양성은 존재하지만, 그 다양성을 ‘인정’하는 힘은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그때, 한 친구가 제안했다.
“가는 길에 수덕사 한번 들르자.”
내 계획에는 없던 코스였다. 하지만 수긍했고,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만약 직행했다면 결코 만나지 못했을 장면과 공기를, 우리는 손에 넣었다.
정치도 그렇다. 목적지로 직선 주행하는 리더십만이 능사가 아니다.
누군가의 제안으로 잠시 옆길로 들어설 수 있는 용기,
그게 민주주의를 살리는 숨구멍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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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를 보고 나서 또 한 번 궤도 수정.
마지막 코스였던 예산시장을 중간에 들르기로 모두 합의했다.
이 과정은 놀랍도록 민주적이었다. 의견은 자유롭게 오갔고, 모두가 합리성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정치에서는 왜 이런 합의가 어려울까?
아마도 즐거움과 행복은 나눌수록 배가되지만,
이익과 권력은 나누는 순간 제로섬이 되기 때문이리라.

예산시장은 기대보다 평범했다.
무더위 속에 음식의 맛도 반감됐다.
다시 간월암으로 향했지만, 작년의 강렬했던 감동은 사라지고 없었다.
달라진 건 풍경이 아니라, 그 사이 변한 나의 기억과 기대였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두 가지 생각이 맴돌았다.
첫째, 이 친구와 앞으로 더 멋진 인생을 살고 싶다는 다짐.
둘째, 젊은 세대와 함께 여행할 때는 ‘속도’보다 ‘공간과 시간의 질’을 준비해야 한다는 깨달음.
민주주의도 여행도, 목적지 만큼이나 ‘가는 길’이 만든 이야기가 중요하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서로 다른 의견이 나를 더 멀리 데려갈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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