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밍은 다듬기가 아니다
나는 트리밍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편집할 때도 그렇고, 살아갈 때도 그렇다.
트리밍은 그냥 잘라내는 게 아니다.
엉켜버린 삶을 다시 풀어주는 일이다.
가르치면서, 또 살아오면서
나는 한 가지를 분명하게 느꼈다.
지금 우리에겐 뭘 더 잘하느냐보다,
뭘 과감히 덜어내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게 없으면, 아무리 잘해도 결국 흐름이 막힌다.
요즘 사람들 보면 진짜 멋지다
일도 잘하고, 사람도 잘 챙기고,
운동도 하고, 취미도 하고, 콘텐츠도 뚝딱 만든다.
그걸 또 SNS에 자연스럽게 올린다.
힘들어 보이지도 않는다. 다 잘 굴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강의실에서, 또 상담 자리에서 나는 다르게 듣는다.
“계속 뭔가 하긴 하는데요, 방향이 안 잡혀요.”
“열심히는 사는데… 점점 내가 아닌 것 같아요.”
나는 그 마음을 안다.
살면서 나도 수없이 그랬다.
‘왜 이렇게 애쓰고 있는데도, 안 풀리지?’
‘왜 열심히 사는데도, 자꾸 놓치고 있는 느낌이지?’
그건 실패가 아니다.
그건 ‘과잉’이다.
너무 많은 걸 품으려다,
삶이 숨을 못 쉬고 있는 거다.
진짜 무너지는 순간은
게을러서가 아니라, 너무 애써서 오는 경우가 많다.
이것도 해야 할 것 같고, 저것도 놓치면 안 될 것 같고.
근데 그렇게 다 껴안고 살면
결국 정작 중요한 걸 붙잡지 못한다.
나는 학생들에게도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잘하려 하지 말고, 먼저 빼라.
뺄 줄 아는 사람이, 진짜 흐름을 만든다.”
삶도 마찬가지다.
잘 꾸미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다시 흐르게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
이건 내가 경험해서 아는 이야기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지금쯤은 그걸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제는,
더 하려는 마음보다
조금 덜어내려는 용기를 내야 할 시간이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이 시대의 거울
한 영화를 떠올린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주인공, 에블린.
그녀는 세금 내고, 남편 챙기고, 딸과 화해하고, 빨래방 운영하고,
심지어 멀티버스까지 구해야 한다.
그러다 말한다.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낯설지 않다.
지금 우리도 그 말 안에서 살아간다.
그런데 영화는 이렇게 말한다.
진짜 치트키는 다 해내는 게 아니라,
하나를 제대로 고르는 데 있다.
에블린이 구원받는 순간은
수많은 가능성을 내려놓고
지금의 자신을 선택할 때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다 해보려다, 정작 중요한 걸 놓친다.
삶은 러프컷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편집 수업을 하면 이런 말을 자주 한다.
“러프컷은 길수록 나쁘다. 많이 찍었으면, 더 많이 잘라야 한다.”
학생들은 처음엔 당황한다.
"이 장면, 정말 공들였는데요."
"이 말은 꼭 넣고 싶어요."
하지만 아깝다고 다 넣으면,
이야기의 흐름은 깨지고, 몰입은 사라진다.
결국 아무도 끝까지 보지 않는다.
기억에 남지도 않는다.
살면서도 비슷한 순간이 있다.
열심히 해본 일, 애써 만든 관계, 의욕적으로 시작한 도전들…
지금 돌아보면 그냥 지나간 장면인 것들도 많다.
우리는 흐름보다 밀도를 택해야 할 때가 있다.
많은 장면보다, 남을 장면 하나가 필요하다.
지금, 나는 과잉 상태일까?
지금 덜어낼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면,
아래 체크리스트를 조용히 읽어보자.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오늘 할 일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을 만나고 나면, 이상하게 더 피곤하다
쉬어도 개운하지 않고, 회복은 늘 짧고 얕다
뭐든 해보려는 마음이 오히려 아무 것도 못 하게 만든다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가 허무하게 느껴진다
세 가지 이상 해당된다면,
지금은 더하는 시기가 아니라 덜어내야 할 시기다.
실전 치트키: ‘컷 다이어트’ 해보기
오늘 하루를 하나의 ‘편집본’이라고 생각해보자.
그리고 아래 네 가지 질문을 조용히 자신에게 던져본다.
에너지를 많이 쓴 컷: 오늘 나를 가장 피곤하게 만든 장면은?
몰입했던 컷: 내가 가장 집중했던 순간은 언제였나?
쓸모없던 컷: 끝나고 나서 괜히 했다고 느꼈던 장면은?
남기고 싶은 컷: 오늘 하루 중, 내 이야기로 간직하고 싶은 장면은?
3일이면 충분하다.
뭘 더할지가 아니라,
뭘 지울지가 보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