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영화의 거장,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 처음엔 그저 낯익은 영화 제목일 뿐이었다. 무언가 예술적이고 몽환적인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었지만, 정작 그 말의 뜻조차 모른 채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러던 중 오늘 아침, 한 권의 책에서 '화양연화'라는 단어를 다시 만났다. 29년을 다닌 회사를 떠나며, 작가는 자신의 인생 중 가장 빛나는 시간을 그 회사에 바쳤다고 말했다.
책장을 덮고 가만히 생각했다. 내 인생의 화양연화는 언제였을까?
아마도 뉴질랜드 어학연수 시절이 아닐까 싶다. 20대 중반, 뚜렷한 계획도 없이 무작정 훌쩍 떠난 남반구의 작은 섬나라. 그곳에서 나는 자연의 광활함에 압도당했고, 익숙하지 않은 언어에 매일 부딪혔으며, 다국적 친구들과 밤새 웃고 울며 많은 것을 나눴다. 낯설고도 아름다웠던 모든 경험이 내게 말해주었다. "이 순간을 기억하라, 이것이 너의 화양연화다."
그때의 나는 젊었고, 순수했으며,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컸던 건 설렘과 호기심이었다. 바닥까지 자신을 밀어 넣고도, 다시 웃으며 올라올 수 있던 용기. 그건 아마도 젊음이라는 이름의 선물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 후로도 내 인생은 많은 모험과 전환점을 지나왔다. 싱글로 떠났던 여행이 이제는 가족과 함께하는 삶으로 이어졌고, 그에 따라 행복의 형태도 달라졌다. 하지만 뉴질랜드에서의 경험은 여전히 내 안에서 반짝이고 있다. 그때의 감정, 그때의 리듬, 그때의 나. 그것들이 지금의 나를 지탱하는 단단한 뿌리가 되어 주었다.
요즘도 가끔 생각한다. 그곳에 다시 가보고 싶다고. 가족과 함께, 내가 가장 빛났던 그 순간을 다시 마주하고 싶다고. 몇 년 안에 그 꿈을 이룰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꼭 그 땅을 다시 밟고 싶다. 그리고 지금의 내 아이에게도 묻고 싶다. "너의 화양연화는 언제니?”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은 있다. 찬란해서 아득하고, 아름다워서 아쉬운 시절. 그것이 지나간 후에야 우리는 비로소 그때가 가장 빛났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시절을 기억하는 마음만으로도, 우리는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화양연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절. 나에겐 그것이 뉴질랜드였고, 앞으로는 또 다른 장면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찬란한 순간은 언제나 내 안 어딘가에서 조용히 빛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기억 하나면, 오늘도 다시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