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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성장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다.
하지만 아이가 어른이 되고,
한 세월 일터에서 땀을 흘린 뒤 은퇴의 문턱에 서면
우리는 종종 스스로를 ‘완성된 인간’이라 생각(착각)한다.
그때부터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배움은 멈추고, 내면은 고요해진다.
고요함이라 쓰고, 사실은 굳어감이라 읽는다.
노년기에 많은 이들이 공부를 멈추는 이유는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다.
“이 나이에 뭘 더 배워?”
이 말이야말로 가장 조용한 자기 암시다.
직장은 단순한 일터가 아니라,
정체성을 지탱하는 무대였다.
그 무대에서 내려오자,
사람들은 직함과 명함을 함께 잃는다.
그 순간,
우리가 젊은 시절에 밀어두었던 질문이 되살아난다.
“나는 누구인가?”
배움은 본래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다.
누군가와의 대화 속에서,
타인의 시선을 통해
우리는 조금씩 ‘나’를 새로 배운다.
그래서 은퇴 후 관계가 끊기면
배움의 동력도 함께 사라진다.
사람은 혼자서는 성장할 수 없다.
대화 없는 지식은 쉽게 말라 버린다.
더 큰 문제는 사회의 시선이다.
현대 사회는 노년을 ‘쉬어야 하는 시기’로 규정한다.
공부하는 노인을 보면 이렇게 말한다.
“이제 좀 편히 사세요.”
하지만 진정한 휴식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배움을 놀이로 되돌리는 일이 아닐까.
어린아이가 놀며 세상을 배우듯,
노년의 배움도 ‘결과’가 아닌 ‘즐거움’으로 돌아가야 한다.
배움이 다시 ‘놀이’가 될 때,
그건 더 이상 노력이나 부담이 아니라
삶의 리듬이 된다.
그렇다면,
성장의 계절을 다시 불러오는 방법은 무엇일까?
답은 거창하지 않다.
호기심.
그 오래된 본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젊은 시절의 배움이 생존을 위한 도구였다면,
노년의 배움은 존재의 깊이를 위한 여정이다.
매일 책 한 페이지를 읽고,
그 속에서 어제의 나를 반성하고,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며
새로운 생각의 문을 여는 것.
그 작고 조용한 반복이
삶의 방향을 다시 그린다.
신경과학자들은 말한다.
“인간의 뇌는 평생 변한다.”
즉, 생각하는 한 우리는 늙지 않는다.
지식의 양이 아니라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선,
그 시선이 멈출 때
비로소 노화가 시작된다.
은퇴 이후의 삶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교실이다.
우리는 그 교실의 학생이 되어
다시 세상을 배우고,
자신을 가르친다.
배움이 멈추면 인생도 멈춘다.
하지만 배우는 자에게 노년은
가장 고요하고 깊은 성장의 계절이다.
꽃이 다시 피는 이유는
계절이 바뀌었기 때문이 아니라,
아직 피고자 하는 의지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