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신산", 실리콘 실드라는 신화
대만 신주(新竹)의 한적한 사이언스 파크. 유리와 철골 구조의 평범해 보이는 건물은 이곳이 세계 시가총액 10위 기업의 본사와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소박하고 실용적인 외관의 TSMC(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mpany) 본사는, 화려한 건축물로 자신의 위상을 드러내는 다른 글로벌 테크 기업들과는 달리, TSMC는 마치 자신의 존재감을 의도적으로 낮추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이 소박한 외관 뒤에는 현대 기술 문명의 근간을 지탱하는 거대한 힘이 숨어있다. 세계 최고의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인 TSMC는 대만 사람들에게 단순한 기업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들은 이 회사를 "호국신산(護國神山)"이라 부른다. 직역하면 "국가를 수호하는 신성한 산"이라는 뜻이다. (원래 호국신산은 대만의 5대 산맥 중 하나인 중앙산맥을 뜻하는 말로서, 매년 태풍으로 인해 피해가 막대한 대만을 지켜준다는 의미에서 붙인 말이다.) 이 단어 하나에 대만 국민들이 TSMC에 부여하는 의미와 기대가 모두 담겨 있다.
"내가 처음 TSMC를 설립했을 때는 단지 반도체 위탁생산이라는 비즈니스 모델을 실험해보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반도체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국가 안보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TSMC의 창업자 모리스 창(Morris Chang, 장중모/張忠謀)이 2020년 한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1987년 57세라는 늦은 나이에 TSMC를 창업한 그는 당시만 해도 자신의 회사가 이렇게 지정학적 중요성을 갖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모리스 창의 비전은 혁신적이었다. 그는 설계와 제조를 분리하는 팹리스(설계)-파운드리(제조) 모델을 세계 최초로 확립했다. 이전까지 반도체 업계에서는 인텔이나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처럼 설계부터 제조까지 모두 자체적으로 하는 IDM(종합반도체기업) 모델이 표준이었다. 창은 이 고정관념을 깨고 "우리는 오직 제조만 전문으로 하되, 세계 최고로 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모든 고객에게 공정하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어떤 고객의 기밀도 다른 고객에게 누설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TSMC의 핵심 가치가 되었다. 이 '중립성'은 결국 애플, 퀄컴, 엔비디아, AMD, 심지어 최근에는 인텔까지 모두를 TSMC의 고객으로 만들었다.
TSMC의 글로벌 반도체 산업 내 지위는 상상을 초월한다. 현재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시장에서 약 50%의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2위 삼성전자(10%대 초반)의 4배가 넘는 수치다. 특히 첨단 공정(5나노미터 이하) 분야에서는 거의 독점에 가까운 90%의 시장 점유율을 자랑한다. 이런 압도적 기술력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TSMC는 1987년 설립 이후 한 번도 적자를 기록한 적이 없으며, 그 수익의 상당 부분을 연구개발에 재투자했다. 2022년 기준 R&D 투자액만 약 54억 달러(한화 약 7조원)에 달한다. 이는 매출의 약 8.5%에 해당하는 액수다.
TSMC의 공장, 특히 팹(Fab)이라 불리는 반도체 생산시설은 기술의 경이로움을 보여주는 현장이다. 팹 18은 2023년 현재 세계 최첨단 공정인 3나노 공정이 가동되는 곳이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칩은 머리카락 굵기의 수천분의 일 크기의 트랜지스터를 수십억 개 포함하고 있다. 심지어 공기 중 먼지 입자 하나도 치명적인 결함을 일으킬 수 있어, 생산 시설의 청정도는 병원 수술실의 수백 배에 달한다. 이 기술력은 단순히 기계와 장비의 문제가 아니다. TSMC의 진정한 자산은 6만 명이 넘는 엔지니어들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대만 최고 공과대학인 국립타이완대학교, 국립칭화대학교, 국립교통대학교 출신들로,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기술을 다루는 전문가들이다.
이러한 TSMC의 압도적인 기술력과 시장 지배력은 자연스럽게 '실리콘 실드(Silicon Shield)'라는 개념을 탄생시켰다. 이 용어는 2001년 미국 기자 크레이그 애디슨이 그의 저서 「실리콘 실드: 대만의 보호 무기(Silicon Shield: Taiwan's Protection Against Chinese Attack)」에서 처음 사용했다. 이 개념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전 세계 반도체 공급망이 무너진다. 이로 인해 글로벌 기술 산업이 마비되고 엄청난 경제적 혼란이 발생할 것이다. 따라서 중국은 쉽사리 대만을 공격할 수 없고, 미국과 일본 등 서방 국가들은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대만 방어에 적극 나설 것이다.
이 논리는 매우 단순하면서도 강력하다.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들 사이에 '상호확증파괴(MAD, Mutually Assured Destruction)' 원칙이 전쟁을 억제하는 것처럼, TSMC는 경제적 '상호확증파괴'를 통해 대만의 안보를 지킨다는 것이다. 대만 언론과 학계에서는 종종 "TSMC는 우리의 원자폭탄과 같다"는 비유가 사용된다. 핵무기와 마찬가지로 사용되지 않을 때 비로소 효과가 있다는 논리다. 실제로 전쟁이 발생한다면 TSMC의 가치는 크게 감소할 것이다. 첨단 장비들이 파괴되고, 핵심 인재들이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생산 능력이 마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TSMC는 대만의 자산이면서 동시에 인질이기도 하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한다면 가장 먼저 잃게 될 것은 바로 TSMC의 생산 능력일 것이기 때문이다.
