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이름보다 내 전문영역을 찾아서
2008년 1월. 4년 반 동안 일했던 커리어를 버리고라도 인턴으로 가고 싶어 했던 회사에 Senior Associate라는 직급으로 들어갔다. 당시 우리 팀은 20여 명이 조금 넘었는데, 대부분 회계사, MBA 출신 등이었다. 나와 같은 배경을 가진 사람은 우리 팀에 나 혼자였다.
회사에 입사하고 자리에 앉았는데 자리가 세면이 높은 파티션으로 막혀있고 뒤에도 반은 막혀 있어서 일어서야지 다른 사람들이 보일까 말까 하는 높은 파티션에 둘러싸여 일을 했다. 입사하고 팀원 분들께 간단한 소개를 하는 메일을 보냈다. 그런데 오후에 어떤 여자 선생님(회계법인은 이사 직급 밑으로는 인턴까지도 호칭이 선생님으로 보통 부른다.)이 나보고 이런 말을 하셨다.
"우리 팀은 매우 dry 한 팀인데 입사하고 나서 이런 메일은 처음 받아봐."
물론 비꼬는 투는 아니셨고 우리 팀의 분위기를 말씀해주시는 거였다. 그리고 점심때 되었는데도 조용해서 자리를 밀고 밖으로 나가봤더니 팀 사람들이 아무도 없는 거였다. 처음엔 적응이 안됐다. 그전에 있던 회사들은 팀원들끼리 우르르 나가 식사도 하고, 잡담도 하고, 파티션도 낮아서 서로 뭐하는지도 다 아는 구조였는데, 여기는 개개인 자리가 하나의 닫혀 있는 성처럼 고립된 형태였다. 물론 일은 매우 집중할 수 있는 구조였고. 안 되겠다 싶어서 다음날부터는 가까운 자리에 있는 선생님들을 찾아가서 개별적으로 인사를 나누고 식사를 함께 하자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몇 주 동안 같은 서비스 라인에 계신 선생님들과 안면을 트게 되었다.
업무는 내가 예상했던 것처럼 신선했다. 매번 반복적인 일을 하는 것이 아닌, 매번 새로운 일을 하고, 새로운 클라이언트와 새로운 주제들로 프로젝트를 했다. 내부감사, 상시감사, 포렌식, SOX, BPR, ISP, 전산감사, 해외 프로젝트 등 매번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것들이 재미있었고, 흥분되기도 했다. 물론 일은 매우 많았지만 그래도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배운다는 것이 좋았다.
영어를 하고 싶어서 들어간 회사였는데 첫 플젝이 홍콩 오피스와 뉴욕 오피스와 함께 일하는 것이었다. 영어가 되지 않았지만 테크니컬 한 부분을 진행하고 나중에 법적인 부분은 별도 뉴욕 오피스의 변호사가 와서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오피스에서 오신 분과도 일을 했다.
2008년 1년은 정말 재미있었다. 꽤 도전적인 일들도 많았다. 특히 뉴욕에 본사가 있는 글로벌 보험사 내부감사를 처음 할 때 매니저 샘과 같이 회의에 들어갔는데 영어로 회의하는 내용이 뭔지 하나도 모른 채로 일을 하다가 혼도 엄청났다. 그리고 처음 쓰는 조서도 영어로 쓰지 못해서 주말마다 매니저 샘 집에 끌려가서(?) 영어 조서 쓰는 법 배우고, 같이 한강 공원 달리기 운동도 하고 그렇게 하나씩 배워 나갔다.
이후 몇 달 뒤 혼자 지방에 있는 반도체 회사 내부감사를 나가라고 했다. 세인트루이스에 본사가 있는 회사였는데 싱가포르 매니저와 세인트루이스에서 이사가 직접 오고, 한국에서는 나 혼자 투입되는 프로젝트였다. 영어가 안돼서 업무시간에는 인터뷰를 하고 밤에 호텔 와서 새벽 두 시까지 영문 조서 쓰는 일을 2주 동안 했다. 그러한 노력이 전달되었는지 프로젝트 마지막 날 미국에서 온 디렉터가 나에게 너희 서비스 라인 파트너가 누구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나보고 회사 만년필을 주면서 고맙다고 말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며칠 뒤 본사에서 파트너가 불러서 갔더니 그쪽 이사가 자기에게 내가 회사의 대표로서 너무 일을 프로페셔널하게 잘해줘서 고마웠다고 극찬하는 메일을 보내준 거였다. 그 2주 동안 아침부터 새벽까지 일한다고 외국에 나가 있던 여자 친구와는 사이가 매우 안 좋아져서 거의 헤어질 뻔 한 상황이었다.
