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GeoSentinel

<배터리 제국: 중국 전기차 산업이 바꾼 세계> (1)

서론: 중국식 자본주의의 역설

by 아틀라스

예상치 못한 승자들

2023년, 충격적인 뉴스가 세계 자동차 업계를 강타했다. 중국의 전기차 제조사 BYD(比亚迪)가 테슬라를 제치고 세계 전기차 판매량 1위에 올랐다는 소식이었다. 불과 20년 전, 휴대폰 배터리 제조업체에 불과했던 이 중국 기업이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를 넘어선 것이다. 같은 해 11월, BYD는 분기 판매량 82만 대를 기록하며 테슬라(46만 대)와의 격차를 더욱벌렸다. 전기차 시장의 패권이 실리콘밸리에서 중국 선전(深圳)으로 이동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 성공 신화의 이면에는 우리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역설이 존재한다. 중국 정부가 수십 년간 전폭적으로 지원했던 국영 자동차 기업들—상하이자동차(SAIC), 제일자동차(FAW), 둥펑자동차—은 모두 전기차 전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상하이자동차는 로고의 ‘R’을 모티브로 한 전기차 브랜드를 출시했지만, 2023년 상반기 기준 중국 전기차 시장 점유율 2% 미만에 그쳤다. 제일자동차의 홍치(紅旗) 전기차 브랜드는 고급 시장을 겨냥했으나 NIO, 리오토 같은 신생기업들에게 밀려났다.


이는 중국 전기차 산업이 보여주는 가장 흥미로운 역설이다. 국가의 보호와 지원을 받은 거대 국영기업들은 실패하고, 상대적으로 자원이 부족했던 민간기업과 신생기업들이 성공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한걸까?


기존 설명의 한계

중국의 전기차 산업 성공을 설명하는 가장 흔한 서사는 “중국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과 시장 보호 정책이 전기차 산업을 키웠다”는 것이다. 2009년부터 2022년까지 중국 정부가 전기차 구매자와 제조사에 투입한 보조금은 약 2000억 달러(약 260조원)에 달한다. 여기에 충전 인프라 구축, R&D 지원, 각종 세제 혜택을 더하면 그 규모는 더욱 커진다.


그러나 이 설명은 한 가지 결정적인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왜 같은 보조금과 지원을 받은 기업들 중 일부는 성공하고 일부는 실패했는가? 더구나 정부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진 국영기업들이 오히려 뒤처진 이유는 무엇인가?


일부 전문가들은 “민간기업의 경영 효율성”이나 “시장환경에 대한 더 나은 적응력”을 언급한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깊이 있는 분석이라기보다 순환논리에 가깝다. 왜 국영기업은 효율적이지 못했는가? 왜 시장 적응에 실패했는가? 더 근본적인 질문들이 여전히 남아있다.


서방의 일부 전문가들은 이를 “국가 자본주의의 내재적 모순”으로 설명하려 한다. 그러나 이 역시 중국의 산업정책이 다른 분야—고속철도, 태양광 패널, 5G 통신—에서 거둔 성공을 설명하지 못한다. 전기차 산업에서 나타난 국영-민간 기업 간 성과 격차는 단순한 경제체제의 문제가 아닌, 더 복잡한 요인들이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패러다임 전환과 기술적 단절

더 깊은 이해를 위해서는 자동차 산업이 경험한 기술적 패러다임 전환의 본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내연기관 자동차에서 전기차로의 전환은 단순한 점진적 혁신이 아니라,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이 말한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에 가깝다.


내연기관 자동차는 엔진, 변속기, 배기 시스템 등 약 3만 개의 부품으로 구성된다. 그에 반해 전기차는 배터리, 모터, 전자제어 시스템을 중심으로 약 1만 개의 부품만으로 구성된다. 복잡한 기계 시스템에서 상대적으로 단순한 전기 시스템으로의 전환은 기존 가치 사슬과 핵심 역량을 근본적으로 재정의한다.


