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_9907
“엄마가 이상하다.”
짧은 한 통의 문자가 세상을 바꿔버린다.
방금 전까지는 평온했다. 일상적인 아침, 평소처럼 마신 커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시간. 그런데 한 마디 소식이 모든 색을 바꿔버린다. 그 전과 후의 세상은 결코 같지 않다.
부모의 건강 소식은 언제나 자식의 심장을 가장 먼저 붙잡는다.
최근 친구 어머니가 코로나로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리고 오늘 아침 어머니의 돌발 행동 속에서 ‘치매일지도 모른다’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알았다. “내가 믿고 기댔던 세상은 언제든 흔들릴 수 있구나.”
왜 자식은 부모의 건강 앞에서 속수무책일까?
그건 죽음이 두렵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실, 부모의 몸은 곧 우리의 기억이자 세계의 일부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듯 “인간은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 거울을 본다.” 부모는 우리가 가진 가장 오래된 거울이다. 그 거울이 금이 가기 시작하면, 우리는 자기 삶 전체가 흔들린다고 느낀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인간 뇌가 만들어내는 착각 때문이다. 부모의 고통을 떠올리면, 곧 나도 그 고통을 온전히 짊어져야 할 것만 같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세대 간 연결된 운명”을 느끼는 인간만의 능력이다. 하라리가 지적했듯, 인간은 홀로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가진다. 부모의 아픔이 나의 불안으로 번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언젠가 부모의 건강이 무너지는 순간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이 곧 우리의 삶까지 무너뜨리라는 신호는 아니다.
오히려 이 경험은 묻는다.
“너는 지금, 네가 사랑하는 사람의 오늘을 충분히 살아내고 있는가?”
그렇기에 나는 부모님께 꼭 말하고 싶다.
“제발 스스로 당신의 몸을 지켜주세요.”
자식의 사랑만으로는 부모의 건강을 대신 지킬 수 없다. 매일 규칙적으로 걷는 것, 가벼운 운동을 습관처럼 이어가는 것, 몸을 돌보는 작은 실천이 결국 우리 모두를 지키는 힘이 된다.
고전의 지혜는 늘 강조했다. ‘스스로 다스리는 자가 가장 강하다.’ 부모님이 스스로 건강을 다스릴 때, 자식의 불안도 한층 가벼워진다. 그리고 우리는 그제야 삶의 귀한 시간을 두려움이 아닌 감사로 채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