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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유산: 플랫폼 산업의 경쟁력과 역사적 맥락

by 아틀라스

오늘날 글로벌 플랫폼 산업의 지형도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패턴이 발견된다. 과거 제국주의와 글로벌 네트워크를 관리한 경험이 있는 국가들이 현대 플랫폼 산업에서도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한국과 같이 제조업에서는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었음에도 플랫폼 산업에서는 상대적 약세를 보이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러한 현상의 배후에 있는 역사적 맥락, 특히 제국주의 경험과 현대 산업 역량 사이의 연결고리를 탐구해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플랫폼 산업'이란 단순히 디지털 플랫폼뿐만 아니라, 금융, 물류, 무역 네트워크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연결하고 거래를 중개하는 모든 형태의 비즈니스 모델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확장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현대 플랫폼 산업의 구조는 각국이 역사적으로 발전시켜온 글로벌 네트워크 관리 방식과 놀라운 유사성을 보인다.


제국주의 경험과 산업 역량의 연결고리

유럽식 제국주의: 전통적 식민 강대국들의 사례

전통적인 식민제국을 운영했던 유럽 강대국들은 수세기에 걸쳐 복잡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관리했다.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은 식민지에서 원자재를 조달하고, 가공하며, 시장을 개척하는 전 과정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세계 경제 시스템을 구축했다.


영국의 경우, 복잡한 무역 네트워크와 식민지 관리 시스템을 통해 자원의 효율적 배분, 위계적 관리 체계, 그리고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 능력을 발전시켰다. 이는 현대 플랫폼 기업들이 핵심 지식재산과 기술은 본국에 보유하면서 제조와 하위 단계 서비스는 다른 국가에 외주를 주는 방식과 구조적으로 유사하다.


미국식 제국주의: 대안적 제국 모델

미국은 전통적인 유럽식 식민 제국과는 다른 형태의 제국주의적 경로를 발전시켰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미국은 뚜렷한 제국주의 시기를 경험했다. 내부적으로는 서부 개척 과정에서 원주민들에 대한 정책이 일종의 내부 식민화로 작용했으며, 외부적으로는 1898년 스페인-미국 전쟁 이후 필리핀, 푸에르토리코, 괌 등을 획득하고 하와이를 병합하는 등 해외 영토 확장을 추구했다.


그러나 미국의 제국주의는 유럽 강대국들과는 몇 가지 중요한 차이점을 보였다. 첫째, 상대적으로 기간이 짧았고, 둘째, 직접 통치보다는 경제적 영향력을 통한 간접 지배 방식을 더 많이 활용했다. 특히 중남미 지역에서 '달러 외교'와 군사적 개입을 통해 경제적 종속 관계를 형성한 것은 미국식 제국주의의 특징적 양상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브레튼우즈 체제 구축, 마셜 플랜을 통한 유럽 재건, NATO와 같은 군사 동맹 네트워크, 그리고 냉전 시기의 글로벌 경제-안보 시스템 관리를 통해 더욱 정교한 형태의 제국주의적 네트워크를 발전시켰다. 이는 전통적인 식민지 경영과는 다르지만, 사실상 '신제국주의(neo-imperialism)'로 볼 수 있는 글로벌 영향력 시스템이었다.


특히 미국의 경우, 직접적인 통치보다는 경제, 군사, 문화적 영향력을 통한 '소프트 파워'와 네트워크 중심성에 기반한 시스템 관리 방식을 발전시켰는데, 이는 현대 디지털 플랫폼의 운영 방식과 놀랍도록 유사한 구조를 가진다.


