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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36살. 네 번째 이직: 회사에서 학교로

연봉보다 가족을 위해서

by Dr Kim

2011년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이었다. 그때 회사를 옮겼다. 주변에서 만류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나의 전문성을 위해, 그리고 여의도의 멋진 건물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과, 같이 일할 사람들이 친근하고 존경할만하여 옮기게 되었다. 사실 이직이라는 것은 한 가지의 이유만으로 되지 않는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상황에 의해서 결정된다.


당시 Big 4중 다른 한 곳의 Director가 같이 일을 하자고 스카우트 제의를 해왔다. 그래서 여러 가지 고민 끝에 결정을 했고, 파트너(회계법인에서는 상무급 이상의 임원)와 면접을 봤다. 당시 파트너는 좀 소문이 자자한 분이었다. 약 2시간 정도 파트너와 1:1 면접을 봤다. 내가 경험한 커리어에 흥미가 많았고, 본인의 비전도 열심히 설명해주셨다. 그리고 내 첫 번째 직장에서 존경하던 팀장님이 다닌 A 컨설팅 펌 출신이기도 했다. 나도 면접을 보면서 정말 이 사람이 내가 따를 만한 사람인지를 여러 각도로 살펴보았다. 파트너의 비전은 꽤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최종 결정을 했고, 회사에서 공식 오퍼가 왔는데, 처음에는 실망스러웠다.


나는 빅 4 중에서 국내 단연 No 1인 회사에서 Manager 직급인데, No 2, 3인 회사에서 나에게 오퍼 한 직급은 Senior Consultant 3년 차였다. 빅 4는 회사마다 약간씩 밑에 직급은 차이가 있다. 여하튼 직급이 한 단계로 내려가는 조건이고, 연봉도 내가 기존에 받았던 연봉보다 약간 더 적은 금액이었다. 대신 Siging Bonus를 더 주면서 전체 총액은 조금 더 많았다. 직급이 한 단계 내려간 이유에 대해서 파트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김 선생이 우수한 것은 잘 알고 있는데, 지금 여기 Senior들이 김 선생보다 5-6살 더 많다. 만일 Manager로 바로 오게 되면 조직에 위화감이 생길 수 있으니, Senior로 왔다가 다음 승진 때 바로 Manager로 올려주겠다."


지금에 생각해보면 무슨 개*철학 같은 말인가 싶지만, 조직이라는 곳은 서로 어울리며 융화되어야 하는 곳인데, 위화감이 생기거나 시기 질투 같은 상황이 생기면 피차 피곤해지는 곳이긴 하다. 한편으로는 능력과 실력이 된다면 아무리 젊은 사람도 나이에 상관없이 올라가는 곳이 컨설팅 펌의 특징인데, 여하튼 이때부터 뭔가 이상했지만, 그래도 나의 전문영역을 다시 가지기 위해 옮기게 되었다.


첫 프로젝트부터 가관이 아니었다. 파트너와 프로젝트 팀원들이 모 금융그룹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었고 나도 곧 입사하자마자 참여할 프로젝트라서 전체 회의에 들어갔다. 그런데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아니 파트너가 앞에서 상황을 설명하고 질문을 하는데, 프로젝트 멤버들이 다들 기죽은 듯이 자기 의견을 표현하지도 않고 그냥 끌려가는 게 아닌가. 뭐지 이 상황은. 되게 이상하게 생각했다. 전 회사에서는 스텝도 디렉터와 생각이 다르면 자신 있게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표출했었는데. 컨설팅 펌은 조직의 문화도 있지만, 각 서비스 라인의 문화, 그리고 각 파트너, 매니저의 성향에 따라서 조직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긴 한다. 좀 놀라운 첫 미팅이었다. 그리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도 여전히 다들 매우 소극적이었고 파트너의 한 마디에 소위 대들지를 못했다. 그러다가 내가 일을 냈다.


