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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란 무엇인가?

에피소드_9957

by 인또삐

나이가 들수록 더 부지런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왜일까?

자연 속에서 나무는 태어난 자리에서 그대로 생을 마감한다.
흐르는 강물도, 불어오는 바람도, 그저 주어진 방향으로 흘러가며 끝을 맞는다.

그러나 인간만은 다르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바꾸려 하고, 유전자에 새겨진 수명을 넘어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살기를 원한다. 이 욕망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 힘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욕망과 가장 상반된 공간이 바로 ‘집’이다.


집은 본래 휴식처가 아니라 보호처였다. 해가 뜨면 집을 나서고, 해가 지면 위험을 피해 돌아오는 곳.
그러나 오늘날 집은 놀이터, 작업실, 휴식 공간, 심지어 세상의 대체물로 변했다. 집 안에서 모든 것이 가능해지면서 인간은 점점 더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햇볕을 덜 쬐고, 시야가 좁아지고, 몸은 둔해진다. 결국 소화가 무너지듯 삶의 리듬 전체가 흐트러진다.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문명의 발전이 늘 편리함의 축적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편리함은 언제나 역설을 낳았다. 농경이 풍요를 가져왔지만 질병과 전쟁도 함께 가져왔듯이, 오늘날의 집 역시 편리함을 주지만 몸과 마음을 점차 약하게 만든다.


고전에서도 이미 이 경고는 있었다. 『맹자』에는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려 하면 반드시 먼저 마음과 몸을 고생하게 한다(天將降大任於是人也, 必先苦其心志, 勞其筋骨).”는 구절이 있다.
몸을 쓰지 않고, 햇볕을 받지 않고, 바람과 부딪히지 않는다면 인간은 결국 스스로의 가능성을 좁혀버린다.


20대까지는 ‘무리’라는 단어가 용납된다. 체력이 받쳐주고, 회복력이 빠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무리의 흔적은 40대, 50대에 고스란히 청구서로 돌아온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안다. 건강은 저축이 아니라, 미리 당겨 쓰는 신용카드였음을.


그렇기에 나이가 들수록 더 부지런해야 한다.
부지런함은 단순히 게으르지 않음이 아니다. 햇볕을 향해 나서는 용기, 세상과 마주하려는 의지다.
집은 안식의 공간일 뿐, 삶의 전부가 될 수 없다. 집에 오래 머무를수록 몸은 약해지고 마음은 닫힌다.

결국 인간에게 집이란 ‘머무는 곳’이 아니라, 다시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잠시 머무는 항구일 뿐이다.


해가 뜨면 다시 나가야 하고, 몸을 움직여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자연을 거스르며 살아온 인간이 스스로의 삶을 지켜내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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