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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기름 한 숟가락이 세상을 바꾼다

에피소드_9902

by 인또삐

점심 한 끼가 이렇게 깊은 여운을 남길 줄은 정말 뜻밖이었다.

천안의 한 식당에서 마주한 들기름 육회비빔밥 이야기다.


식당 문을 열자마자,
사장님의 노련한 포스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자리 배정, 주문, 음식 — 일사불란했다.

메뉴는 단 하나.

게다가 하루 딱 104그릇만 판매한다는 문구가 눈길을 끈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신뢰가 쌓인다.

선택의 고민조차 필요 없다.


주문 후 5분.
1인용 쟁반이 눈앞에 놓였다.
밥, 국, 두 가지 반찬, 노른자 하나, 그리고 향기로운 들기름.
그 순간 이미 맛의 절반은 완성된 듯했다.


한 숟가락.
육회의 진한 풍미가 번졌다.
노른자의 고소함과 들기름의 묵직한 향,
단맛이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내가 단골로 다니던 집과는 전혀 다른 결.
새로운 조화로움이 입안에 작은 우주를 열었다.


역사학자는 “음식은 단순한 생존 수단이 아니라, 문명을 만든 힘”이라고 했다.
생각해보면, 한 끼 식사가 우리의 사고방식과 관계, 그리고 삶의 태도까지 바꿀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도 ‘잘 먹는 것’이 곧 ‘잘 사는 것’이라고 믿지 않았던가.

오늘의 들기름 육회비빔밥은 단순히 맛이 좋았다는 경험을 넘어,
내게 이렇게 속삭였다.
“낯선 조합 속에서 새로운 의미가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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