중국의 대안적 역사적 경험

중국의 경우는 서구식 제국주의나 미국식 냉전 네트워크와는 또 다른 독특한 역사적 경로를 보여준다. 중국은 전통적인 의미의 해외 식민지를 많이 운영하지는 않았지만, 수천 년에 걸친 황제-제후 시스템과 조공 체계를 통해 주변국들과 위계적 관계를 형성하고 관리해왔다. 토번, 고구려, 남만 등 주변국들과의 관계 속에서 중앙-주변부 관계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발전시켰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현대 중국의 디지털 플랫폼 산업 발전과 글로벌 전략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알리바바, 텐센트와 같은 중국의 플랫폼 기업들은 내수 시장에서의 강력한 위치를 바탕으로 점차 글로벌 시장으로 확장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으며, 중국 정부의 일대일로 정책은 디지털 인프라 구축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네트워크 중심국가로 발돋움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일본의 제한적 글로벌 네트워크 경험

일본의 경우, 메이지 유신 이후 급속한 근대화와 함께 짧은 기간 동안 제국주의적 확장을 추구했으나, 서구 열강이나 미국과 같은 수준의 글로벌 네트워크 관리 경험을 축적하지는 못했다. 일본의 식민지 통치는 약 50년 정도로 상대적으로 짧았으며, 주로 직접 통치와 자원 추출에 집중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의 차이는 현대 일본 기업들이 제조업에서는 뛰어난 경쟁력을 갖추었으나, 글로벌 플랫폼 구축에서는 상대적으로 약세를 보이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일본의 글로벌 네트워크 관리 경험이 서구 열강이나 미국만큼 '탄탄하지' 못했던 점이 현대 산업 구조에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다양한 유형의 현대 플랫폼과 역사적 연속성

디지털 플랫폼에서의 미국의 지배력

현대 디지털 플랫폼 산업에서 미국의 지배적 위치는 냉전 시기 구축된 글로벌 네트워크 관리 경험과 깊은 연관성을 갖는다. 애플, 구글, 아마존과 같은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은 생태계의 핵심 가치와 규칙을 설정하면서, 전 세계의 다양한 참여자들(개발자, 판매자, 콘텐츠 제작자 등)을 자신들의 플랫폼에 편입시키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특히 반도체 산업에서 이러한 패턴은 더욱 명확하게 나타난다. 미국 기업들은 고부가가치 설계와 IP는 자국 내에 보유하면서, 제조는 대만의 TSMC나 한국의 삼성전자와 같은 기업들에 맡기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는 냉전 시기 미국이 동맹국들과의 관계를 관리하던 방식과 구조적으로 유사한 측면이 있다.


인텔, 엔비디아, 퀄컴과 같은 미국 기업들은 설계와 아키텍처와 같은 지적 자산을 통제하며 산업 생태계의 정점에 위치하고 있다. 이들은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에서 우위를 점하는 방법, 즉 다른 국가의 기업들을 효과적으로 '하청' 구조에 편입시키는 전략을 능숙하게 구사한다. 이러한 능력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발전시켜온 글로벌 네트워크 관리 경험에서 비롯된 문화적, 제도적 유산이라고 볼 수 있다.


금융 플랫폼에서의 영국의 영향력

디지털 플랫폼에서 미국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면, 금융 플랫폼에서는 영국이 여전히 강력한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런던의 City of London는 글로벌 금융의 중심지로서, 전 세계 외환 거래의 약 40%, 국제 채권 발행의 약 60%, 국제 보험 시장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금융 허브로서의 지위는 영국이 과거 대영제국 시대부터 구축해온 글로벌 무역 및 금융 네트워크의 현대적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다.


영국의 금융 시스템은 다양한 국가와 기업, 개인들 사이의 자본 흐름을 중개하고 조정하는 '플랫폼' 역할을 한다. 이는 19세기 영국이 파운드화를 기축통화로 하여 국제 금융 질서를 관리했던 방식과 구조적으로 유사하다. 비록 현대에는 미국 달러가 기축통화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영국은 여전히 국제 금융의 '규칙 제정자(rule-setter)'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물류 플랫폼에서의 네덜란드의 우위

네덜란드는 과거 동인도회사를 통한 글로벌 무역 네트워크 경험을 바탕으로 현대에는 유럽 최대의 물류 허브인 로테르담 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물류 플랫폼을 발전시켰다. 로테르담 항은 단순한 항구가 아니라, 복잡한 글로벌 공급망을 연결하고 조정하는 '물류 플랫폼'으로 기능한다.