2009년에는 IFRS라고 라는 프로젝트에 6개월간 나갔다. 그때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한 여자 선생님이 매일 늦게 출근하고 다른 샘들도 쉽게 대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가 모 금융회사 높은 분의 자제라고 들었다. 그런데 나는 그런 거 별로 신경 쓰지 않다 보니, 일을 하다 좀 못하거나 태도가 불량하시면 할 말을 다 하다 보니,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긴 하셨다. 그때도 내 전임자가 금융공학, 퀀터였는데, 다른 곳으로 가서 내가 바통터치를 받아서 무사히 플젝을 잘 마무리했다. 6개월간 IFRS 프로젝트하면서 미국 회계사 공부의 필요성을 느껴 평일 3일 동안 매일 저녁 3시간씩, 주말은 9시간씩 6개월 넘게 공부했다. 그러고 6월에 IFRS 플젝에서 나와서 인도네시아 전자정부 PMO 프로젝트를 하러 싱가포르를 거쳐 인도네시아에 날아갔다. 인도네시아-싱가포르를 오가며 진행한 3개월의 시간은 너무나 값지고 인생에 남을 시간이었다.
그리고 2009년 10월에 들어간 프로젝트에서 매니저와 대판 싸웠다. 치고받고 싸운 것은 아니지만. 미국 회계사 공부를 9개월 넘게 하고 시험을 보러 괌에 가려고 했는데 당시 이사가 긴급한 프로젝트라고 나보고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시험이 있다고 했지만 막무가내여서 들어갔는데 급하긴커녕 1주일 동안 계획만 세웠다. 당시 나를 포함해서 3명이 투입되었는데 나는 내가 맡은 파트를 성공적으로 끝냈고 마지막 회식 때 팀 매니저 샘이 덕분이 정말 잘 끝냈다고 칭찬을 해주셨다. 그런데 프로젝트 인사평가에서 나를 매우 낮은 점수를 주셨다. 나를 아는 모든 선생님들과 다른 이사님도 의아해하셨다. 나는 바로 리젝을 눌렀다. 회계법인은 밑에 직급도 위에 매니저가 평가한 점수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는 시스템이 있었다. 나는 사유를 적고 리젝을 했고, 얼마 안 있어 쪼금 올린 점수로 왔는데 난 또 리젝을 했다. 이슈가 불거져서 윗 분들이 왜 그런지 물어봤다. 이유가 황당했다. 매니저였던 본인보다 내가 일찍 퇴근했다는 거였다. 무슨 80년대 회사도 아니고. 나도 마음에 안 들었던 건 보통 출근하자 말자 담배 피우러 갔다가 한참 뒤에 들어오고, 하루에 일에 집중하지 않고 담배 피우러 나갔다 오는 시간만 해도 하루 2-3시간은 낭비하는 거였다. 세 번째 평가 리젝을 보낸 후 어느 정도 협의하에 평가 결과를 받았다.
그리고 2010년에는 국내 정부기관 프로젝트 2건을 하면서 한 해를 보냈다. 이때도 상당히 힘든 프로젝트였다. 매니저 샘은 인간적으로는 매우 좋았지만, 업무 스타일로는 상당히 나와 성향이 달라서 일을 하면서 괴로웠다. 나는 업무 시간에 초집중해서 매우 효율적으로 하는 걸 좋아하는데, 당시 매니저는 전형적인 대기업 출신 스타일답게 느지막이 출근하고, 담배 피우러 수시러 나가고, 야근은 늘 하고 술 먹고 또 다음날 늦게 출근하는 악순환을 보여줬다. 2008년 첫 해 주로 해외 오피스 전문가들과 시간 단위로 charge 하면서 매우 time intensive 한 프로젝트를 하면서 글로벌 스타일을 배웠는데, 2010년 프로젝트는 대기업 IT회사에서 상사 눈치 보면서 밥 먹듯이 일하는 느낌이었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심지어 2010년 11월에 나의 결혼식이 있었는데도 비효율적인 업무로 매번 야근과 주말 근무를 하면서 지인들에게 인사도 못 나누는 상황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그 프로젝트를 끝으로 나는 팀을 옮겼다.
