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erica First와 실리콘 실드의 균열
2025년 3월 5일, 엘브리지 콜비(Elbridge Colby) 미국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 후보자는, 이 날 열린 상원 군사위원 인사청문회에서, “대만이 미국에 중요한 것은 맞지만, 실존적인(existential) 이해관계는 아니며, 동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실존이익은 중국 저지이다.”라는 의견을 밝혀 파장을 일으켰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안보 책사라 불리던 인물의 발언인만큼, 트럼프 행정부 전반에 걸친 안보관을 한 마디로 집약해놓은 발언이라고 할 수 있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중국과의 군사적 충돌에서 미국이 승리할 가능성은 매우 불확실하다"는 그의 냉정한 평가였다. 콜비는 "대만 방어를 위한 전쟁에서 미국은 항공모함과 수만 명의 병력을 잃을 수 있으며, 이는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이라는 분석도 내놓았다.
이런 발언들의 파장은 컸다. 대만 언론은 일제히 "미국의 전략적 모호성이 깨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질문은 이어졌다. "정말 전쟁이 나면, 미국은 우리를 도와줄까?"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미국 국방전략의 주요 설계자였던 콜비의 견해는 앞으로의 미국 대만 정책에 대한 불길한 예고편으로 읽힌다.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그가 더 중요한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관점이 미국의 공식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많은 이들이 오해한다. 1979년에 제정된 Taiwan Relations Act는 미국이 대만을 침공한 중국과 반드시 전쟁을 해야 한다고 규정하지 않는다. 이 법의 탄생 배경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79년, 카터 행정부는 중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해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하고, 대만(중화민국)과의 공식 외교 관계를 단절했다. 이것은 냉전 시대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전략 변화를 의미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만을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Taiwan Relations Act다. 이 법은 미국과 대만 사이의 '비공식적' 관계를 규정하면서, 동시에 대만의 안보를 어느 정도 보장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법안은 단지 이렇게 적혀 있다.
"미국은 대만이 자위 능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필요한 무기와 서비스를 제공한다. 미국은 대만의 미래가 평화적 수단 이외의 방법으로 결정되는 것을 중대한 우려사항으로 간주한다."
이 법은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작성되었다.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보호하겠다는 것, 중국의 군사적 행동에 반대하면서도 구체적인 대응 수준은 명시하지 않은 것, 그리고 "대만인들의 안전과 안보에 위협이 되는 어떠한 상황도 미국의 중대한 우려사항"이라고 하면서도 '중대한 우려'가 어떤 행동으로 이어질지는 밝히지 않은 것이다. 즉, 미국이 대만을 돕는다고는 했지만, 어느 수준까지 도울지에 대한 구체적인 약속은 없다. 미국은 지금까지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이름 아래, 개입 여부를 밝히지 않음으로써 억지력을 유지해왔다. 이 모호성이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의 핵심 전략이었다.
하지만 트럼프는 모호함을 싫어한다. 그는 선명하고 단순한 메시지를 좋아한다. "미국 우선"이라는 구호 아래, 군사 개입은 미국 본토의 안보에 도움이 될 때만 정당화된다. 바이든 행정부 시절에도 이미 변화의 조짐은 있었다. 백악관 안보 브리핑에서 한 관리는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최초 응답은 우크라이나와 유사할 것"이라고 시사했다. 즉, 직접적인 군사 개입보다는 무기 지원과 정보 공유, 경제 제재에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트럼프 2기에서는 이런 입장이 더 노골적으로 드러날 수 있다. 트럼프는 이미 1기 때 NATO 동맹국들에게 "미국이 왜 너희들을 위해 돈을 써야 하느냐"고 압박한 바 있다. 이제 그 논리가 대만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미국 내에서도 급격한 변화가 감지된다. TSMC는 애리조나에 지난 2020년 120억 달러를 투자해 파운드리 생산라인을 건설하기로 했고, 이후 투자규모를 650억 달러로 확대했다. 게다가 트럼프 2기 집권 이후 연일 이어지는 관세 폭탄과 동맹국을 향한 협박 아닌 협박에, 최근 TSMC는 향후 4년 간 미국에 최소 1000억 달러 추가 투자를 발표하기도 했다.