네덜란드의 물류 시스템은 17세기 '황금시대' 동안 발전시킨 글로벌 무역 네트워크 관리 경험의 현대적 변용이라고 볼 수 있다. 비록 네덜란드가 더 이상 강대국의 지위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글로벌 물류와 무역 네트워크에서는 여전히 중요한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다양한 역사적 경로와 플랫폼 역량

이렇게 다양한 역사적 경험은 현대 플랫폼 산업에서 각국이 차지하는 위치와 무관하지 않다.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해볼 수 있다:


전통적 식민 제국 경험 국가(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수세기에 걸친 식민지 경영과 글로벌 네트워크 관리 경험을 바탕으로 각기 다른 유형의 현대 플랫폼 산업에서 강세를 보임 영국: 금융 플랫폼, 글로벌 금융 네트워크 네덜란드: 물류 플랫폼, 국제 무역 네트워크 프랑스: 인프라 및 에너지 네트워크


미국식 제국주의 경험 국가(미국): 19세기 말부터의 제국주의적 확장과 2차 세계대전 이후 구축한 경제-안보 네트워크 관리 경험을 바탕으로 디지털 플랫폼과 기술 IP 분야에서 주도적 위치 차지


피식민 경험국(한국, 대만): 제조업에서는 강한 경쟁력을 갖추었으나, 글로벌 네트워크 관리 경험 부족으로 플랫폼 구축에서는 상대적 약세


하이브리드 경험(일본, 중국): 제한적 제국주의 경험(일본) 또는 대안적 위계 시스템(중국)을 바탕으로 독자적 플랫폼 발전 경로 모색


이러한 차이는 단순히 경제적, 기술적 격차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문화적, 제도적 차원의 차이를 반영한다. 글로벌 네트워크를 관리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효과적으로 조정하는 역량은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수세기에 걸친 역사적 경험 속에서 축적된 집단적 지식과 기술의 산물이다.


한국의 도전과 기회

한국의 경우, 일제 식민지 경험과 이후의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효율적인 제조 역량을 발전시켰지만, 글로벌 네트워크를 주도적으로 관리하는 경험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삼성전자, LG전자와 같은 기업들이 제조업에서는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었지만, 글로벌 플랫폼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는 한계를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는 결정적 한계라기보다는 극복 가능한 도전과제로 볼 수 있다. 한국 기업들은 제조업에서의 강점을 바탕으로, 점진적으로 가치사슬의 상류로 이동하는 전략을 모색할 수 있다. 특히 반도체 산업에서 삼성전자가 단순 제조를 넘어 설계와 IP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려는 시도나, 네이버, 카카오와 같은 기업들이 아시아 시장을 중심으로 플랫폼 사업을 확장하는 전략은 이러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더불어, 한국은 제조업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제조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가능성도 있다. 즉, 글로벌 제조 네트워크를 효율적으로 연결하고 조정하는 플랫폼을 구축함으로써, 과거 글로벌 네트워크 관리 경험의 부재라는 역사적 한계를 창의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결론

역사적 경험이 현대 산업 역량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함으로써, 단순히 경제적, 기술적 요인을 넘어선 보다 깊은 차원의 이해가 가능해진다. 과거 제국주의 강대국들이 현대 플랫폼 산업에서도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현상은 우연이 아니라, 수세기에 걸친 글로벌 네트워크 관리 경험이 남긴 문화적, 제도적 유산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특히 '플랫폼'의 개념을 디지털 기술 기반의 온라인 서비스에서 더 확장하여, 금융, 물류, 무역 네트워크 등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 이해할 때, 이러한 역사적 연속성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영국의 금융 플랫폼, 네덜란드의 물류 플랫폼, 미국의 디지털 플랫폼 등은 각국이 역사적으로 발전시킨 서로 다른 유형의 네트워크 관리 역량이 현대적 맥락에서 재해석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한국과 같은 국가들이 플랫폼 산업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극복해야 할 도전과제가 단순히 기술적 격차가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역사적, 문화적 차원에 있음을 시사한다. 동시에 미국이나 중국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반드시 전통적 유럽식 제국주의 경험만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제국주의적 네트워크 관리 경험을 통해서도 강력한 플랫폼 역량을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


결국 미래 플랫폼 산업에서의 성공은 과거의 역사적 경험을 이해하고, 그것을 현대적 맥락에서 재해석하며, 각국의 고유한 강점을 바탕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해내는 능력에 달려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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