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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Kim Jun 13. 2021

19세기 컴퓨터 분야 과학자 이야기 #0. 찰스 배비지

계산하는 기계를 최초로 고안한 과학자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브런치, 인터넷, 컴퓨터를 제일 처음 발명한 사람은 누구일까? 빌 게이츠? 앨런 튜링? 아니다. 뉴욕 타임즈에 따르면, 영국 과학자들이 최초의 컴퓨터에 대한 개념을 구상하고, 설계하고 개발을 진행한 최초의 과학자 이야기는 약 1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로 찰스 배비지(Charles Babage)이다. 찰스 배비지는 1791년에 태어났으며 1871년에 사망했다. 영국의 수학자이자, 철학자, 발명가, 기계공학자로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컴퓨터' 개념의 시초자이자, "컴퓨터의 아버지"로 불린다.

1860년 찰스 배비지, 위키피디아


찰스 배비지의 출생지

찰스 배비지의 출생지는 정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지만, 영국 런던 월워스 로드 44 크로스비 로우인 것으로 대부분 인정하고 있고, 라르컴 스트리트(Larcom Street)와 월워스 로드(Walworth Rd) 교차로에 설치된 블루 플래그에 배비지의 이름이 기념되어 있다.

영국 런던 지도상으로는 저 위치에 있다. 언젠간 런던에 가게 된다면 한번 꼭 방문해볼 장소가 되겠다.




교육과 학업.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

배비지는 1810년에 케임브리지 대학교(University of Cambridge) 트리니티 칼리지(Trinity College)에 입학했다. 트리니티 칼러지는 1546년 헨리 8세에 의해 세워졌으며, 수십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아이작 뉴턴도 트리티니 칼리지 출신이다. 뉴턴은 일생 중 35년을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보냈다.

트리니티 칼리지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 뉴턴의 사과나무가 보인다.
케임브리지 대학교는 31개의 칼리지로 이뤄져 있다.

찰스 배비지는 1812년 피터하우스 칼리지(Peterhouse College)로 학적을 옮겼다. 피터하우스 칼리지는 캠브리지 대학의 칼리지 중에서 가장 오래된 칼리지로 1284년에 주교 휴 볼샘이 세웠으며, 킹 에드워드 1세의 헌장을 받았다. 피터하우스 칼리지에서도 배비지는 가장 뛰어난 수학자로 꼽혔으며, 1814년 시험을 보지 않고 학위를 받았다.

피터하우스 칼리지


찰스 배비지는 1816년, 24살의 나이로 왕립학회 회원이 되고, 1828년(36세 때) 케임브리지 대학의 수학교수가 된다. 그리고 1839년까지 약 11년 동안 루커스 교수로 근무한다. 루커스 수학 석좌 교수(Lucasian Chair of Mathematics)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수학 관련 분야의 교수직 가운데 하나다. 이 직책은 1639~1640년까지 케임브리지 대학교 의회 의원이었던 헨리 루커스에 의해 1663년 만들어졌으며, 왕으로부터 공식 승인된 것은 1644년 찰스 2세 때다.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교수의 직급 앞에 특정 이름이나, 기관의 이름을 직책으로 가진 교수들이 많다.

당시 케임브리지 대학의 모든 교수는 성직을 겸해야 했으나, 루커스가 내건 조건은 석좌 교수는 교회에서 활동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후 루커스 석좌 교수가 된 교수들은 성직을 겸하지 않았다. 최초 루커스 수학 석좌 교수는 1664년 아이작 배로 였으며, 이후 1669년 아이작 뉴턴도 루터스 수학 석좌 교수로 근무하였다. 그리고 1828년 찰스 배비지가 루커스 수학 석좌 교수직을 맡았으며, 1979년에는 스티븐 호킹 박사가 루커스 수학 석좌 교수직을 맡았다. 현재는 끈 이론으로 유명한 마이클 보리스 그린 교수가 스티븐 호킹 박사를 이어서 2009년부터 루커스 수학 석좌 교수 자리에 있다.  


결혼, 가족, 죽음

배비지는 1814년 (22세 때) 조지아나 휘트모어와 결혼을 했으며, 여덟 명의 아이를 낳았지만 네 명만 생존했다. 아내 조지아나도 1827년 (배비지 나이 35세 때) 사망했다. 아버지, 아내, 자녀들의 연이은 사망으로 배비지는 정신적 충격에 휩싸였고, 연구개발도 지연되었다. 배비지는 1871년 79세 나이로 사망하여 런던의 켄설 그린 묘지에 묻혔다. 배비지의 뇌는 현재 런던 과학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찰스 배비지의 뇌, 런던 과학박물관, 위키미디아
런던 과학박물관 위치


컴퓨터의 설계

찰스 배비지는 이전에 파스칼이 개발한 단순 덧셈과 뺄셈을 톱니바퀴를 이용해서 계산하는 기계를 넘어선, 복잡한 수식까지 기계로 계산하기 위한 방안을 고안했다. 지금의 컴퓨터의 기본 구성요소인, 입력(Input), 제어(Central Processing Unit), 저장(Memory), 출력(Print) 기능이 모두 가능한 기계를 설계했다. 이것을 해석 기관(Analytical Engine, 해석 엔진)이라 불렸다. 입력으로는 천공카드(Punched Card)를 이용하는 구조다.