내가 맡았던 파트에 대해 파트너가 리뷰를 하는데, 파트너는 자주 오지 않고 프로젝트 상황도 모르는데, 내가 제시한 방향에 대해서 틀렸다고 이야기를 하길래, 내가 나름대로 근거를 제시하면서 내 방향이 맞다고 주장했다. 처음에는 서로 좋게 이야기하다가 계속 말도 안 되는 말을 하길래 내가 욱하면서 계속 강하게 주장하니, 그럼 김 선생이 알아서 해라고 한발 물러나셨다. 결국 그 프로젝트는 내가 하는 방향이 맞았다. 무조건 Yes를 하거나 상사의 비논리적이면서 강함에 기죽으면 안 된다. 프로페셔널하다는 것은 자신을 믿고 가야 한다. 그래야 클라이언트에게도 당당해질 수 있다. 팀원들은 파트너 성향이 워낙 강성이다 보니까, 현장의 상황을 제대로 확실히 모르면서 방향을 트는데, 그것에 대해 논리적으로 제대로 설명하거나 아니라면 싸울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네네 하면서 여러 번 틀리는 방향에서 자연스럽게 야근이 이어지는 악순환이 펼쳐졌다. 몇 개월간은 정말 왜 이직했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전 회사에서 계속 오라고 하는데 다시 돌아갈까 생각도 했었다.


더구나 이때는 대학원도 갓 들어간 상황이었다. 전 회사에서는 감사본부에 있다 보니 저녁에 편하게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들었는데, 여기는 컨설팅 부서였고 힘든 프로젝트를 하다 보니 야근과 새벽까지 일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매우 비효율적이게. 일주일에 2번 정도 수업이 있었는데, 매번 저녁 6시에 사무실을 나서서 7시에 저녁도 제대로 못 먹고 학교에 가서 밤 10시까지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다시 클라이언트 사무실로 와서 새벽 2-3시까지 일을 했다. 그리고 새벽에 집에 들어가면 당시 신혼이었는데 혼자 나를 기다리면서 거실에서 TV 틀어놓고 웅크리고 자고 있는 와이프를 보면서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래서 많은 고민을 했지만, 그래도 이직하고 나서 첫 플젝이었는데 제대로 잘 끝내 자라는 생각을 가졌다. 프로젝트는 여차여차해서 팀원들은 많은 상처를 가진 채로 끝이 났다.


프로젝트 종료 회식 때 또 일이 났다. 당시 클라이언트 또한 강성으로 유명했다. 그중에서 여자 부장이 있었는데 나의 카운터 파트너였다. 회식 때 나에게 이런 말을 하셨다.


"프로젝트를 수십 년간 하면서 김 선생처럼 주관이 강한 컨설턴트는 처음 만나본다."


아마도 금융권에서 오래 일을 하면서 소위 슈퍼 갑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한테 네네라고 말을 하다가, 나처럼 아닌 건 아니다고 강하게 하는 사람을 처음 만나봤나 싶었다. 중요한 정책을 설계하는 것이었는데, 당시 부장은 본인 조직의 입장을 강변하기 위해 왔었고, 나는 금융그룹 전체의 입장에서 정책을 설계했었는데 그걸 끝까지 반대하려다가 결국은 내가 주장했던 대로 정책이 설계되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옆에서 내 귀를 의심할 만한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회사 파트너였다. "김 선생 야이 **야, 일루 와봐" 그건 화가 나서 하는 말이 아니었고, 목소리가 높았던 것도 아니었고, 그냥 평범한 말투였다. 내가 놀라서 한번 쳐다보고 무시했다. 그랬더니 두 번 정도 더 이야기를 하길래 계속 무시했다. 뭐 저딴 파트너가 다 있지 하면서 (지금 이 글 쓰면서 10년 전 상황을 복기하니 다시 열이 받긴 한다). 난 회식 상을 뒤엎고 파트너에게 쌍*을 하고 뛰쳐나가려고 했는데, 옆에 나를 스카우트한 이사가 내 팔을 꼭 붙잡으면서 참으라고 했다. 원래 술을 먹으면 Dog가 되는 파트너라고 하면서. 첫 면접 때 상당히 젠틀해 보였고 비전도 좋아 보였던 파트너와 나와의 관계는 그렇게 끝이 났다.


