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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보다 더 슬픈 문자

에피소드_9887

by 인또삐

추석 당일이었다.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하나 도착했다.
잠시 망설이다 열어본 그 안엔
믿기 힘든 소식이 담겨 있었다.

8월, 나의 오랜 친구가 암으로 수술을 받았고,
겨우 고비를 넘겼지만
10월 초, 폐렴으로 중환자실에 있다는 소식이었다.
호흡기를 단 채 사투를 벌이고 있다고 했다.

처음엔 실감이 나지 않았다.
“설마, 그 친구가?”
언제나 유쾌했고, 누구보다 삶에 밝았던 사람이었다.
그가 병상에 누워 있다는 상상이 도무지 되지 않았다.

그날 하루, 나의 일상은 무너졌다.
명절의 소란도, 거리의 불빛도 모두 흐려졌다.
“나는 지금 친구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친구의 아내에게 짧은 위로의 문자를 보냈다.
그뿐이었다.

하지만 마음은 계속 무겁게 가라앉았다.
나는 그저 그가 다시 건강을 되찾길,
그저 숨이라도 편히 쉴 수 있길 바랄 뿐이었다.


밤이 깊어지자,
나는 다시 소설을 고치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았다.
그런데 문득, 문장이 아닌 삶의 문법이 떠올랐다.
인간이 아직도 풀지 못한 거대한 질문,
“죽음”에 대한 사유였다.


나의 철학적 멘토들은 죽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죽음은 인간이 감당해야 하는 궁극의 배움이다.”
삶이 끝나는 지점에서야
비로소 ‘살았음’의 의미를 깨닫는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는 이렇게 말했다.
“죽음이야말로 생의 가장 정직한 스승이다.”
죽음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다만 그것이 가까워질 때만
우리는 삶의 무게를 비로소 느낀다.


이 말을 곱씹다 보니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을 이해해야 삶을 더 깊이 볼 수 있고,
삶을 아낄 줄 알아야
죽음을 담담히 맞이할 수 있을 테니까.

추석날 들은 부고보다 더 슬펐던 건
친구의 고통이 아니라,
그가 내게 남긴 물음이었다.

“너는 지금, 제대로 살아가고 있느냐.”

그 질문이 내 마음속에서
여전히 조용히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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