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가가 있는 곳에는 내가 오래전부터 사랑해온 한 커피 명소가 있다. 이름하여, 커피명가.
처음 그곳을 알게 된 건 스무 해 전, 방송국에 몸담고 있을 때였다. 대구 최초의 커피 브랜드를 다룬 기획 뉴스에서 처음 만난 그 향기와 이름은, 시간이 흘러도 내 안에 깊게 남아 있다.
지금도 대구나 경주에 들를 일이 있으면 한 번쯤은 꼭 찾는다. 익숙한 향이 기다리는 그곳에서 나는, 오래된 친구처럼 커피를 마신다.
이번 가족여행의 종착지도 마침 그곳이었다. 의도한 계획은 아니었지만, 점심 식사 후 문득 떠오른 감정이 이끌었다.
그 지점은 여느 매장과 달리, 미술관을 닮은 카페였다. 은은한 조명과 길게 뻗은 테이블. 온 가족이 둘러앉을 수 있는 자리에서 우리는 여행의 마지막 장면을 함께 썼다.
부모님은 “즐거웠다” 하고,
딸들은 “편안했다” 말하며 미소 지었다.
며느리는 “힐링이었다”고 했고,
남자들은 “식도락의 정수였다” 말하며 만족스러워했다.
중학생 조카들은 짧지만 굵게, “좋았어요”라고 답했다.
말은 짧았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의 결은 충분히 읽혔다.
나 역시 계획하지 않았던 풍경들, 불쑥 나타난 장면들이 이번 여정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고 느낀다.
그래서 나는 ‘여행’보다 ‘여정’이란 단어를 더 좋아한다. 여행이 소비라면, 여정은 경험이다.
이번 여정의 내 컨셉은 단순했다. 적게 먹고, 덜 보고, 천천히 느끼자.
무더위와 세대 간의 취향 차이로 다소 삐걱거리는 순간도 있었지만, 모두가 서로를 배려하며 길을 이어갔다.
누구 하나 빠짐없이 만족했다는 건, 단지 동선의 성공이 아니라 관계의 성장이었을 것이다.
나는 ‘하룻밤을 함께 보낸다’는 행위가 관계에서 얼마나 깊은 의미를 갖는지 믿는다.
낯선 공간에서, 무장 해제된 채로 서로를 마주한다는 건
가장 인간적인 모습으로 서로를 받아들일 기회를 제공한다.
그 밤들이 관계를 조금씩 진하게 스며들게 한다.
"다음에도 꼭 이렇게 같이 여행하자."
가족의 그 말이, 이번 여정의 가장 아름다운 엔딩이었다.
우리가 ‘여행’을 ‘여정’으로 받아들이는 그 순간까지—
길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