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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삶, 급행열차에 몸을 싣다

에피소드_9970

by 인또삐

책 ‘공부란 무엇인가’ 에서 오늘 만난 텍스트.


목표지향적인 삶의 그림자에는, 누군가의 ‘노비’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이 숨어 있다


한국인의 삶을 비유하자면, 급행열차에 가장 가깝다.
승객은 창밖을 볼 여유도, 중간역에 잠시 내릴 용기도 없다.
오직 ‘더 빨리 목적지에 도착해야 한다’는 강박만이 모든 선택을 지배한다.

그러나 문제는 목적지가 무엇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데 있다.
누군가는 안정된 직장을, 누군가는 높은 연봉을, 또 다른 이는 화려한 지위를 목적지라 믿는다.
하지만 막상 먼저 도착한 사람을 보면 축하하기보다 의심부터 한다.
“저건 반칙 아니야?” “곧 무너지겠지.”
승객들은 서로를 응원하기보다, 목적지에서의 휴식조차 빼앗고 뒷담화로 시간을 채운다.


아이러니는, 이 불공정한 게임을 그 누구도 포기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뒤처지는 순간, 사회의 ‘노비’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모두를 다시 열차에 묶어둔다.
그래서 열차는 달린다. 점점 더 빠르게, 점점 더 숨가쁘게.

그러나 정작 질문은 단순하다.
“그 종착역에는 과연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가?”
혹은, “창밖 풍경을 한 번이라도 본 적 있는가?”

급행열차는 효율적이지만, 삶이 반드시 급행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중간역에서 내리는 용기, 잠시 창밖을 바라보는 느긋함이야말로
우리를 노비가 아닌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작은 반항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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