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_9950
최근 절친과 나눈 대화가 오래 남았다. 그는 외동딸이 글로벌 인재로 자라길 바란다며 늘 교육에 대해 묻곤 한다. 나도 아들 하나를 둔 아버지로서, 그의 질문이 남 일 같지 않았다.
얼마 전 아들이 연금술사를 읽고는 갑자기 전화를 걸어왔다. 책의 한 구절에서 느낀 통찰을 공유하는데, 순간 나는 철학 강의를 듣는 줄 알았다. 단어, 해석, 문장, 심지어 삶의 의미까지… 그 5분의 대화는 감탄 그 자체였다. 나는 절친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말했다.
“아마도 저 아이가 이렇게 성장한 건, 고생을 직접 겪어봤기 때문일 거야.”
그러자 절친은 다른 시각을 내놓았다. 그는 자식만큼은 고생 없이 자라길 바란다고 했다. 남들이 다 누리는 것을 혼자 못할 때 생기는 좌절, 그 상처가 더 무섭다는 것이다. 순간 깨달았다. 고생의 정의는 세대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베이비붐 세대에게 고생은 ‘결핍’이었다. 밥 한 끼, 신발 한 켤레조차 귀하던 시절. X세대에게 고생은 ‘경쟁’이었다. 좋은 대학, 안정된 직장을 향한 줄다리기. MZ세대에게 고생은 ‘불확실성’이다. 취업해도, 결혼해도, 미래가 선명하지 않은 삶. 그렇다면 알파세대에게 고생은 무엇일까? 어쩌면 ‘원하는 것을 당장 얻지 못하는 경험’ 자체일지도 모른다. 디지털로 모든 것이 즉시 해결되는 시대에, 작은 불편도 그들에게는 새로운 고생이 된다.
나는 고생을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하고 싶은 것을 잠시 미루는 경험, 당연하게 얻어지는 것이 없음을 깨닫는 순간.”
예를 들어, 아이가 스스로 방을 정리하지 않으면 공간이 금세 어질러진다는 사실을 직접 경험하게 하는 것. 부모가 대신 나서서 해결해주지 않고 아이가 스스로 불편을 감당하도록 두는 것. 이것이 오늘날의 ‘작은 고생’이며, 그 과정을 통해 아이는 자기 삶을 책임지는 법을 배운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당장 모든 대화 속에서 꺼내는 것이 항상 적절한 것은 아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아이가 더 단단하게 성장하길 바란다면 지금 누리고 있는 풍요와 편안함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게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자녀에게 남겨줄 수 있는 ‘고생의 진짜 의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