TSMC는 대만인들에게 엄청난 국민적 자부심의 원천이다. 대만 언론에 따르면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TSMC는 우리 대만인의 자부심"이라는 표현이 자주 사용된다고 한다. 세계 최고의 반도체를 만드는 기술력이 자국에 있다는 사실이 대만인들에게 큰 자긍심을 주는 것이다. TSMC의 주가가 오르내릴 때마다 대만 국민들은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거나 걱정하며, 많은 대만인들이 직접 TSMC 주식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동시에 불안감도 공존한다. 대만 내 여론조사에 따르면 "실리콘 실드가 정말 대만을 지켜줄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가진 시민들도 상당수다. 일부는 중국이 결정적인 순간에는 경제적 이성보다 정치적, 역사적 목표를 더 중요시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표명한다. 이러한 의구심은 학계에서도 제기된다. 국립대만대학교의 우지엔종 교수는 "실리콘 실드는 부분적으로는 집단적 환상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미국이 반도체 자급력을 높이기 위해 '칩스 액트(CHIPS Act)'를 통과시키고 TSMC의 아리조나 공장 건설을 적극 지원하는 상황에서, TSMC의 지정학적 중요성은 시간이 갈수록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
더욱 주목할 만한 것은 최근 중국 정치 지형의 미묘한 변화다. 2025년 3월 개최된 중국의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는 이전과 달리 '평화통일'이라는 표현이 사라졌다. 이는 중국의 대만에 대한 정책 기조에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신호로 해석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중국이 더 강경한 접근법으로 전환할 가능성을 경고하는 반면, 다른 전문가들은 단순히 수사적 변화일 뿐 실질적인 정책 변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분석한다. 이처럼 불확실한 지정학적 상황은 '실리콘 실드'의 효과에 대한 의문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특히 중국의 대만 통일 의지가 점점 더 강해지는 상황에서, 경제적 이성만으로 전쟁을 막을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론도 커지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여러 차례 "대만 통일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며 "필요하다면 무력 사용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TSMC의 공장들은 오늘도 24시간 쉬지 않고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제품들을 생산하고 있다. 청정실 안에서 웨이퍼(반도체 원판)가 로봇 팔에 의해 정교하게 이동될 때마다, 대만의 미래도 함께 움직이는 듯하다.
TSMC의 최첨단 공장은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제조 시설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공개된 자료와 보도에 따르면, 팹 18과 같은 최신 공장의 내부는 마치 SF 영화의 한 장면과 같다고 한다. 노란 빛의 청정실 안에서는 수백 대의 첨단 장비들이 자동화된 시스템으로 작동하고, 소수의 엔지니어들만이 특수 방진복(번디슈트)을 입고 모니터링을 한다. TSMC가 발표한 기술 자료에 따르면, 3나노 공정으로 생산되는 칩 하나에는 약 1000억 개의 트랜지스터가 들어있다. 인간의 상상력을 초월하는 숫자다. TSMC는 이 기술에 대해 "현재 TSMC만이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공정"이라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동시에 TSMC의 경영진은 여러 인터뷰와 성명을 통해 책임감도 표현해왔다. "우리가 만드는 칩이 세계 경제에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으며,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미중 기술 경쟁이 심화되면서, TSMC가 그 한가운데 있다는 점에 대한 우려도 공식적으로 표명된 바 있다. 실제로 TSMC는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의 최전선에 서 있다.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 발전을 저지하기 위해 TSMC에 중국 기업들과의 거래를 제한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 동시에 TSMC에게 미국 내 공장 건설을 적극 유도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대만을 자국 영토의 일부로 간주하며, TSMC를 포함한 대만의 첨단 기술력을 언젠가는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겠다는 야망을 숨기지 않는다. 이러한 강대국 사이의 틈바구니에서, TSMC는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다. TSMC의 현 회장 마크 리우(劉德音)는 "우리는 어느 한 국가의 기업이 아니라 글로벌 기업"이라며, "모든 고객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우리의 원칙"이라고 강조한다.
TSMC의 미래, 그리고 이와 밀접하게 연결된 대만의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실리콘 실드'가 정말로 대만을 보호할 수 있을지, 아니면 단지 위안을 주는 환상에 불과한지는 아직 증명된 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TSMC가 단순한 기업을 넘어, 현대 기술 문명의 근간이자 국제 지정학의 중요한 변수로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소박한 외관의 그 회사 건물 안에서는 오늘도 세계 최첨단 기술이 만들어지고, 동시에 한 국가의 운명이 함께 움직이고 있다. 대만 타이베이의 밤. 101 타워의 화려한 조명이 도시를 비추는 가운데, 멀리 신주에 있는 TSMC의 공장들은 조용히, 그러나 쉬지 않고 돌아가고 있다. 그곳에서 생산되는 작은 칩들이 모여 강력한 '실리콘 실드'를 형성하고, 대만이라는 섬나라를 지키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기대를 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