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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더 흥미로운 인생

에피소드_9896

by 인또삐

살다 보면 가장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사람이더라. 특히 부모와 자식. 부모는 자식을 위해 평생을 쏟아붓지만, 정작 자식은 “나 좀 그냥 내버려 둬요”라는 눈빛을 보내고, 자식은 부모를 사랑하지만 동시에 답답해 미칠 것 같아 한다. 나도 그 복잡한 줄다리기 속에 서 있다.


어릴 적엔 부모가 내 뜻을 몰라줄 때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아니, 내 마음 좀 들여다보면 안 되나? 가족인데.” 그런데 세월이 흘러 내가 부모가 되고 보니, 이번엔 내가 자식에게 그런 소리를 듣는다. “엄마(아빠), 제발 제 인생이에요.” 그럴 때면 참 묘하다. 부모와 자식은 분명 서로를 사랑하지만, 동시에 서로의 ‘계획’을 끊임없이 방해하는 존재 같으니 말이다.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 자신뿐이다.” 부모의 마음도, 자식의 마음도 내 뜻대로 조종할 수 없다는 얘기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상(無常)도 떠오른다. 마음은 늘 변하고, 관계는 흐른다. 그 흐름을 막아보려 하면 결국 상처만 남는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조금 더 따뜻한 해석을 내놓았다. 우리의 뜻보다 더 큰 뜻이 인생을 끌고 간다는 것이다. 자식이 내 기대와 다르게 자라나는 건 실패가 아니라, 그 아이가 자기만의 길을 가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부모와의 갈등조차 내 성장의 일부였듯이.


카뮈는 인생을 ‘부조리’라고 불렀다. 내 사랑이 자식에게는 잔소리로 들리고, 부모의 걱정이 나에겐 족쇄처럼 느껴질 때가 바로 그런 순간일 것이다. 하지만 카뮈는 그 부조리를 있는 그대로 껴안으라고 했다. 사실 생각해보면, 부모와 자식의 오해와 갈등이 아예 없다면 얼마나 밋밋하고 재미없을까? 가끔 삐걱거려야 그만큼 화해도 달콤하지 않은가.


이제는 조금 알겠다. 자식이 내 뜻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부모가 내 마음을 못 알아줘도 그게 사랑이 없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 뜻대로 되지 않는 순간들이야말로 내가 더 크게 사랑하고, 더 넓게 이해할 기회를 주고 있다는 걸 말이다.


인생은 내가 미리 써둔 대본대로만 흘러가는 연극이 아니다. 그래서 때로는 황당하고, 때로는 웃기고, 가끔은 눈물 나지만… 그 모든 예측 불가능함이 인생을 ‘살 만한 이야기’로 만들어준다. 이제는 묻는다. “왜 내 뜻대로 되지 않을까?” 대신,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이 순간을 어떻게 즐길 수 있을까?”라고.


생각해보면, 뜻대로 안 되는 게 꼭 나쁜 건 아니다. 부모와 자식, 그리고 인생 전체가 내 마음대로 안 되어서, 덕분에 나는 매일 조금씩 더 성장하고, 조금은 더 유연해지고, 가끔은 더 크게 웃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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