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가끔 거실 협탁에 놓인 소설책을 펼치고, 마치 연인을 만나러 가는 듯한 표정으로 책읽는 재미에 빠져든다. 나는 그런 아내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소설을 좋아해?"
아내는 잠시 멈칫하더니,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주인공이 멋지잖아. 감정이입이 되니까 재미있지."
그 대답을 듣고 나서야 나는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왜 나는 소설을 재미없다고 느낄까?
나는 책을 좋아하려고 노력한다. 그것도 아주 많이. 단지 선호의 방향이 다를 뿐이다. 내가 주로 읽는 책은 자기계발서, 심리학, 철학, 인문학이다. 이유는 명확하다. 나는 나를 알고 싶다. 그리고 나아가 다른 사람을 더 잘 이해하고 싶다. 그 과정을 통해 관계를 더 잘 맺고 싶다. 책은 내게 그런 가능성을 열어주는 문이었다.
하지만 소설은? 딱히 현실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드래곤이 날아다니고, 마법이 난무하는 판타지 세계는 내게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나는 지금 여기, 이 복잡한 현실에서 관계의 실타래를 풀어야 하는데, 그 소설 속 주인공들은 너무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 문제의 실질적인 솔루션은 거기에 없다고 믿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고미숙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고전은 시대의 구체적인 삶을 담고 있으며, 영원한 삶의 원형을 보여준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현실에서 직접적으로 효용이 없어 보이지만, 실은 인간의 욕망, 고통, 사랑, 좌절, 희망을 가장 정제된 방식으로 담아낸다. 마치 꿈처럼 말이다. 프로이트가 꿈을 무의식의 왕도라고 했다면, 소설은 인간 내면의 지도다.
사이토 다카시 식으로 말하자면, "인간은 이야기를 통해 자기 자신을 인식한다."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감정, 판단, 행동의 동기가 이야기 속 인물들을 통해 비로소 조명된다. 우리는 타인의 삶을 훔쳐보듯 읽으며, 나 자신을 직면하게 된다. 오히려 논리서보다 더 깊이 나를 들여다보게 되는 통로일 수도 있다.
나의 관점에서 보자면, 좋은 이야기는 독자에게 질문을 남긴다. 그 질문은 정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해답이 아니라 성찰을 부른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은 당신이 찾고 있는 '자기 성찰의 도구'가 될 수 있다. 다만, 그 방식이 좀 더 우회적이고, 느리며, 감정적일 뿐이다.
나를 포함한 나와 비슷한 성향의 독자는 지금 소설이 어렵다고 느끼는 건, 어쩌면 당신이 너무 직접적인 언어와 해답에 익숙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정보와 논리를 넘어선, 비유와 감정, 상징의 언어에 아직 귀를 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건 부족함이 아니라, 단지 다른 감각의 준비일 뿐이다.
소설은 당장의 해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당신 안의 오래된 질문을 불러낸다. 그리고 언젠가, 그 질문은 가장 당신다운 언어로 해답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러니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한 권의 소설을 그저 산책하듯 걸어보라. 꼭 재미있을 필요는 없다. 낯선 풍경 속에서 나도 몰랐던 당신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니까.
소설과 진심으로 친해지고 사랑하고 싶은 인또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