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덕 / 서울 연남동
'24년 봄의 어느 날이었다.
음식에 진심인 친구 중 하나가 연남동에 맛과 가성비를 둘 다 잡은 베이징덕 맛집이 생겼다며 함께 가보자는 것이었다. 베이징덕을 워낙 좋아하지만, 서울에는 호텔 중식당이 아니면 파는 곳도 잘 없고, 여러 명이 가야 그나마 가성비가 나오는지라 잘 먹지 못하고 있었는데 귀가 솔깃했다.
지도를 찾아보니 대중교통으로는 어림도 없어 보이는 연남동 골목 어딘가에 위치한 식당. 차를 몰아 근처 공영주차장에 대고 식당에 도착하니 생각보다 규모가 크지 않은 캐주얼한 식당이라 '이런 곳에서 베이징덕을?'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자리에 앉아 메뉴를 찬찬히 훑어보니, 자장면/짬뽕을 파는 한국식 중화요릿집은 물론 아니고,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현지식 중국요리를 중점적으로 하는 식당인 듯했다.
우리는 일단 애피타이저로 쏸니바이로우(蒜泥白肉, 차갑게 식힌 얇은 삼겹살에 마늘소스 등을 얹어먹는 콜드 애피타이저), 그리고 크리스피새우창펀 하나와 베이징덕 그리고 나중에 식사를 주문하기로 했다.
처음으로 나온 쏸니바이로우는 중국 현지에서 먹던 맛과 꽤나 흡사했다. 얇게 썰린 삼겹살의 고소함과 오이의 아삭함, 마늘을 듬뿍 넣은 소스에서 우러나오는 감칠맛과 적당한 매운맛이 입안에서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전채를 열심히 즐기고 있을 때쯤 크리스피새우창펀이 등장했다. 요새 꽤 많은 한국 중식당에서 선보이고 있는 메뉴인 것 같은데, 이 메뉴를 싫어하는 이는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나중에 딤섬과 차찬탱 문화에 대해서도 한 번 글을 써 볼 예정인데, 어쨌든 촉촉하고 쫄깃한 창펀 안에 바삭한 새우가 주는 이질적인 식감이 매력적인 음식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가 주문한 오리가 등장했다. 바싹 구워져 단단해 보이는 오리껍질에 좌르르 흐르는 윤기가 입맛을 돋운다. 커팅해 주시는 분들은 보통 오리껍질이 얼마나 바삭하게 구워졌는지 보여주기 위해 경쾌한 소리가 나도록 칼로 한 번 오리를 스윽-슥 훑기도 한다. 직원분이 친절하게 포토타임을 위해 잠시 오리를 보여주시곤 가지고 가서 먹기 좋게 썰어주셨다. 개인적으로 베이징덕의 백미(白眉)는 바삭한 껍질이라고 생각하는데, 설탕을 조금 찍어 먹어보니, 입안에서 바사삭-하고 껍질이 부서지는 순간 고소한 오리기름이 팡 터져 나왔다. 껍질을 조금 즐기고 나서, 본격적으로 전병에 오리를 싸서 먹기 시작했다. 제공된 오이채와 파채, 그리고 티엔미엔장(甜面酱, 우리가 익히 아는 춘장의 원형으로, 밀가루, 콩, 소금 등을 섞어 쪄서 발효시켜 만듦. 춘장은 여기에 캐러멜 색소와 설탕 등을 넣어 더 달게 만든다.)을 얹어서 싸 먹는 것이 보통인데, 간혹 중국의 따동 같은 식당들은 캔터롭(하미과) 등을 채 썰어 제공해서 단맛을 돋우기도 한다.
보통 '베이징덕'하면 중국 베이징의 유명식당 취앤쥐더(全聚德)를 떠올리기 마련인데 (취앤쥐더에서는 오리를 시키면 그 오리가 몇 번째 오리인지 인증서(?) 비슷한 것도 줬던 것으로 기억한다.) 베이징에 오래 살면서 먹어본 바로는, 더 맛있는 곳이 많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 가본 곳으로는, 따동, 쓰지민푸, 취앤야지, 하이티엔거 정도가 있는데, 베이징덕 자체의 맛은 대동소이한 편이나, 곁들여 나오는 음식이나 분위기 등에서 각자 특색을 갖고 있다.