첫 플젝을 힘겹게 끝날 때쯤 다음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디렉터는 나보고 여기보다는 훨씬 괜찮은 곳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를 PM으로 한다는 것이다. 내가 프로젝트를 하면서 처음 맡았던 PM이었다. 잘하려고 노력했고 팀원은 당시 스텝 2명을 데리고 가는 거였다. 내가 PM의 역할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소통과 적재적소였다. 많은 프로젝트가 소통이 제대로 안돼서 어려움을 겪는 것을 많이 봐서 당시 클라이언트 핵심 담당자와 귀찮을 만큼 매일 간단한 회의와 티타임을 가졌다. 그렇게 친해졌고, 팀원들과도 매일 미팅을 하면서 진도 체크를 했다. 그리고 각자 잘하는 파트를 맡겼고 야근은 안 했다. 주어진 일정만 팀원들에게 공유하고, 각자 집이든 커피숍이든 어디든지 일을 잘 되는 곳에서 일을 하고 언제까지만 내가 시킨 일을 해오라고 했다. 다들 좀 어리둥절했지만 금방 적응했고, 결과적으로 클라이언트는 매우 만족했고, 우리들은 야근은 하지 않았다. 컨설팅 펌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었고, 이후 내가 PM을 하는 플젝은 대부분 그렇게 일을 했다.


다음 해 32살에 나는 다시 Manager로 승진했다. 그리고 파트너와 디렉터는 점차 사이가 좋지 않았고, 파트너는 조직의 생리상 자신과 관점이 다른 디렉터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디렉터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었는데, 나는 비전은 괜찮았지만 인간성이 전혀 안되어 있는 파트너는 리더로 모시고 싶지 않았기에 나를 챙겨주는 디렉터에게 힘을 많이 실어줬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실적과 더불어서 전략적이고 정치적인 힘이 매우 중요하다. 수많은 어려움과 회유와 고난이 있었지만, 결국 2년 뒤 파트너는 회사에서 나가고, 디렉터가 파트너가 되었다. 나는 그 과정에서 누가 봐도 디렉터가 파트너가 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일인자가 되었다. 그 당시에는 그게 맞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메마른 컨설팅 조직에 그나마 인간적인 사람이 조직의 리더가 되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기에. 당시 파트너 심사 자료 만드는 것도 주말에 나와서 같이 열심히 도와줬었다. 너무 고맙다고 하시면서 나한테 많이 도와주겠다고 하셨다. 나는 연봉이나 다른 것은 필요 없고 한 가지만 들어달라고 했다. 원래 내 직급으로 올려주는 것.


당시 다른 부서에는 전 회사에서 같은 부서에서 내 밑에 있던(나는 당시 Manager 였는데, Senior Associate였던) 스텝이 이직하면서 나보다 연차를 더 받고 온 거였다. 즉 나는 -1로 왔는데, 그 친구는 +1로 와서 솔직히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래서 Manager 2년 차 끝나고 Senior Manager로 올려달라고 했다. 그러겠다고 약속했는데, 막상 본인이 파트너가 되고 나니 말이 바뀌었다. 뭐 늘 조직생활이라는 것은 그렇기 때문에. 나도 이런 시나리오도 예상했기 때문에 플랜이 있었고, 당시 본부장과도 1:1 면담을 하면서 강하게 나갔다. 사실 내가 쌓아온 모든 실적이나, 전 회사에서의 경력을 인정하면 당연히 Senior Manager가 되는 거였는데, 막상 파트너가 되고 나니 본부의 실적이나 여러 가지 상황을 이야기하며 난색을 표하는 게 좀 당시로는 화가 나고 어이없었다. 결국 배수의 진을 친 결과 회사 내에서는 모양이 조기 승진이라는 모양으로 34살에 본부 최연소 Senior Manager가 되었다. 당시 직급에 대한 욕심이나 연봉에 대한 욕심보다는 내 자존심의 문제였다.


