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_9992
교육자로서 내가 늘 강조해온 것은 가정교육의 중요성이었다.
“자식은 부모의 얼굴이다.”
나는 이 말을 깊이 믿어왔다.
자녀가 건강하게 성장하려면, 그 출발점은 부모의 삶에 있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이렇게 말했다.
“부모가 인생을 단단히 살아야 자식도 멋진 어른이 됩니다.”
그런데 오늘, 나의 확신을 흔드는 한 문장을 만났다.
“인간은 부모보다 세대를 더 많이 닮는다.”
아랍 속담이라고 했다.
처음엔 가볍게 넘길 수 없었다.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고 믿었던 내 교육철학이
한순간 의문 부호로 변했다.
그 속담의 의미는 이렇다.
같은 세대에 속한 사람들끼리는
사고의 패턴, 언어의 방식, 생활의 구조까지
유사성이 지배적이라는 것이다.
부모의 가치보다도,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또래의 문화가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뜻이다.
충격이었다.
동시에 깨달음이었다.
나는 세대 구분이 주로 사회학, 경제학의 언어라 여겨왔지만
이제 그것이 교육의 본질과도 맞닿아 있음을 깨달았다.
아이들이 독립하기 전까지
가장 많은 시간을 부모와 보내는 것이 이상적이라 생각해왔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보육시설, 유치원, 학교, 학원—
부모보다도 또래와 보내는 시간이 훨씬 길다.
그 사이, 부모와 자식의 거리는 자연스레 멀어진다.
나는 이것이 한국 교육의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라고 늘 지적해왔다.
하지만 오늘 만난 이 짧은 텍스트는
그 생각마저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결국, 자녀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와 얼마나 오래 머무는가’라는 물리적 시간보다,
‘누구와 어떻게 연결되는가’라는 관계의 질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물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은 어떤 친구들과, 어떤 문화를 공유하며 성장하고 있는가.
어른들이 자주 말하던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한다”는 말은,
이제 교육의 핵심 전략으로 다시 읽혀야 한다.
알파세대가 등장한 이 시대,
우리는 또래문화의 힘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좋은 친구를 만나는 법,
그들과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법—
이제 그것이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이 함께 길어 올려야 할
가장 실질적인 지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