우리가 지금 즐겨 먹는 베이징덕의 역사는 기록에 따르면 중국 남북조 시대(420-589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기록이 남아있는 식진록(食珍录)에는 '구운오리 요리'에 대한 언급이 남아있다. 오리구이 요리의 형태가 또다시 언급된 것은 원나라 시기의 일로, 왕실의 음식준비 매뉴얼인 음선정요(饮膳正要)에 "오리구이(烧鸭子)"라는 이름으로 언급된다. 물론 이 시기의 오리구이가 지금의 베이징덕과 같지는 않다. 오리구이 요리가 점점 형태를 갖춰간 것은 명-청 시기의 일로, 명나라 영락제 집권 시기인 1416년에는 편의방(便宜坊)이라는 이름의 베이징덕 전문점이 베이징에 설립되기도 했으며, 편의방의 오리굽기 기법은 중국 국가급 무형문화재로까지 선정되기도 했다.
초기의 오리구이는 불로 직접 오리를 구운 형태의 오리였다면, 현재처럼 오븐형태의 화로에서 간접가열하는 방식은 명나라 시대에 시작됐다. 크게 밀폐식 화로, 걸이식 화로를 사용하는 두 가지 방식으로 나뉘는데, 밀폐식 화로의 경우, 오븐과 같이 밀폐된 화로에 오리를 넣고 열기로 익히는 방식으로 육즙이 보존돼서 촉촉한 식감이 특징인 반면, 걸이식 화로구이의 경우 오리를 갈고리에 걸어 화로 내부에서 과일나무 장작불로 직접 구워내는 방식으로 껍질이 더욱 바삭해지고 과일나무 연기 향이 배어 풍미가 독특해지는 특징이 있다. 현재 우리가 먹는 베이징덕은 맛을 좋게 하기 위하여, 오리를 도축 후 대롱 등으로 껍질과 살 사이에 공기를 주입하여, 껍질은 더욱 바삭하게, 살코기는 더욱 촉촉하게 유지해준다고 한다. 또, 베이징덕의 바삭한 껍질에서 나오는 윤기는, 오리 표면에 바른 맥아당에서 나오는 것으로, 오리를 굽기 전에 맥아당을 발라가며 충분히 수분을 건조시키는 데서 기인한다.
이토록 음식에 진심인 중국인들이 조리법을 열심히 연구한 덕분에, 베이징덕은 중국 황실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기록에 의하면, 청나라의 전성기를 이끈 황제인 건륭제는 1761년 3월 5일부터 17일 사이 13일간 8 차례나 오리구이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라고 하니 이 오리구이에 대한 권력가들의 사랑이 대단했던 것 같다.
베이징에 베이징덕이 있다면, 중국의 남쪽 지방에는 광둥 지방의 "피엔피야(片皮鸭)"와 난징의 "옌수이야(盐水鸭)"를 빼놓을 수 없는데 모두 오리를 주재료로 하고 있지만 조금씩 다른 면이 존재한다.
피엔피야의 경우 기본적으로 오리구이라는 점에서는 같고 실제로 먹는 방식도 비슷하지만 세부적인 굽는 방식, 칼로 자르는 방식 등에서 미세한 차이가 난다. 베이징덕의 경우 현재 보편적인 방식은 화로 안에 과일나무 숯으로 연기를 내어 향긋한 향을 입히는 방식이 주로 사용된다고 하는데, 피엔피야의 경우 오리의 뱃속에 직접 향료를 넣어서 향을 입히는 방식이 사용된다. 옌수이야의 경우는 조금 다른데 일단 색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소금물에 절인 오리를 팔각, 정향, 산초, 식초, 생강 등을 넣어서 향을 입히면서 졸이는 요리이다. 언뜻 먹어보면 약간 백숙 같은 식감에 중국 향신료들의 향을 진하게 느낄 수 있는 요리이다.
중국 황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베이징덕이 본격적으로 서방에 알려진 것은, 죽(竹)의 장막 속에 철저히 가려져 있던 중국이 본격적으로 미국과 수교를 추진하던 1970년대의 일이다. 1971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비밀 특사로 베이징에 도착한 헨리 키신저 당시 국가안보보좌관은 중국 저우언라이(周恩来) 총리와 장시간에 회담을 갖게 됐다. 회담은 당연히 매우 무겁고 엄숙하고, 서로 경계하는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장시간의 회담에 서로가 지쳐갈 때쯤 저우언라이의 한 마디가 무거운 회담장의 분위기를 띄우는 데 성공한다.