조직에서 승진이라는 것은 본인이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승진은 그 사람이 이미 그 윗 직급의 일을 모두 소화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과 실적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은 예외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보통은 Senior Consultant라면 Manager 일을 하고 있어야 매니저로 승진할 수 있고, SM도 Director 일을 이미 하고 있어야 위에서 보고, 아 이 친구는 이미 그 역량을 갖고 있으니 승진해도 문제가 없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Senior Manager가 되고 나서는 매달 Senior Manager와 Director를 모아서 실적을 공유해줬다. 나는 퇴사할 때까지 2-30명의 Senior Manager/Director 중에서 실적이 늘 1-2위였다. 솔직이 부담되기도 했다. 보통 나보다 10살이 더 많은 사람들인데, 내가 매달 내부 실적 발표가 나면 항상 독보적인 1위였으니. 당시 보통 Senior Manager나 Director는 Engagement Manager를 1개 또는 2개를 맡았는데, 나는 적게는 6개, 맞게는 8개의 프로젝트를 총괄 책임지고 있었다. 모든 것은 운이 많이 따르기도 했고, 열심히 발로 뛰고, 어떻게 하면 클라이언트가 더 잘될지 생각하고, 스텝들이 최고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을까 늘 생각하면서 일을 했다. 하지만 그런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2014년 3월에 첫째가 태어나고, 2016년 2월에 둘째가 태어났다. 첫째가 태어났을 때만 해도 일과 가정을 함께 돌보는 게 어느 정도 가능했다. 그런데 둘째가 태어나니 두 아이를 보는 와이프가 너무 힘들어 보였다. 그리고 그때쯤 어머니의 건강이 점점 많이 안 좋아지셨다.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다. 아무리 회사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잘 나간다고 해도, 나중에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함께 시간을 못 보내고, 또한 가정이 무너지고 하면 과연 나 혼자 승진하고 일을 잘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조금이라도 정신이 있으시고 살아계실 때 시간을 함께 보내드리는 게 아들로서의 도리가 아닐까 하면서, 휴직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던 과정에 둘째까지 태어나니 도저히 회사에만 내 모든 시간을 쏟으면 나중에 크게 후회할 것 같았다. 36살 봄에 고민이 많던 시기에 학교 지도교수가 카톡방에 글을 남겼다.


"학교에서 산학협력 중점교수를 모집하고 있으니, 관심 있는 사람이나 주변에 추천할 사람 있으면 소개해달라"


지도교수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와이프와도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원래 휴직할 생각이었는데, 학교에서 산학교수를 뽑는다고 하는데 조건이 회사에서 10년 이상 일한 사람이어야 했다. 나는 당시 13년을 일했고, 석사도 있었고, 학교에서 가르쳐야 하는 전공 분야가 내가 했던 전공분야와 일치했다. 많은 고민 끝에 지원을 했고, 합격했다는 결과를 받았다. 당시 학교 원장님과 개별 면담을 하는데 여러 번 "괜찮으시겠냐"는 말씀을 하셨다. 왜냐하면 컨설팅 펌에서 학교로 간다는 것은 연봉을 상당히 포기해야 하는 거였다. 보통 산학협력 중점교수는 회사에서 50대쯤 은퇴하고 명예직(?)으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나처럼 한참 일할 나이에, 나름 잘 나가는 컨설팅 펌에서 학교로 온다니까 걱정을 하셨던 거였다. 정말 내 연봉은 반토막 이하로 떨어졌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당시 나에게 중요한 건 연봉이 아니라 가족과의 시간이었으니. 그렇게 나는 14년을 몸담았던 산업계를 뒤로 하고, 학계로 옮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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