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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임승차를 허락하라

에피소드_9993

by 인또삐

살다 보면, 관계 안에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순간들이 많다.
커피 한 잔, 식사 한 끼, 함께 떠나는 여행,
쇼핑 중 건넨 작은 선물까지—
누군가는 지불하고, 누군가는 그 호의를 받는다.
언뜻 보면, 언제나 주는 쪽과 받는 쪽이 나뉘는 듯하다.

나는 그 ‘받는 쪽’을 쉽게 용납하지 못했다.
가족이든 친구든, 늘 계산 없이 얻어가기만 하는 사람을 보면
마음 한쪽이 껄끄러워졌다.
그런 감정을 가족들과 나누며 불만을 토로한 적도 있었다.
그때 아내가 조용히 말했다.


“무임승차도 나눔이야. 순환의 일부고.”


그 말에, 나는 멈췄다.
논리라는 방어막으로 단단히 감싼 내 생각 틀에
작은 틈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혹시 나는,
누군가에게 신세를 질 수도 있다는
당연한 사실조차 망각하고 있던 건 아닐까.
손해와 이익을 따지는 저울질 속에,
순환과 연결이라는 관계의 본질을 놓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무임승차자다.


삶이란 단일한 계산서로 정리되지 않는다.
내가 건넨 호의는 다른 시간, 다른 방식으로 돌아온다.
지금 당장은 손해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 ‘손해’가 관계를 따뜻하게 만든다.

무임승차는 무책임함이 아니라,
서로에게 잠시 기대는 인간적인 장면일 수 있다.
조금 더 관대하게,
조금 더 유연하게 바라볼 수 있다면
그것은 손해가 아니라 순환이다.

나는 이제, 그 단어를 다시 정의하고 싶다.
‘무임승차’는 결국,
“관계가 만들어내는 비가시적 신뢰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조금씩은 손해를 감수하는 사회,
그만큼 서로를 너그럽게 품을 수 있는 세상이
더 나은 공동체 아닐까.

그리하여 나는
가끔은 무임승차를 허락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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