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거리 두기 기술
부부싸움이란, 알고 보면 굉장히 섬세한 ‘경계의 예술’이다.
크게 보면 대부분 한쪽이 ‘선을 넘었을 때’ 발생한다.
상대가 아직 꺼내지 않은 생각에
불쑥 내 의견을 들이밀거나,
분위기를 읽지 못한 채 중심을 바꾸려 할 때—
감정의 선은 흔들리고,
작은 틈이 금세 큰 파장으로 번진다.
어제 부모님의 작은 다툼을 지켜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각자가 나름의 판단과 고집이 있었지만,
문제는 그 고집이 아니라,
상대방의 리듬과 ‘이야기의 주인공’을 놓쳤다는 데 있었다.
모든 대화에는 타이밍과 중심이 있다.
마치 영화 속 장면처럼,
지금 이 씬(scene)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만 명확히 인식해도,
불필요한 긴장 없이,
서로를 조연처럼 받쳐주는 지혜를 발휘할 수 있다.
영화 기생충에서 박사장은 이렇게 말한다.
“선을 안 넘는 사람이 좋아.”
이 짧은 한마디는, 영화의 어떤 장면보다 강력한 메시지로 남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관계란, 상대의 경계를 읽어주는 기술이자,
그 경계를 존중하는 태도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부모세대는 이 ‘경계 감각’이 두드러진 세대다.
아예 선을 넘는 일이 잦거나, 반대로
선 너머에 대한 기대조차 접고 지내는 경우도 있다.
앞의 경우는 아직 감정이 살아 있다는 뜻이고,
뒤의 경우는 어쩌면 애틋함보다 체념이 앞선 관계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이 시대를 사는 가족으로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여행을 다니며, 가족과 하루를 보내며
내가 발견한 하나의 지혜는 이것이다:
지금 이 상황은 누구의 시간인가?
이 공간의 중심은 누구인가?
그 질문 하나로,
불필요한 선 넘기와 감정 충돌은 대부분 피할 수 있다.
가깝기 때문에 더 쉽게 무시되는 마음,
익숙하기 때문에 더 쉽게 넘는 선.
이제는 그 경계를 조금 더 신중하게 바라볼 때다.
그리고 기억하자.
진짜 가까운 관계는,
조금 멈춰주는 배려에서 더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