내가 다닌 회계법인은 당시 1년에 2번 승진 시기가 있었고, 1년에 1번은 팀 트랜스퍼 제도가 있어서 다른 서비스 라인으로 옮길 수 있었다. 한 번은 매니저 진급에 떨어졌다. 공식 영어 성적(벌리츠)이 없었던 거였다. 나는 괜찮았다. 2010년 겨울에 결혼도 하고, 2011년부터는 석사도 시작했기 때문에, 반년 승진이 안된 건 괜찮다고 생각했다. 또한 본부 내에서 가장 어린 나이였으니, 오히려 주변 선생님들이 걱정해주셨다. 다행히 벌리츠 시험을 통과하고 2011년 여름에 부서에서는 최연소 매니저를 달게 되었다.
서비스 라인을 옮기면서 대학원 생활은 보다 여유로워졌다. 컨설팅 조직에서 감사조직으로 옮기면서 어느 정도 시간 통제를 내가 할 수 있었다. 당시에 옮길 때도 나와 같은 스킬을 가진 매니저가 컨설팅 본부에 없어서 감사 본부로 옮길 때 조금 이슈가 있었지만 다행히도 양쪽에서 협의해주셨다. 감사 본부에서 생활은 꽤 좋았다. 퇴사해야겠다고 생각한 그 일이 발생하기 전까진.
감사 본부에 가고 대학원을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인사를 나누면서 "S회계법인에서 일하고 있는 000입니다."라고 하면 괜스레 어깨에 힘도 들어가고 기분도 좋았다. 뭔가 자랑스러웠나 보다. 하지만 이어서 나오는 질문, "거기서 어떤 일 하세요?"라고 물으면 이일 저일 다해요.라고 하는데 매번 답변을 할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나의 전문 영역은 무엇이지?'
'회사 이름이라는 타이틀은 멋지지만, 그 안에 있는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회사 이름을 앞세우기보다는 내 이름으로, 나의 전문 영역을 찾고 싶었다. 그러한 고민을 계속하고 있는 와중에, 같은 팀에 있던 이사님/상무님에게 엄청난 개인적인 아픔을 겪으면서 퇴사를 생각하게 되었다.
당시 부모님 모시고 필리핀에 효도여행을 보내주고 싶어서 몇 달 전에 휴가를 신청하고, 평생 여권을 만들어 보신 적도 없는 부모님 겨우 설득해서 여권도 만들고, 비행기 티켓, 호텔 등 여행 준비를 했는데, 그때 이사가 나보고 "지금 busy season인 거 모르냐고?" 어떻게 1주일을 비지 시즌에 휴가 갈 생각을 하냐고. 그때는 서비스 라인 옮긴 지 반년밖에 되지 않았고 어떻게 할 수 있는 용기가 나지 않았기에 다음에 모시고 가야지 생각하면서 휴가를 취소했다. 그리고 그다음 해부터 어머니 건강이 급격히 안 좋아지셔서 평생 해외 구경 못 시켜드렸다...
그런 복합적인 고민과 어려움을 갖고 있던 시기에 만난 첫 번째 회사에서 함께 일했던 분이 경쟁 회계법인 D사에서 일하면서 나를 꼬셨다. 다들 주변에서 말렸다. 편한 감사부서에서 왜 다시 힘든 컨설팅으로 가냐고, 그리고 1위 회사에서 왜 2위 회사로 가냐고. 찬성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때쯤 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읽은 '자기 결정의 원칙'이라는 책을 읽고 내 마음의 소리를 따라가자라는 생각에 이직을 결심하고 옮기게 되었다. 이직한 회사에서 발생할 엄청난 일들을 알지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