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BTS 전 멤버가 모두 군 복무를 마치고 전역했다는 소식이 뉴스를 장식했다.
다시 완전체로 돌아올 그들을 향한 기대가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질문이 떠올랐다. 이들이 세계 최정상에서 내려와 군복을 입고 있는 동안, 어떤 내리막을 지나고 있었을까. 무대와 조명, 함성으로 가득했던 절정의 순간에서 벗어나, 오롯이 자신만의 시간과 싸우며 걸었던 그 조용한 시간은 어땠을까.
그 생각은 자연스럽게 또 다른 이름을 떠올리게 했다. 엄홍길. 그는 인류가 닿을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점,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 그리고 그곳에 머문 시간은 고작 10분 남짓이었다. 수개월, 수년을 준비해 도달한 그 지점에서 그는 오래 머물 수 없었다. 자연은 허락하지 않았고, 생명은 그곳을 버티지 못한다. 정상은 '머무는 곳'이 아니라 '스쳐 지나가는 곳'이다. 그 짧은 순간이 찬란할수록, 그 이후의 시간이 더 깊은 여운을 남긴다.
여기서 묻고 싶다. 정상에 오른다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일까? 오르는 일 자체보다, 오름 이후의 시간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정상'은 단순히 높이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다. 더 위로 올라가는 것이 언제나 옳은 길일까?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더 높이'를 당연한 목표로 받아들였지만, 그 욕망은 때로 자기파괴적이기까지 하다. 절정의 순간은 눈부시지만, 거기에는 추락의 가능성도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현명함이란 어쩌면 '얼마나 높이 올랐는가'가 아니라 '언제 멈출지를 아는가'에 있는지도 모른다.
'정상에 서다'는 말. 단순한 표현 같지만, 그 안엔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갈망이 담겨 있다. 더 높이 오르고 싶다는 마음, 그 한순간의 절정에 닿고자 하는 본능은 누구에게나 있다. 마치 인생의 클라이맥스처럼 들린다. 멋지고 숭고하게. 하지만 그 정점은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간다.
콘텐츠도, 크리에이터도 마찬가지다. 어떤 영상이 터지고, 갑자기 팔로워 수가 치솟고, 브랜드에서 콜이 온다. 그 순간은 반짝이지만, 오래가지 않는다. 이어지는 건 압박이다. 다음 콘텐츠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전만큼 반응이 안 나오면 어쩌지, 이제 끝난 건 아닐까. 그렇게 하산의 시간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 길은 오르막보다 훨씬 조용하고 훨씬 험하다.
영상편집을 가르치고 직접 편집 일을 하며 수많은 장면을 지켜봤다. 크리에이터가 성공의 문턱을 넘는 순간도, 그 뒤의 불안과 고독도. 어떤 이는 말했다. "정상에 선 게 아니라, 잠깐 조명이 나를 비췄을 뿐이었다"고. 참 정확한 표현이다. 조명은 언젠가 꺼지고, 세트는 해체된다. 그리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야 한다. 아무도 보지 않는 시간, 누구도 칭찬하지 않는 장면 속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오르막엔 뚜렷한 목표가 있다. 그래서 힘들어도 견딜 수 있다. 하지만 내려올 땐 다르다. 방향은 흐려지고, 자신감은 흔들리며, 박수는 멈춘다. 실수는 곧바로 하강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더 단단해져야 한다.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 어떤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지를 다시 붙잡아야 한다.
하지만 하산이 전부 어둡지만은 않다. 그 길에서 오르느라 놓쳤던 풍경을 보게 된다. 감정의 결, 생각의 결을 새롭게 느낀다. 영상의 컷 하나, 사운드의 여백 하나가 전과는 다르게 다가오기 시작하고, 감각은 세밀해지고, 작품엔 깊이가 더해진다. 그 길에서 뜻밖의 기쁨도 만나게 된다. 의외의 반응, 예상치 못한 아이디어, 어쩌면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거기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내려가는 길이라고 해서 실패한 건 아니다. 그건 그냥 다음 챕터로 넘어가는 중일 뿐이다. 인생은 얼마나 빨리 오르느냐가 아니라, 내려올 때 나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 있다. 진짜 실력은 거기서 나온다. 정상은 단 하나의 장면일 뿐이고, 편집은 그 이후에도 계속된다. 내려오는 길, 그 장면도 멋지게 연출해보자. 슬쩍 유머 한 컷 넣어도 좋다. 그게 진짜 크리에이터, 진짜 작가의 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