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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 배운 매너리즘 탈출법

에피소드_9898

by 인또삐

여행을 가면 우리는 습관처럼 일정을 빽빽하게 채운다.
이곳도 가야 하고, 저곳도 들러야 한다.
결국 하루가 직장 업무처럼 되어버린다.
즐거움 대신 피로가 쌓이고,
여행의 본래 목적은 사라진다.


여기에 또 하나, 체력의 문제가 있다.
장시간 이동, 빡빡한 일정.
그렇게 계획을 다 해치우다 보면
정작 목적지는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 된다.
그 장소에서 느껴야 할 여유와 호흡은 사라지고 만다.


나 역시 한때는 그런 여행을 했다.
가성비를 따지고,
쾌락을 소비하듯 일정표를 채웠다.
“이게 여행이지!”라며 다음을 또 계획했다.

그러다 어느 날, 여행을 다녀온 뒤
몸이 크게 앓아누웠다.
그때 생각했다.
“이건 내 몸에 대한 예의가 아니구나.”


그 이후로는 달라졌다.
하루에 하나, 많아야 두 가지.
그 장소의 풍경뿐 아니라
그곳 사람들의 삶과 리듬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여행했다.

그리고 알았다.
몸은 덜 지치고,
기억은 더 오래 남는다는 것을.


여행의 방식은 곧 삶의 방식이다.
하루에 다섯 가지를 소화하느라 지쳐가는 인생보다,
한두 가지를 깊게 음미하며 남기는 인생.
그 편이 훨씬 오래 간다.


매너리즘은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일상의 패턴이 단단히 굳어질 때 찾아온다.
그럴 땐 여행처럼,
하루에 단 한 가지를 바꾸는 용기가 필요하다.

작은 깨뜨림이 곧 삶의 새로운 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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