이러한 기술적 단절(technological discontinuity)은 기존 기업들에게 ‘혁신자의 딜레마’를 안겨준다. 상하이자동차와 같은 국영기업들은 폭스바겐, GM과의 합작을 통해 내연기관 기술에 대규모 투자를 해왔다. 이들에게 전기차로의 급격한 전환은 기존 투자와 역량의 가치 절하를 의미했다. 이른바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y)’의 함정이다.


반면 BYD와 같은 신규 진입자들은 이러한 부담 없이 전기차생태계에 맞춘 새로운 접근법을 취할 수 있었다. BYD는 배터리 제조업체로 출발해 역방향으로 자동차 산업에 진입했고, 처음부터 수직 통합형 공급망을 구축했다. NIO와 XPeng은 아예 자동차를 ‘스마트폰 위에 바퀴를 단 것’으로 재정의하며, 소프트웨어와 사용자 경험을 중심으로 한 비즈니스 모델을 발전시켰다.


지정학적 맥락: 에너지 안보와 기술 패권

중국 전기차 산업의 역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산업정책을 넘어 더 넓은 지정학적 맥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국의 전기차 굴기는 미중 기술 패권 경쟁과 에너지 안보라는 국가적 과제와 긴밀히, 그리고 의도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중국은 2000년대 들어 급격히 석유 수입 의존도가 높아졌다. 2013년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석유 수입국이 되었으며, 2020년 기준 중국의 석유 수입 의존도는 73%에 달한다. 이 석유의 약 80%는 말라카 해협을 통과해야 하는데, 이는 중국의 중대한 전략적 취약점이다.


말라카 해협은 폭이 가장 좁은 곳이 2.8km에 불과한 전략적 요충지로,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사이에 위치해 있다.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이 2003년 ’말라카 딜레마(Malacca Dilemma)’라고 명명한 이 취약점은 미국과의 갈등 시 미 해군이 해협을 봉쇄하여 중국의 에너지 공급을 차단할 수 있다는 우려를 담고 있다.


전기차로의 전환은 단순한 산업 정책을 넘어, 에너지 안보와 전략적 자율성을 강화하기 위한 국가적 프로젝트였다. 석유 의존도를 줄이는 것은 미국 주도의 글로벌 에너지 체계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했다. 더욱이 2018년 화웨이 사태 이후 본격화된 미국의 기술 제재는 중국 기업들에게 기술 자립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켰다. 특히 반도체, 소프트웨어, 배터리와 같은 핵심 기술의 자주 개발이 국가적 아젠다로 격상되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외부 압력은 역설적으로 중국 민간기업들의 혁신 역량을 강화하는 촉매제가 되었다.


BYD의 블레이드 배터리, CATL의 CTP(Cell to Pack) 기술, 화웨이의 전기차 운영체제 등 중국 기업들의 혁신은 미중 기술 갈등이 심화된 2018년 이후 더욱 가속화되었다. 외부 압력과 위기가 민간 부문의 기술 혁신을 자극한 것이다.


중앙정부의 방향 설정과 지방의 경쟁: 중국식 혼합 모델

중국 전기차 산업의 역설을 이해하는 또 다른 핵심 요소는 중국 특유의 중앙-지방 관계와 정부-시장 상호작용이다. 흔히 중국의 정치경제 시스템은 하향식 통제와 계획의 이미지로 묘사되지만, 실제 작동 방식은 훨씬 복잡하고 역동적이다.

중국의 전기차 정책은 ‘중앙정부의 방향 설정, 지방의 경쟁’이라는 메커니즘에 기반했다. 중앙정부는 전략적 목표와 대략적인 이정표를 설정했지만, 구체적인 실행은 지방정부들에게 상당한 자율성을 부여했다.


