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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食의 정치학] 근대화와 제국의 식탁

경양식(Yoshoku)

by 아틀라스

2024년, 도쿄 긴자에 위치한 130여 년 역사를 지닌 한 경양식집이 갑자기 한국 뉴스 피드에 등장했다. 렌가테이(煉瓦亭)라는 일본 최초의 경양식집이자 오므라이스를 처음으로 소개한 집으로도 알려져 있는 식당이다. 기미다 후시오 당시 일본 총리가 윤석열 대통령이 오므라이스를 좋아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고른 정상만찬 장소였다.


렌가테이 맥주로 건배하는 두 정상


우리에게 돈까스, 오므라이스 등으로 친숙한 경양식은 1980-90년대 인기 있는 외식장소였지만, 그 후로 패밀리레스토랑에 밀리고 한국 외식문화가 발달하면서 차츰 그 자취를 감춰버리고 말았다. 나도 한 동안 경양식은 서울에서 잘 구경 못하다가 역시 경양식의 발상지(?)라 할 수 있는 일본에서 추억의 맛을 다시 접하게 되었다.




10월의 교토는 습하진 않지만, 아직 한국의 가을과는 비교할 수 없이 햇빛이 쨍쨍했다. 같이 간 친구가 교토에서 꼭 먹어야 할 경양식집이 있다고 했을 때, 더군다나 줄까지 서서 먹어야 한다고 했을 때, 난 굳이 경양식을 그렇게까지 먹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었다.



평일이었음에도 현지인들로 북적거리는 식당 앞에 한 40분가량 줄을 서서 들어간 내부는 허름했지만 정갈한 편이었다. 착석해서 주문을 마치고 나면 애니메이션에 나올법한 포스의 남자분이(주인일지도?) 독특한 방식으로 물을 따라준다. 가장 인기 있는 메뉴인 오므라이스와 돈까스, 그리고 비프스튜를 주문하고 주변을 찬찬히 둘러봤다. 혼자 와서 오므라이스만 먹고 가는 중년 남성, 다소곳한 차림으로 조용히 식사를 마치고 가는 노부부까지. 단순히 관광객들이 들리는 뜨내기 식당이 아닌 오랜 세월 현지인들과 함께해 온 로컬식당임이 분명해지는 순간이었다.



기다리던 음식이 등장했다. 꾸밈없는 그대로의 정말 담백한 구성이다. 특히 돈까스 밑에 깔린 스파게티면과 함께 나온 먹지 못하는 파슬리를 마주쳤을 땐 순간 어린 시절의 장면들이 떠올라 절로 웃음이 나기도 했다. 기대감을 갖고 한입씩 먹어본 순간, “와…”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정말 우리가 아는 살짝 케첩맛이 나는 볶음밥에 계란을 덮은 단순한 오므라이스인데 함께 곁들여진 소스에서 느껴지는 진한 감칠맛의 차원이 다르다. 지금도 종종 생각나는 나의 원픽은 저 비프스튜이다. 처음에 나는 서양식 비프스튜를 생각하고 주문했다가 다소 다른 비주얼에 살짝 갸우뚱했는데 한 입 먹어보고 진하고 입에 착 달라붙는 소스맛에 정신없이 먹었던 기억이 있다. 단순한 데미글라스 소스 베이스인 것 같은데 어떻게 이렇게 깊은 맛이 나는지… 정말 단순하다면 단순한 이 요리에서조차 장인 정신을 느끼는 순간이다.




일본에서 경양식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일본의 근대화 과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사회전반적인 근대화/서양화를 단행하며 식문화에도 대대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일본 최초의 서양요리점은 일찍이 개항한 나가사키에 위치한 료린테이(良林亭)로, 네덜란드 상사에서 일하던 쿠사노 조키치가 서양요리를 배워 메이지 유신보다도 먼저인 1863년에 개업했다. 본격적으로 서양요리가 발전하게 된 것은 수도 도쿄에 1872년에 개업한 츠키지 세이요켄(精養軒)이 개업하면서부터였다. 당시 개업한 서양요리 식당들은 전통적인 프랑스 요리를 주로 하고 있었는데, 그 당시에도 프랑스 요리는 고급요리로 여겨져 상류층만이 소비가 가능했고, 간편하고 저렴한, 일본화된 서양요리, 즉 경양식이 비로소 탄생하게 된다.


도쿄 츠키지 세이요켄의 모습. 훗날 관동대지진으로 인해 파괴된다.
세이요켄에서 제공하던 메뉴. 1915년 1월 12일자라고 적혀있다.

앞에서 언급한 도쿄의 렌가테이는 서양요리의 인기에 힘입어 본격적인 경양식을 발전시킨 식당으로 서양의 포크커틀렛을 개량한 돈카츠와 오므라이스 등 경양식 발전의 기틀을 닦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일본에서 불기 시작한 서양요리의 바람은, 일본의 군국주의 확장과 더불어 더욱 거세지기 시작한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를 쟁취한 일본은, 국민건강 및 군인체력 증진을 목표로 육류 섭취를 더욱 강조하며 군대 급식에도 양식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다. 메이지 유신 이전 에도시대의 전투식량은 기껏해야 말린 곡물, 미소된장, 우메보시와 같은 보존성이 높은 절임류로 소박하고 단순한 식단 위주였던 일본군 전반에, 영국의 비프스튜에서 영감을 받은 카레라이스, 고기와 야채요리 등이 제공되기 시작했다. 물론, 2차 대전이 본격화되면서 물자부족으로 고기공급은 장교급에게나 제공되었지만, 전반적인 식문화에 큰 변혁이 있던 것은 사실이었다.


1930-40년대 일본이 대만,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을 점령하면서 경양식은 제국의 식문화로 동아시아 각지로 전파되었다. 당시 조선의 경성에도 1925년 옛 서울역사에 첫 경양식당인 서울역 그릴이 개업했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서울역 그릴은 몇 번의 폐업과 경영권 교체를 거치다가 2021년에야 최종 폐업하고 만다.


1925년 서울역사(당시 경성역)에 개업한 서울역 그릴

오스트리아의 슈니첼, 영국의 비프스튜 등을 개량한 돈카츠, 카레라이스 위주이던 일본의 경양식은, 일본은 패전 이후, 미 군정기를 거치며 다시 한번 발전하게 된다. 미국인들의 수가 증가하고 미국산 밀가루, 우유 등 물자가 풍족해지면서 팬케이크, 크림스튜, 나폴리탄 스파게티 등이 이 시기에 도입된 메뉴들이었다.


이처럼 일본의 경양식은 일본 근대화의 산물이자, 전후 미국과의 관계 속에서 재구성된 요리 문화였다. 전쟁 전 경양식이서양의 맛을 일본식으로 변형한 근대화의 상징이었다면, 전후에는 미 군정기를 거쳐 다시 한번 현재의 경양식 모습으로 진화하게 된다.


이후 일본 경제가 고성장기에 접어들며 경양식은 1950-60년대 고도 성장기의 대중적인 외식문화로 자리 잡고, 현대에는 일본의 ‘쇼와 레트로’ 감성을 대표하는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결국 경양식은 단순한 서양음식이 아니라 근대화와 전쟁, 그리고 전후 부흥기를 거치며 발전해 온 일본 요리의 정체성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이 서구문화와 경제사회적 변화를 어떻게 수용하고, 또 어떻게 일본식으로 변화시켰는지 엿볼 수 있는 상징적인 음식이다.


-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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