한때 '대만에서만 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첨단 공정이 이제 미국 땅에서 이뤄질 예정이다. 2026년에는 3나노 칩 생산도 시작되고, 엔비디아와 애플의 주문 일부도 이곳에서 처리된다. 이건 단순한 생산 기지 이전이 아니라, 기술 이전과 인력 이동을 동반한 '실리콘 심장'의 일부 이식 수술과도 같은 것이다. 애리조나 외에도 인텔은 오하이오에서 200억 달러 규모의 공장을 짓고 있고, 삼성은 텍사스에 170억 달러를 투자했다. 미국 정부는 반도체법(CHIPS Act)을 통해 이들 기업에 520억 달러의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이 모든 움직임은 하나의 목표를 가리킨다. '대만 의존도 줄이기'. 만약 미국이 더 이상 TSMC에 절대적으로 의존하지 않는다면, 실리콘 실드는 '대만을 수호해야할 명분'에서 '중립을 지킬 수 있는 핑계'로 바뀔 수 있다. 즉, 미국이 대만 방어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이유가 하나씩 사라지는 셈이다.
이건 단순한 추측이 아니다. 미 의회조사국(CRS)의 "Semiconductors and the CHIPS Act: The Global Context" 보고서는 "동아시아에 집중된 반도체 생산으로 인한 공급망 취약성"을 강조하며, "군사적 충돌과 같은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공급 중단이 미국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보고서의 결론은 명확하다 - 미국은 이 취약성을 줄이기 위해 국내 생산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 외교적 언어로 포장되었지만, 이 말의 속뜻은 분명하다. '미국 내 반도체 생산이 확보되면, 대만을 지키기 위해 전쟁을 할 필요성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실리콘 실드 논리의 핵심은 '대만이 없으면 첨단 반도체도 없고, 첨단 반도체가 없으면 미국의 첨단 산업과 군사력도 무너진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미국이 자체 생산 능력을 갖추기 시작하면 이 논리는 설득력을 잃게 된다.
트럼프의 재선은 그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그는 이미 1기 때 "대만은 우리에게 컴퓨터 칩을 만들어준다. 그들은 돈을 많이 번다"며 단순하게 접근했다. 그에게 대만은 '민주주의의 등불'이라기보다는 '비즈니스 파트너'에 가깝다. 그리고 '경제 우선, 안보 협상' 마인드를 가진 사업가 출신 대통령에게 "대만을 지키기 위해 항공모함과 수만 명의 병력을 잃을 수 있다"는 콜비의 분석은 강한 설득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과 함께, 대만 사람들은 이제 불편한 질문과 마주해야 한다. "우리가 믿던 실리콘 실드는 진짜 방패였을까, 아니면 우리 스스로를 안심시키기 위한 신화였을까? 그리고 그 방패의 효력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자신을 지킬 수 있을까?"
미국의 시각이 이렇게 바뀌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현실적인 군사 시나리오에 대한 분석 때문이다. 워싱턴 D.C.에 위치한 유명 싱크탱크 CSIS(전략국제문제연구소)가 2023년에 실시한 워게임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이 시뮬레이션에서 중국의 침공은 대부분 실패했다. 대만군이 초기 공격을 견디며 해안 방어에 성공했고, 미국과 일본의 지원으로 중국군의 상륙작전은 좌절됐다. 그러나 '승리'의 대가는 엄청났다.
