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_9923
나이가 들수록 부모님의 대답은 자주 똑같다.
“괜찮아.”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그 ‘괜찮다’ 속에 불편함이 숨어 있다는 것을.
노인은 왜 자신의 병을 감추려 할까? 단순하다. 스스로를 약한 존재로 인정하기 싫어서다. 자식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고, 병원에 가서 번거로운 검사를 받는 것조차 귀찮다.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 “나는 여전히 잘 살고 있다.” 그러나 그 최면은 때때로 본질을 회피하는 방패가 된다.
자식의 마음은 다르다. 그저 부모가 하루에 조금 더 걷고, 음식을 가려 먹고, 건강을 챙겨주길 바랄 뿐이다. “내가 바라는 건 그저 오래 곁에 있어 주는 것”이라는 단순한 소망이다. 그런데도 부모는 왜 그 소망조차도 외면하는 걸까?
그 이유는 아마도 ‘존엄’ 때문이다. 늙어간다는 건 몸의 기능이 떨어지는 것만이 아니라, 내 존재의 존엄이 위협받는 과정이다. 그래서 병을 드러내는 건 단순히 의학적 문제가 아니라, 정체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고대 철학자들은 “늙음이란 병이 아니라 인간 조건의 일부”라고 했다. 그러니 노인이 병을 숨기는 것은 두려움이라기 보다, 마지막까지 스스로를 지키고 싶은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자식은 어떻게 응대해야 할까? 답은 강요가 아니라 공감이다. “걷기 운동 하세요”라는 지시 대신, 함께 산책을 나가 손을 잡아주는 것. 건강을 ‘해야 할 일’이 아니라 ‘같이 나누는 일상’으로 바꾸는 것. 그렇게 해야 부모는 비로소 체면을 내려놓고, 병을 숨기지 않고, 함께 늙어갈 용기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중요한 건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끝까지 존엄하게 지켜주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