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아 작가의 책 한 줄에 설득당해, 나는 요즘 다시 『밀회』에 빠져 있다. 2014년작이지만, 유아인과 김희애의 연기는 지금 봐도 숨결처럼 살아 있다. 특히 8화 후반부의 한 배드신은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허름한 자취방을 정적으로 비추는 카메라, 그 위로 흐르는 클래식 음악, 그리고 두 인물의 속삭이는 대사. 직접적인 몸짓보다 더 절제된 연출은 오히려 그 장면을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러브신으로 탈바꿈시켰다. 나는 감탄하며 생각했다. "글도 이런 식으로 써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글을 읽을 때 주로 문자에 반응한다. 머릿속에 단어와 문장이 떠오르고, 의미를 이해하려 한다. 그러나 진짜 좋은 글은 독자의 내면에 장면을 만들어낸다. 색감이 있고, 구도가 있으며, 리듬이 있고, 때로는 음악이 들린다. 그것은 정보 전달을 넘어서 하나의 감각적 경험으로 확장된다. 문장이 화면이 되고, 단어가 빛이 되고, 쉼표 사이로 감정이 흐르는 글. 그런 글은 읽는 것이 아니라, 마치 한 편의 영화를 "감상"하는 일이다.
한 유명작가는 독자가 상상력을 동원할 수 있도록 글을 구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모든 것을 설명하기보다, 여백을 남기고, 상상하게 만들며, 글의 틈 사이에서 독자 스스로 감정을 길어 올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한 장면이 끝나고, 어둠 속에서 음악이 흐르며 다음 장면을 기다리게 되는 영화의 순간처럼.
그리고 나의 편집 노트처럼, 좋은 글은 독자를 멈추게 한다. 한 문장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다시 되돌아가게 만든다. 그것은 정보가 아니라 장면이기 때문이다. 독자가 그 문장을 따라가며 자신만의 이미지, 감정, 그리고 의미를 구성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로 영상 같은 글쓰기다.
물론, 모든 글이 영상처럼 쓰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모든 좋은 글에는 장면이 있다. 우리는 그 장면 속에서 숨을 쉬고, 생각하고, 감정이 흔들린다. 그리고 그 흔들림이야말로 우리가 글을 읽는 가장 본질적인 이유다.
빛과 소리, 감정이 어우러진 한 편의 짧은 영화처럼. 눈으로 읽히되, 가슴으로 느껴지는 글. 그것이 내가 꿈꾸는 문장의 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