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내 인생의 첫 책을 냈다. 기대는 컸다. 책을 낸 것 자체가 놀라웠고, 그 안에는 내 경험과 신념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편집의 신(scene)“이라는 제목처럼, 나름의 자신감도 있었다. 하지만 성적은 참담했다.
내가 쓴 책은 유튜브 영상을 만들고자 하는 초보자, 학생, 혹은 창작에 입문하려는 이들을 위한 것이었다. 현장에서 느낀 것, 내가 해왔던 방식, 무엇보다 생각하는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시장은 냉정했다. 독자는 '과정'보다 '결과'를 원했고, 철학보다 '플랜'을 요구했다. 요컨대, 구체적이고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정답'을 원했던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영상편집에는 정답이 없다. 컷 편집의 노하우, 음악의 리듬, 색감의 조화—이 모든 건 상황과 의도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데 독자는 여전히 1+1=2 같은 명쾌한 공식을 원한다. 책 제목이 "편집의 신"이니, 이 책을 읽으면 마치 초능력처럼 편집을 잘하게 될 거라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그 기대와 현실 사이의 간극, 그게 책의 운명을 갈랐다.
그럼 나는 무엇을 놓쳤을까? 다음 책에 방법론을 더하면, 플랜을 제시하면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아니면 아예, 편집의 신 같은 책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기획이었을까?
나는 지금도 여전히, 학생들이 더 나은 영상편집자가 되길 바라며 강의한다. 그리고 나 자신도 여전히, 편집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 그러나 이제 그 이유는 조금 다르다. 더 잘 편집한다는 건, 더 잘 안다는 뜻이고, 더 잘 안다는 건 더 깊이 본다는 뜻이다. 그 깊이는 공식으로는 채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왜 이 영상을 만들고 있는지,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지를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이야말로 '편집의 신'으로 가는 진짜 길이다.
좋은 실용서는 지식을 제공하는 책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책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질문을 붙잡고 끝까지 숙고하는 사람만이 답에 닿는다. 저자는 단지 물음표를 던진다. 느낌표는 독자가 만들어야 한다.
독자는 자신이 필요로 하는 지식보다, 자신조차 몰랐던 갈증을 해결해줄 사유의 공간을 원한다. 영상제작이라는 행위는 단지 기술의 집합이 아니라, 세상과 나를 연결하는 서사의 기술이다. 그 연결을 위해 필요한 건, 누군가의 정답이 아니라,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힘이다.
나는 이제 안다. 다음 책은 그런 독자에게 바쳐야 한다. 내가 알던 것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몰랐던 것을 함께 사유해볼 수 있도록 만드는 것. 그게 진짜 실용서다. 실용이란, 결국 삶과 연결되어 있을 때 비로소 '쓸모'를 가진다.
그리고 편집이란, 삶을 다시 보는 또 하나의 프레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