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는 정교한 저울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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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또삐

정의는 늘 정확하려 한다.
누가 옳았는지, 무엇이 원인이었는지,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끝까지 따져 묻는다.
마치 0.1그램까지 재는 정밀 저울처럼.


최근 들어 아내와 건강 문제로 자주 부딪혔다.
나는 아프면 먼저 생활습관을 떠올린다.
“늦게 자서 그래.”
“운동을 안 해서 그렇지.”
내 머릿속 정의는 단순하다.
원인이 있으니 결과가 있다.

반면 아내는 다르다.
“아픈 건 아픈 거야.
일단 약 먹고 쉬면 되지.”
그녀의 정의는 더 현실적이고, 더 현재적이다.

결국 우리는 병이 아니라
각자의 ‘정의’를 붙잡고 다퉜던 셈이다.
같은 체온계를 들고도
서로 다른 숫자를 읽고 있었다.


그날도 목이 아파 소파에 누워 있었는데
나는 또 습관 이야기를 꺼냈고
아내는 약봉지를 내밀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이건 건강 토론이 아니라
저울 싸움이라는 것을.

그러다 우연히 읽은 책 한 권에서
의외의 문장을 만났다.
해답은 정의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말.

사랑에는 저울이 없다.
무게를 재지 않고,
과거를 계산하지 않고,
이유를 따지지 않는다.

“그래도 괜찮아.”
“아프면 그냥 아픈 거지.”
이 한 문장이
정교한 분석보다 더 빨리 마음을 낫게 한다.


정의는 세상을 바로 세우지만
사랑은 사람을 다시 세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가족에게조차
정확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가족이 원하는 건
정확함이 아니라 따뜻함일지도 모른다.

저울을 내려놓는 순간
다툼은 조금 줄어들고
숨은 조금 편해진다.

정의가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사랑보다 앞서 있을 때
차가워질 뿐이다.

그래서 요즘 나는
아내의 약봉지를 보며
습관 강의 대신 이렇게 말해보려 한다.

“그래도 당신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어쩌면
그 한마디가
우리 집에서 가장 가벼운 저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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