"我们不如先吃饭,烤鸭要凉了“ (식사 먼저 하시죠. 오리구이가 식겠습니다.)
저우언라이 총리는 맛있는 음식이 딱딱한 외교 테이블의 분위기를 어떻게 한 순간에 부드럽게 만들 수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저우 총리는 특히 베이징덕을 자주 애용하여 베이징덕 전문점인 취앤쥐더에서 27차례나 외빈을 맞이하는 연회를 개최했다고 알려진다. 이 날 키신저와 저우언라이의 오찬에는 베이징덕을 메인으로 하여 12개의 음식이 제공됐고, 건배에는 그 유명한 마오타이주가 사용되었다. 유쾌한 오찬 덕분인지 다음 날부터 양국 간 회담은 급진전되기 시작했고, 급기야 이듬해인 1972년 2월 닉슨 대통령의 방중으로 이어져 미중 양국 간의 역사적인 수교가 이루어졌다.
1주일에 걸친 닉슨 대통령의 방중 기간 동안, 중국 측은 세심하게 준비한 연회 음식들로 미국인들을 단숨에 매료시켰다. 미국 대통령의 첫 중국 방문이라는 역사적인 순간을 지켜보던 수 백만 미국인들은 양국 지도자들이 즐기는 중국 전통음식들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게 됐고, 그간 볶음면, 볶음야채 정도의 미국식 중국요리에만 익숙했던 미국 내에서 일종의 '중국요리 붐'을 일으키게 된다. 급기야 당시 뉴욕 맨해튼의 Shun Lee Palace라는 한 중식당의 셰프였던 마이클 통(Michael Tong)은 닉슨 대통령이 중국 현지 연회에서 먹는 메뉴를 그대로 재현한 메뉴들을 당시 가격으로 $25에 판매하기까지 했다.
베이징덕의 매력에 빠진 미국 대통령은 닉슨만이 아니었다. 조지 H.W. 부시 대통령은 1974년 당시, 포드 대통령에 의해 지금의 주중대사에 해당하는 주베이징 연락처장으로 부임하게 된다. 그는 부인 바바라 여사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베이징 골목골목 누비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고 하는데, 베이징에서 보낸 14개월의 짧은 임기동안 베이징덕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부시 대통령의 베이징덕 사랑은 미국으로 귀임 후에도 계속됐다. 워싱턴 D.C.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버지니아에 Peking Gourmet Inn이라는 중식당이 있는데, 수도 워싱턴과 가까운 덕분에 많은 정치인, 유명인들이 찾는 명소로 알려져 식당 벽면에 유명인들의 사진이 가득하다. 베이징 근무기간 동안 베이징덕에 푹 빠진 부시 대통령은 생전 이 식당을 120차례 넘게 방문했다고 하며, 부시 대통령이 방문하면 즐겨 찾는 요리도 정해져 있을 정도로 오랜 단골 고객이었다고 한다. 이 식당의 베이징덕인지는 알 수 없으나, 조지&바바라 부시 부부의 결혼 50주년을 기념하는 금혼식 만찬에까지 베이징덕이 올라갔다고 하니 부시 대통령의 베이징덕 사랑은 대단했던 것 같다.
청 황실의 사랑을 받던 오리요리가 미국 대통령의 입맛을 사로잡기까지, 베이징덕과 관련된 흥미로운 일화들은 단순한 미식의 즐거움을 넘어 음식이 가진 외교적, 정치적 의미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72년 닉슨 대통령의 방중 이후로 방문한 수많은 미국 정치인, 기업인들은 중국을 방문할 때마다 베이징덕을 맛봤고 이는 자연스럽게 중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경험하는 하나의 ‘통과의례’처럼 자리 잡았다. 부시 대통령이 중국을 떠난 뒤 미국에서 매번 베이징덕을 먹을 때마다 떠올렸을 법한 것들은 단순히 맛 좋은 오리가 아니라, 베이징에서의 추억들과 중국과의 인연일 것이다. 한 접시의 오리고기가 두 나라의 외교관계를 결정할 수는 없겠지만, 음식이 인간적인 교감을 만들고 경직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처럼 미식은 때때로 가장 부드럽고 강력한 외교의 도구가 된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오늘날 우리도 즐겨 먹는 베이징덕은, 한 때 원수와도 같이 서로를 적대했던 두 나라의 정치 지도자들이 한 테이블에 앉아 함께 나눈 상징적인 요리로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