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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각자의 서렌디피티가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우연은, 이미 지나간 줄 알았던 삶의 힌트를 뒤늦게 발견하는 순간이다.
오늘 아침, 책장 한켠에서 우연히 눈에 들어온 책 한 권.
프랑스 아이들은 왜 말대꾸를 하지 않을까?
제목만으로도 도발적이었다.
‘아이를 조용히 만들겠다는 책인가?’라는 의심과
‘혹시 내가 놓친 게 있나?’라는 기대가 동시에 들었다.
더 놀라운 건, 아내는 이 책을 10여 년 전 이미 읽고
아이를 키우는 데 실제로 적용해왔다는 사실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솔직히 말해,
양육과 교육에 관해선 관심도, 언어도, 준비도 없었다.
아이를 키운다기보다
그저 “잘 크길 바라는 사람”에 가까웠다.
서문을 읽자마자 멈출 수 없었다.
책장을 넘기며 나는 아이가 아니라
아빠였던 나 자신을 계속 들여다보게 됐다.
아이의 말대꾸보다 더 많았던 건
내 안의 조급함, 불안, 권위욕이었다는 사실도.
프랑스식 양육의 핵심은 의외로 단순했다.
아이를 통제하는 대신 관계를 설계하고,
훈육보다 먼저 존중의 리듬을 만든다는 것.
그래서 아이는 말대꾸를 “하지 않게 되는 것”이지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니었다.
늦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책은 나를 낙담시키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더 나은 아빠가 될 수 있다는
조용한 가능성을 건넸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가지 부수 효과.
이 책 한 권 덕분에
프랑스라는 나라, 그들의 삶의 태도,
아이를 대하는 문화까지 함께 궁금해졌다.
언젠가 꼭 그 땅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오래된 욕심도 다시 고개를 들었다.
아이를 바꾸는 비법은 없었다.
대신, 부모가 먼저 바뀌는 방법은 분명히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은
육아서가 아니라
어쩌면 어른을 위한 성장서에 더 가깝다.
좋은 부모가 되는 일은 늦을 수 있지만,
시도하기엔 늘 지금이 가장 빠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