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늘 미학을 말한다.
아름다움, 깊이, 형식과 내용의 조화를 따진다. 그런데 교육은 왜 여전히 평등과 형평성이라는 단어에만 갇혀 있을까? 왜 공교육은 '최소한의 기회 제공'이라는 수준에 멈춰 있어야 하는가? 지금의 교육 정책은 마치 '모두에게 똑같은 신발을 신기자'는 슬로건을 내세운 듯하다. 하지만 학생들은 저마다 발 크기도, 걷는 방식도 다르다. 그렇게 획일화된 교육이 과연 진정한 평등일까?
일부 부모들은 이 체제에 불만을 품고 외고, 특목고, 국제고를 선택하고, 더 나아가 유학이라는 대안을 모색한다. 그것조차 여의치 않은 이들은 사교육에 매달린다. 이는 단순한 일탈이 아니라, 현재 공교육이 제공하지 못하는 ‘질 높은 교육’에 대한 갈망의 표현이다.
오늘 내가 만난 한 텍스트는 강렬했다. 교육도 예술처럼 그 품질과 깊이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제안. 단순한 수준별 수업을 넘어서, 교육 자체를 하나의 정교한 창조행위로 여겨야 한다는 주장. 나는 이 생각에 깊이 공감했다. 지금까지 우리는 교육을 사회적 장치로만 여겨왔다. 그러나 이제는 교육을 인간 정신의 예술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 될 수 있다.
우리의 교육제도는 태생부터 선진국을 모방해 시작되었다. 그 시절에는 분명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더 이상 후진국이 아니다. 세계적 수준의 IT, 문화, 산업을 자랑하는 지금, 우리의 교육은 여전히 산업화 시대의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다. 시대는 변했지만, 제도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그 결과는 뻔하다. 매년 반복되는 입시 제도 개편, 혼란스러운 평가 방식, 그리고 점점 더 깊어지는 사교육 의존.
문제는 제도만이 아니다. 정책은 수없이 바뀌었지만, 그 안에 담긴 철학은 부재하다. 교육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 없다. 그러니 겉모습만 바꾼다고 해도 본질은 그대로다. 이제 우리는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교육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교육은 인간을 이해하는 가장 정교한 예술이다. 교사는 연출가이자 예술가이며, 학생은 하나의 가능성으로 가득한 원석이다. 그 원석을 어떻게 빛나게 다듬느냐는 전적으로 교육자의 통찰과 감수성에 달려 있다. 예술이 인간의 삶을 위로하고 고양시키듯, 교육 또한 인간 존재를 깊이 들여다보고, 그 가능성을 확장시켜야 한다.
이제는 지혜로운 부모를 만나는 자식만이 행복한 청소년기를 누린다. 교육은 더 이상 제도에 기대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육 자체를 예술의 반열로 올려놓아야 한다. 철학과 미학, 감성과 통찰이 함께 어우러진 교육.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새로운 공교육의 비전이다.
진정한 공교육의 미래는 획일화가 아니라 다양성에 있다. 평등이란, 모두를 똑같이 대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다름을 존중하며 그에 맞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교육이 예술이 되는 순간, 우리 아이들은 더 이상 경쟁의 수단이 아니라, 자기만의 색깔로 세상을 채우는 창조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질문해야 한다. 공교육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어떤 교육을 아이들에게 남기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