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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 마이크는 권력보다 먼저 움직인다
설명회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말의 내용이 아니다.
누가 먼저 마이크를 잡느냐다.
그 순간
공기의 방향이 바뀐다.
시선이 정렬되고,
이야기의 주인이 정해진다.
오늘,
그 순서를 바꾸는 사람이
나타났다.
Scene 1 — 오후 2시 58분, 촬영 준비 완료
강당 앞에는
이미 삼각대가 줄지어 서 있었다.
학생회 로고가 붙은 카메라,
수업 기록용 캠코더,
누군가의 개인 미러리스까지.
“테스트 들어갑니다.”
“오디오 괜찮아요.”
“라이브는 안 켜죠?”
설명회는
이미 설명회가 아니었다.
콘텐츠였다.
Scene 2 — 예정된 순서, 예정된 얼굴들
무대 중앙 테이블에는
세 개의 명패가 놓여 있었다.
장견제.
윤사린.
그리고 나, 박양이.
사회자는
학과 조교였다.
원고를 쥔 손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사회자
“그럼…
먼저 학과장님의 말씀을—”
그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Scene 3 — 예정에 없던 움직임
의자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강당에 울렸다.
사람들이 동시에 나를 봤다.
박양이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만 말씀드려도 될까요?”
사회자는
본능적으로
나를 봤다가
학과장을 봤다.
학과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허락이었다.
나는
마이크를 잡았다.
Scene 4 — 첫 문장, 프레임을 흔들다
박양이
“오늘 이 설명회는
제 수업을 해명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강당이 조용해졌다.
박양이
“그리고
학생 여러분을
설득하는 자리도 아닙니다.”
누군가
노트북을 닫았다.
카메라 줌이
살짝 당겨졌다.
박양이
“오늘은
이 학과가
어떤 기준으로
‘문제’를 판단하는지
함께 확인하는 자리입니다.”
이제
설명회는
다른 장르가 되었다.
Scene 5 — 질문은 공격이 아니라 구조다
나는
프린트된 슬라이드를
켜지 않았다.
대신
질문을 읽었다.
박양이
“첫 번째 질문입니다.
현재 제 수업과 관련해
접수된 공식 민원은
몇 건입니까?”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사회자
“…공식 민원은
현재 접수된 바 없습니다.”
웅성임.
박양이
“두 번째 질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안은
어떤 절차로
공식 논의 테이블에
올라왔습니까?”
장견제가
의자를 움직였다.
윤사린은
표정을 관리했다.
Scene 6 — 마이크는 돌아가지 않는다
누군가
질문을 던졌다.
“그럼
학생이 울었다는 건
사실인가요?”
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박양이
“그 질문에 답하기 전에
이 질문부터 해야 합니다.”
강당이 숨을 삼켰다.
박양이
“그 학생은
지금 이 자리에
오고 싶어 했나요?”
정적.
박양이
“우리는
학생을 보호하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학생의 이름으로
이야기를 대신하고 있는 걸까요?”
그 순간
질문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었다.
Scene 7 — 견제의 개입, 사린의 침묵
장견제가
마이크를 잡았다.
장견제
“박 교수,
지금 이 자리는
학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나는
그의 말을 자르지 않았다.
대신
마이크를 내려놓지 않았다.
박양이
“그래서
더 정확해야 합니다.”
윤사린은
끝내
마이크를 잡지 않았다.
그 침묵은
동의가 아니라
패스였다.
Epilogue — 첫 컷은 바뀌었다
설명회는
예정보다
40분 늦게 끝났다.
학생들은
질문을 들고 나갔고,
교수들은
표정을 안고 나갔다.
편집실로 향하는
카메라들.
이 영상은
잘릴 것이다.
편집될 것이다.
왜곡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한 장면만은
사라지지 않는다.
마이크를
먼저 잡은 사람.
오늘,
프레임은
그 사람을 중심으로
다시 짜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