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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인, 맛보다 이야기를 삼키는 자

에피소드_9965

by 인또삐

오늘은 오랜만에 입에서 “지겹다”는 말이 절로 튀어나온 하루였다.


별일 없는 일상은 지루했고, 이상하게도 나는 그 지루함을 달래줄 무언가를 찾다가 평소 잘 보지 않던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를 기다리게 됐다. 저녁 6시 30분, 화면 속에 윤택이 등장하는 순간, 뜻밖에도 나는 작은 위안을 느꼈다. 단순한 TV 예능이 아니라, 지루한 일상과 대비되는 또 다른 삶의 방식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내가 이 프로그램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자연인의 인생 이야기다. 하나같이 굴곡진 사연들이지만, 모두 모양과 빛깔이 다르다. 다음으로 눈길이 가는 건 식사 장면이다. 도시에서도 흔한 메뉴일 수 있지만, 숲에서 직접 얻은 재료와 기억이 얽히며 전혀 다른 음식이 된다.


오늘 특히 내 시선을 붙든 건 “요리를 준비하는 과정이 너무 신나 보인다”는 점이었다. 다른 먹방이 맛의 순간에 집중한다면, 이 프로그램은 재료를 고르고 불을 지피는 과정 자체가 이미 이야기이고, 추억이고, 명상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우리도 식사를 준비하는 순간을 ‘육체적 노동’이 아니라 ‘스토리텔링’으로 바라보면 어떨까? 단순히 끼니를 때우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을 불러내고, 나의 오늘을 쌓아가는 시간으로 받아들인다면 식탁은 전혀 다른 공간이 될 것이다. 맛보다 더 오래 남는 건 결국 음식에 얹힌 이야기 아닐까.


오늘부터 나는 주방을 다르게 보려한다. 요리와 식사 준비를 더 이상 귀찮은 집안일로 보지 않겠다고. 그것은 명상이고, 추억을 만드는 의식이며, 나의 뱃속에 이야기를 저장하는 가장 인간적인 방식이다. “나는 무엇을 먹었는가?”가 아니라 “나는 어떤 이야기를 삼켰는가?”—앞으로 나의 식탁은 이 질문에 답하는 작은 철학의 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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