각 지방정부는 중앙의 방침 아래, 자체적인 지원 정책과 규제 환경을 통해 전기차 기업들을 유치하고 육성했다. 선전시는 BYD에, 상하이시는 NIO와 테슬라에, 항저우시는 지리자동차에 각각 차별화된 지원을 제공했다. 이처럼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접근법을 시도함으로써, 중국은 사실상 여러 개의 병렬적 ‘산업 실험’을 진행했다. 이 ‘분산된 실험’ 모델은 두 가지 중요한 결과를 낳았다. 첫째, 지방 간 경쟁이 혁신과 효율성을 촉진했다. 둘째, 실패에 대한 시스템적 내성이 생겼다. 한 지역이나 기업의 실패가 전체 산업 발전을 좌초시키지 않았다.


특히 주목할 점은 지방정부가 국영기업과 민간기업을 차별 없이 지원했다는 사실이다. 선전시는 국영기업이 아닌 BYD에 전폭적 지원을 제공했고, 상하이시는 테슬라와 NIO를 유치하기 위해 파격적 조건을 제시했다. 이는 중앙정부의 정책 우선순위(전기차 산업 발전)가 기업 소유 형태보다 중요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중국의 전기차 산업 정책은 단순한 ‘국가 주도’ 모델을 넘어, 국가의 전략적 방향 설정과 시장 메커니즘의 역동적 상호작용에 기반했다. 정부는 판을 깔았지만, 승자는 시장이 선택했다. 이런 맥락에서 국영기업의 실패와 민간기업의 성공은 모순이 아니라, 중국 특유의 혼합 모델이 작동한 결과였다.


기업 유형별 혁신 패턴의 차이

전기차 산업에서 국영기업과 민간기업 간 성과 격차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두 유형의 기업이 보인 혁신 패턴 차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상하이자동차와 같은 국영기업들은 대체로 ‘점진적 혁신(incremental innovation)’ 접근법을 취했다. 이들은 기존 내연기관 플랫폼을 개조하여 전기차를 만드는 방식(이른바 ‘플랫폼 공유’)을 선호했고, 핵심 부품은 외부 공급업체에 의존했다. 특히 배터리와 전자제어 시스템과 같은 핵심 기술을 내재화하지 않고 외부에서 조달했다.


이와 달리 BYD와 같은 민간기업들은 ‘급진적 혁신(radical innovation)’ 접근법을 택했다. BYD는 처음부터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개발했고, 배터리부터 모터, 전자제어 시스템까지 핵심 부품을 자체 개발했다. 이러한 수직 통합 전략은 단기적으로 더 많은 투자를 필요로 했지만, 장기적으로 기술적 우위와 원가 경쟁력을 가져왔다


이러한 차이는 단순한 경영 스타일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 지배구조와 인센티브 구조의 체계적 차이에서 비롯된다. 국영기업 경영진은 정치적 승진과 단기 성과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어, 장기적이고 위험한 R&D 투자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반면 민간기업 창업자들은 기업의 장기 생존과 성장에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어, 더 과감한 기술 투자를 감행했다.


국내 정치경제와 전기차 산업

중국 전기차 산업의 역설은 국내 정치경제적 맥락에서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특히 국영기업과 민간기업의 위상 변화는 중국 정치경제 체제의 진화를 반영한다.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이 통제적이고 국가 중심적인 경제 모델로 회귀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반적인 추세에도 불구하고, 전기차와 같은 신흥 전략 산업에서는 민간 부문의 역할이 오히려 확대되었다. 이는 중국 지도부가 기술 패권 경쟁이라는 국가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민간 혁신의 중요성을 인식했음을 시사한다.


중국 공산당 19차 당대회(2017년) 이후 공식 정책 문서들은 ‘혁신’을 국가 발전의 최우선 과제로 강조했다. 이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국영 부문과 민간 부문의 역할 재정의로 이어졌다. 전략 산업에서 국영기업은 더 이상 모든 영역을 독점하는 주도자가 아니라, 기초 인프라와 공공재를 제공하는 ‘기반 조성자’로 자리매김했다. 반면 민간기업들은 실질적인 혁신과 시장 개척의 첨병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러한 정책 변화는 “让国企’铺路’, 让民企’跑步’”(국영기업은 길을 닦고, 민간기업은 달리게 하라)라는 표현으로 요약되기도 한다. 전기차 산업에서 국가전망네트워크공사(国家电网)가 충전 인프라를 구축하고, 민간 전기차 업체들이 시장을 개척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모든 산업 분야에서 균일하게 일어난 것은 아니다. 철강, 석유, 금융과 같은 전통적 “전략 산업”에서는 여전히 국영기업의 지배적 위치가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전기차, 인공지능, 재생에너지와 같은 미래 산업에서는 민간 부문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더 중요해지는 추세다.


