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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두 눈을 뜨고 사는 기분"

에피소드_9956

by 인또삐

두 개의 작별

이번 여름, 나는 두 개의 작별을 지켜봤다.

한 분은 정년퇴직으로 25년 교직생활을 마감하셨다. 축하 인사가 이어졌고, 모두가 "모범적인 마무리"라며 박수를 보냈다.

또 한 분은 명예퇴직을 택했다. 정년까지 8년이나 남았는데도. 주변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 굳이?" 하는 시선들이 따라다녔다.

그런데 이상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눈에는 명예퇴직을 택한 동료가 더 빛나 보였다.


처음으로 두 눈을 뜨고 사는 기분

명예퇴직을 택한 그를 한 달 후 다시 만났을 때의 일이다.

"어떻게 지내세요?"

평범한 안부 인사였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평범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 처음으로 두 눈을 다 뜨고 사는 것 같아."

그 말에는 23년 가까운 직장생활 동안 느껴보지 못한 해방감이 담겨 있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자유, 회의와 보고서에 얽매이지 않는 여유,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진짜 하고 싶었던 일들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

"매일 세 시간은 몸을 움직여요. 산책도 하고, 헬스도 하고. 그리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시간이 이렇게 행복할 줄 몰랐어요."

그의 얼굴에는 20대 청년 같은 설렘이 있었다.


정년까지 버텨야 하는 이유들

반면 정년퇴직을 선택한 동료는 어떨까.

마지막 몇 년간 그의 표정을 떠올려보면,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새로운 일에는 "나는 이제 손 놓을 사람"이라며 소극적이었다.

물론 이해한다. 정년까지 버티면 퇴직금도 더 받고, 연금도 많아진다. 무엇보다 안전하다. 예측 가능한 미래, 보장된 수입. 이것들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은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안전함의 대가는 무엇일까. 지루함? 권태? 아니면 '이미 끝난 사람'이라는 주변의 시선?


마지막 8년이 주는 것과 앗아가는 것

명예퇴직을 택한 동료가 포기한 8년.

그 8년은 확실히 많은 것을 의미한다. 안정적인 월급, 퇴직금의 증가, 사회적 지위의 유지. 하지만 그가 얻은 것은 그보다 클지도 모른다.

에너지가 남아 있을 때의 새로운 시작. 건강할 때의 도전. 아직 꿈꿀 수 있는 나이에서 맞는 제2의 인생.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다.


진짜 승자는 누구인가

사람들은 묻는다. 정년과 명퇴, 누가 더 현명한 선택인가?

하지만 내가 깨달은 건 이것이다. 중요한 건 '언제 떠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떠나느냐'다.

정년까지 기다렸다고 해서 모두가 행복한 노후를 보내는 것도 아니고, 명예퇴직을 택했다고 해서 모두가 성공적인 제2의 인생을 사는 것도 아니다.

진짜 승자는 자신의 선택에 확신을 가지고, 그 이후의 삶을 적극적으로 설계하는 사람이다.


나의 갈림길은 언제일까

언젠가 나도 그 갈림길에 설 것이다.

그때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안전한 정년을 택할까, 아니면 용기 있는 명예퇴직을 선택할까.

지금은 알 수 없다. 그때의 가정 상황, 건강 상태, 경제적 여건에 따라 달라질 테니까.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어떤 선택을 하든, 후회하지 않을 만큼 준비된 상태에서 결정하고 싶다는 것.


준비된 이별을 위해

명예퇴직을 택한 동료에게 물어봤다. "준비를 언제부터 하셨어요?"

그는 웃으며 답했다. "사실 20년 전부터요. 조금씩, 아주 조금씩."

건강 관리, 취미 개발, 인간관계의 다변화, 그리고 무엇보다 "직장인이 아닌 나"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 이 모든 것들이 그의 용감한 선택을 가능하게 했다.


오늘부터의 준비

나는 오늘부터 준비하기로 했다.

언제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모르지만, 그 순간이 왔을 때 당당할 수 있도록.

정년이든 명퇴든, 그것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도록.

진짜 승자가 되는 건 선택의 순간이 아니라, 그 이후의 매일매일에서 결정되는 것이니까.

"처음으로 두 눈을 다 뜨고 사는 기분"

언젠가 나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그리고 그때까지 오늘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살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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