왼쪽-천공카드, 오른쪽-해석기관 설계도(런던 과학박물관)


찰스 배비지는 이것을 개발하기 위해 첫 번째 시도한 것은 차분기관(Difference engine)이다. 차분기관은 다항함수를 계산하기 위한 기계식 디지털 계산기로, 다항함수로 로그함수와 삼각함수도 근사할 수 있는 구조였다. 사실 차분기관에 대한 최초의 개념은 1786년 J.H. 뮐러가 제안했지만 만들지 못했고, 1822년 찰스 배비지가 기관을 구체적으로 개발을 시작했다. 배비지는 1822년 6월 14일 영국 천문학회에 "Note on the application of machinery to the computation of astronomical and mathematical tables (천문 및 수학 테이블 계산에 기계의 적용에 대한 참고"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세상 참 좋아졌다. 거의 200년 전에 발표한 논문을 인터넷으로 볼 수 있다니, 논문을 구해 읽어보니 5페이지 분량이네)

https://doi.org/10.1017/CBO9780511694721.006 

왼쪽, 논문 제목, 오른쪽 1820년 쯤의 찰스 배비지

찰스 배비지가 발표했다는 영국 왕립학회(The Royal Society)는 St. James's Park 위에 위치해 있다.


찰스 배비지가 차분기관과 해석기관까지 설계하고 개발을 진행하였으나, 그 당시에는 설계도를 기계로 구현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과 자금이 소요되었고, 영국 정부에서는 당시 개발이 완료되지 않고 지속적인 추가 자금이 필요한 연구에 더 이상 지원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처음 제작된 차분기관은 무려 25,000개의 부속에다가 15톤의 무게에 달했다. 결국 당시 기술로는 이 설계도를 구현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영국 정부는 많은 돈을 투자하였지만 실제로 당시에 기계의 효과를 직접 보지 못했다. 이후 찰스 배비지는 사비를 털어서 개발을 하였지만 결국 제대로 동작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 찰스 배비지의 막내아들인 핸리 배비지(Henry Babbage, 1824-1918)는 아버지를 이어서 개발을 계속 하지만, 그 마저도 당시에 완성된 기계를 만들지 못한다. 1910년까지 기계를 만들었는데, 아버지를 곁에서 지켜보면서 아버지가 완성하지 못한 기계를 아들이 이어서 만들려고 노력했다는 것이 가슴이 짠하다. 그러나 그 마저도 완성하지 못했을 때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핸리 배비지는 1840년에 University College London에 입학하고, 1842년에 학교를 마쳤다.

이미테이션 게임이라는 영화로도 유명하고, 애니그마 암호 기계를 해독하는 기계를 만든 앨런 튜링이 유명한 이유는, 그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영국 정부의 지원이 중단되는 찰나에 기계를 성공적으로 구동시켜서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는데, 찰스 배비지는 천재적인 설계를 했지만, 결국 성공적인 결과물을 보여주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기에 그의 공이 당시에 많이 인정받지 못하고, 사후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서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의 입장에서는 참 안타깝다.


찰스 배비지 사후 118년이 지난 1989년부터 1991년 사이에 배비지의 설계를 바탕으로 수정을 통해 19세기에 구현이 가능했던 기술 수준에서 차분기관 2호가 실제로 구현되었다. 이 기계는 현재 런던 과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기존 휴대용 계산기보다 더 많은 31개 자릿수를 계산할 수 있다.

영국 런던 과학박물관에 있는 차분기관 2호(배비지의 설계를 토대로 만들어짐), 위키피디아


이후 뉴스에서 찾은 이야기인데, 2019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은 런던 과학박물관을 방문한 이후에 생애 최초로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올렸다. 해당 게시물 내용은 "세계 최초의 컴퓨터 학자인 찰스 배비지는 1843년 7월 차분기계(Difference Engine)를 설계한 후 고조부인 앨버트 왕자에게 이를 시연했다."라고 설명했다. 살아있을 때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으나, 과학자의 도전적인 시도와 그 업적은 사후에도 후대에 크게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실제 인스타그램에서 과거 글을 찾아서 좋아요도 꾸욱 눌렀다.

https://www.instagram.com/p/ButJtIMnBrV/?utm_source=ig_web_copy_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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