시리즈의 목적과 구성

이 시리즈의 목적은 중국 전기차 산업의 역설—국영기업의 실패와 민간기업의 성공—을 통해 중국식 발전 모델의 작동 방식과 그 지정학적 함의를 탐구하는 것이다. 단순한 산업 분석을 넘어, 이 역설이 중국 정치경제의 진화와 미중 기술 패권 경쟁에 던지는 시사점을 찾아보고자 한다. 여기서는 다음과 같은 핵심 질문들을 다룬다:


1. 왜 중국 국영 자동차 기업들은 막대한 국가 지원에도 불구하고 전기차 시장에서 실패했는가?

2. BYD와 같은 민간기업들은 어떻게 글로벌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는가?

3. 중국의 전기차 전략은 에너지 안보와 기술 자립이라는 국가적 목표에 어떻게 기여했는가?

4. 전기차 산업에서 드러난 ‘중국식 자본주의’의 특징은 무엇인가?

5. 미국과 유럽의 대응은 어떠했으며, 이는 세계 질서에 어떤 변화를 예고하는가?

6. 한국과 같은 중견국들은 이 새로운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하는가?


이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다양한 층위—기업 전략, 국내 정치경제, 국제 지정학—를 넘나드는 분석을 시도한다. 특히 BYD와 상하이자동차의 대조적 경험을 중심 사례로 삼아, 중국 특유의 국가-시장 관계와 혁신 시스템을 탐구한다.


1장에서는 중국이 전기차 산업에 국운을 걸게 된 지정학적, 에너지 안보적 맥락을 분석한다. 특히 ‘말라카 딜레마’로 상징되는 중국의 에너지 취약성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서의 전기차 산업을 살펴본다. 2장은 중국의 전기차 산업정책 발전 과정을 추적한다. ‘10개 도시, 1000대’ 프로젝트부터 보조금 정책의 변화, 지방정부 간 경쟁에 이르기까지, 중국 특유의 산업 육성 메커니즘을 분석한다.


3장과 4장은 각각 상하이자동차의 실패와 BYD의 성공을 대조적으로 분석한다. 두 기업의 전략, 조직 문화, 혁신 패턴 차이를 통해 국영-민간 기업 간 성과 격차의 근본 원인을 탐구한다. 5장과 6장은 미중 기술 패권 경쟁과 자원 경쟁이라는 더 넓은 지정학적 맥락에서 중국 전기차 산업을 분석한다. 화웨이 사태 이후 가속화된 기술 자립 전략과 전기차 핵심 자원(리튬, 코발트 등)을 둘러싼 글로벌 경쟁을 살펴본다.


7장과 8장은 NIO, XPeng, Li Auto와 같은 신생 전기차 기업들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중국식 자본주의 모델의 진화를 탐구한다. 특히 국가-기업 관계의 변화와 중국식 혼합 경제 모델의 특징을 조명한다. 9장은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유럽의 반덤핑 조사로 대표되는 서구의 대응을 분석하고, 글로벌 산업정책 경쟁의 의미를 탐구한다. 마지막으로 10장은 한국의 전략적 선택과 딜레마를 다룬다. 미중 기술 냉전 속에서 한국 자동차 산업과 배터리 기업들의 생존 전략을 분석하고, 중견국으로서의 한국이 취할 수 있는 정책 옵션을 제시한다.


결론에서는 전기차 산업에서 관찰된 국영-민간 기업 간 역설이 21세기 국제질서와 기술 패권 경쟁에 주는 함의를 종합적으로 성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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