미국은 항공모함 2척과 10~20척의 함정이 침몰하고, 약 3,200명의 병력이 전사하는 등 큰 손실을 입었다. 이는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20년 동안 잃은 병력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수치다. 심지어 보고서는, 전쟁으로 인한 막대한 물질적/비물질적 손실로 인해 한동안 세계 최강대국으로서의 중국은 더 큰 타격을 입어 약 1만 명의 병력이 전사하고, 주요 함정 138척과 항공기 155대를 잃는 등 해군이 괴멸적인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가장 비참한 결과는 대만이 겪었다. 3,500명의 병력이 전사하고, 해군 함정 26척이 침몰하는 등 심각한 전력 손실을 겪었다. 더 큰 문제는 전쟁으로 인해 대만 경제가 완전히 파괴되었다는 점이다. 세계 반도체의 심장부가 전쟁터가 되는 순간, TSMC의 공장들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된다. 이런 분석은 엘브리지 콜비의 "대만 방어를 위한 전쟁에서 미국은 항공모함과 수만 명의 병력을 잃을 수 있으며, 이는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이라는 경고와 일맥상통한다.
트럼프의 "America First" 정책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한다. 그렇다면 미국의 이익은 무엇일까? 중국을 견제하는 것? 물론이다.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대만을 군사적으로 방어한다는 뜻은 아닐 수 있다. TSMC 기술을 미국으로 가져오고, 대만의 두뇌들을 이주시키는 것만으로도 미국의 핵심 이익은 지켜질 수 있다.
블룸버그의 2023년 5월 보도에 따르면, TSMC는 애리조나 공장을 위해 수백 명의 대만 직원들을 미국으로 파견했다. 이는 단순한 인력 이동이 아니라 기술과 노하우의 이전을 의미한다. 2022년 8월,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 CHIPS and Science Act는 약 520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산업 지원책으로, 명시적으로 '국가 안보'와 '공급망 회복력' 강화를 목적으로 한다. 트럼프는 이전 인터뷰에서 "대만은 우리에게 컴퓨터 칩을 만들어준다. 그들은 돈을 많이 번다"라고 직설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그의 관점에서 대만은 '민주주의의 등불'이라기보다 '비즈니스 파트너'에 가깝다. 또한 트럼프는 임기 중 "미국은 더 이상 세계의 경찰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시진핑 주석은 2023년 3월 연설에서 "대만 문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하며, 평화적 통일이 우선이지만 무력 사용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밝혔다. 더 나아가 2022년 10월 중국 공산당 20차 당대회에서는 "대만 문제 해결을 위해 무력 사용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에게 대만 통일은 단순한 정치적 목표가 아닌 역사적 사명으로 인식되고 있다.
결국 미국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중국과 전면전을 벌이거나, 대만에 대한 지원을 제한적으로 유지하면서 점진적으로 반도체 기술과 인재를 미국으로 옮기는 것. 트럼프 2기 행정부는 후자를 선택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의 오랜 주장인 "미국은 더 이상 세계의 경찰이 아니다"는 동맹국들에게는 불안한 메시지지만, 미국 유권자들에게는 '집에서 우리 일이나 챙기자'는 매력적인 약속이었다. 2024년 대선에서 이 약속이 또다시 효과를 발휘했다는 점은 명백하다.
중국은 이미 2030년까지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기술을 확보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엄청난 국가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미국도 CHIPS Act를 통해 500억 달러 이상을 반도체 산업에 투자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만의 '실리콘 실드'는 점점 얇아질 수밖에 없다. 중국과 미국이 각자 반도체 독립을 추구하는 상황에서, TSMC의 중요성은 여전히 크지만 절대적이지 않게 된다.
대만 내부에서도 위기의식이 커지고 있다. TSMC 전 회장 모리스 장은 "실리콘 실드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개념"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우리가 가진 반도체 기술이 아무리 중요해도, 그것만으로 국가 안보가 보장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재선은 이런 위기의식을 증폭시키고 있다. 대만은 이제 "우리가 믿던 실리콘 실드는 진짜 방패였을까, 아니면 우리 스스로를 안심시키기 위한 신화였을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하게 됐다.
더 무서운 것은, 그 답이 무엇이든 지금은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이미 시작된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대만은 자신의 가장 큰 방패가 점점 약해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