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란 무엇인가 — 가장 가까운 타인과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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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또삐

가족 모임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는 항상 이상한 침묵이 따라온다. 배는 부른데 마음 어딘가는 아직 소화가 안 된 것처럼 묵직하다. 오늘도, 그랬다.


우리는 가족을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어쩌면 그 말이 역설의 시작이다.

가까울수록 더 잘 보인다. 상대의 결핍이, 두려움이, 반복되는 패턴이. 타인에게라면 그냥 넘겼을 말을 가족이 하면 오래 남는 이유는, 그 말이 낯선 곳에서 날아온 게 아니라 내가 가장 오래 알고 있는 목소리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가족은 우리의 가장 예민한 버튼이 어디에 있는지를 안다. 살면서 직접 눌러봤으니까.


부모 세대는 "우린 다 너희 위해 산 거야"라고 말하고, 자식 세대는 "그래도 제 인생은 제가 살아야죠"라고 답한다. 두 문장 모두 틀리지 않는데, 대화는 기묘하게 엇갈린다. 이것은 가치관의 충돌이 아니다. 시대의 충돌이다.

조부모는 생존의 시대를 통과했고, 부모는 책임의 시대를 버텼고, 자식은 선택의 시대를 산다. 같은 단어를 써도 그 무게가 다르다. '희생'은 누군가에게 삶의 훈장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갚아야 할 빚처럼 느껴진다. '자율'은 어떤 이에게 당연한 공기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무책임의 다른 이름처럼 들린다. 한 지붕 아래에서 서로 다른 세기(世紀)를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해가 어려운 게 당연하다. 우리는 종종 가족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사실은 반대다. 가족이기 때문에 — 그토록 다른 삶을 그토록 가까이서 살아왔기 때문에 — 이해가 더 어렵다.


완벽한 화목은 없다. 적어도 솔직한 관계 안에서는.

가족은 갈등이 없는 공동체가 아니라, 갈등을 반복적으로 통과하면서 유지되는 공동체다. 부딪히고, 잠시 멀어지고, 다시 전화를 건다. 이 리듬 자체가 관계의 형태다. 명절마다 섭섭하면서도 또 모이는 것은 의지가 아니라 일종의 본능이다. 가족은 우리가 선택하지 않았지만, 우리가 계속해서 선택하는 관계다.

나는 오랫동안 가족을 '주어진 것'이라 여겼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가족은 완성된 관계가 아니라, 매번 다시 맺어지는 관계라는 것을.


가족은 인류가 발명한 가장 작은 사회이자 가장 밀도 높은 인간관계 실험실이다. 여기서 우리는 사랑하는 법보다 먼저, 오해하는 법을 배운다. 상처받는 법을, 참는 법을,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식탁에 다시 앉는 법을.

그러므로 가족이란 무엇인가.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 한 지붕 아래서 자기 확신을 조금씩 내려놓는 연습.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끝까지 이해하려는 의지. 그리고 어쩌면 — 완벽한 화합이 아니라, 끝까지 떠나지 않기로 하는 선택.

가족이 특별한 이유는 그 안에 사랑이 있어서가 아니다. 이해도 동의도 없이, 때론 상처를 주고받으면서도, 여전히 그 관계를 포기하지 않기로 선택하기 때문이다.

그 선택이 쌓여 가족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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