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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와 폴트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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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또삐

나는 오래전부터 스포츠를 ‘무기 없는 전쟁’이라 생각했다.

특히 축구. 국가 대항전은 피만 흘리지 않을 뿐,
때로는 전쟁보다 더 잔인한 감정의 폭풍을 몰고 온다.
승패의 기록이 곧 국가의 자존심으로 바뀌는 순간,
경기는 언제나 인간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런데 어제, 나의 이 오래된 편견이 무너졌다.
TV 예능 〈유 퀴즈〉에서 만난
클레이 코트의 제왕, 라파엘 나달 때문이었다.


사실 나의 테니스 우상은 늘 로저 페더러였다.
그의 스윙은 예술이었고, 움직임은 시였다.
완벽함 그 자체였다.
하지만 얼마 전, 라파엘 나달의 은퇴식에서 들은
그의 한마디는 그 완벽함의 정의를 바꿔 놓았다.

“나는 숫자(기록)로 기억되기 보다,
작은 섬마을의 꿈 많은 소년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그 문장을 듣는 순간,
승리보다 아름다운 것이 ‘순수함’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는 영웅으로 떠난 게 아니라,
끝까지 ‘인간’으로 남았다.

그날 나달의 답변은 그 순수함에 온기를 더했다.


한편, 3년 전, 페더러의 은퇴식에서 나달은 또 한번의 명언을 남겼다.

“페더러의 은퇴는 내 일부가 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 짧은 문장에 담긴 감정의 깊이는
그 어떤 승리보다 뜨거웠다.
세상은 두 사람을 라이벌이라 불렀지만,
그들은 서로의 거울이었다.

진짜 강자는 상대를 무너뜨리는 사람이 아니라,
경쟁자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다.
전쟁으로 보이던 스포츠의 본질은
사실 순수로 향하는 인간의 의지였다는 걸.


나는 어린 시절부터 테니스를 쳐왔다.
라켓을 쥘 때마다 느꼈다.
이건 단순한 경기 이상이었다.
테니스는 인간의 언어를 가장 잘 담아낸 운동이다.

점수 0을 러브(Love) 라 부르고,
공을 넣는 동작은 서브(Serve) — 봉사하다.
실수는 폴트(Fault), 잘못 혹은 죄.

이 세 단어만 봐도 알 수 있다.
테니스의 세계는 경쟁보다 관계에 가깝다.
이긴 자와 진 자가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는 인간들’의 이야기다.


10여 년 전, 나는 군부대 장교 대상 특강에서
테니스를 삶의 은유로 풀어 이야기한 적이 있다.
“테니스는 마라톤보다 더 인생을 잘 표현한 경기입니다.”
그때 청중이 고개를 끄덕이던 장면이 아직도 기억난다.

생각해보면, 인생도 서브의 연속이다.
우리는 매일 무언가를 ‘건네고’, 때로는 ‘받아치며’,
가끔은 폴트하고, 다시 러브로 돌아간다.
그 반복 속에서 조금씩 성장한다.


어제 본 나달의 인터뷰가 계속 마음에 남는다.
그의 눈빛에는 경쟁이 없었다.
오직 성실함, 겸손, 그리고 인간에 대한 존경만 있었다.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스포츠의 본질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인간으로 남는 것이라는 걸.


전쟁 같은 세상에서도
순수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건 늘 조용하고, 흔들리지 않으며,
라켓 끝의 공 하나처럼 정직하다.

나달이 그랬고, 페더러가 그랬듯이—
결국 진짜 승자는,
끝까지아름답게싸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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