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r Kim Jan 20. 2022

사우디 교수 생활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

포기하고 돌아가고 싶었지만, 가족이 있기에 참고 견뎌냈다. 

지난번 글 <사우디 교수 생활 2주째> https://brunch.co.kr/@af239275b496459/45 이 갑자기 다움에 올라갔는지 보통 조회수가 10에서 많아야 20회 안팎인 글들이었는데, 지난 글은 갑자기 8천 회가 넘게 조회되어서 어벙벙해졌다. 


나는 기록을 좋아한다. 예전부터 짬짬이 어디든지 기록을 남기곤 했는데, 지난 글들도 매일 쓰던 어떤 알려지지 않은 사이트에 쓴 글들을 조금 정리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PPT 파일에 템플릿을 만들어서 매일 일기를 쓰고, 1년이 지나면 단 한 권의 책으로 만들고 있다. 2018년 1월 뉴질랜드 가족 여행을 다녀온 이후로부터 습관이 생겼다. 나와 우리 가족의 일상생활들, 그것들이 하나의 여행 기록으로, 나와 우리 자녀들, 그리고 아주 가끔은 (후손 까지도) 보면서 아버지의 삶이 이랬구나, 우리 할아버지의 삶이 이러셨구나 하는 것을 물려주고 싶어서 시간을 쪼개서 쓰고 있다. 


브런치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원래는 익명으로 편하게 (보통 늘 생각이 많은 편이라) 생각을 글로 분출해 내기 위한 용도로 사용하곤 했는데, 여기 사우디에서의 생활도 보통 흔한 생활은 아니라서 그 기록들을 하나씩 남기고 싶어서 또다시 노트북을 펼친다. 


지난번 글에서 사우디의 첫인상과 사람들의 호의적인 대우에 우리 가족은 너무 고마웠고, 참 따뜻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일은 일이니까, 일을 해야 한다. 한국에서 교수로 받던 급여에 비해서 여기서도 많이 준다고 생각을 했는지, 초반에 일이 많았다. 하지만 일을 시키는 센터장은 리야드에 물리적으로 있지 않고, 젯다라는 도시에서 주로 거주하면서 전화와 콘퍼런스 콜, 왓츠앱 문자 등으로 수시로 일을 시켰다. 업무 시간에도, 저녁 9시 넘어서도, 주말에도, 쉬도 때도 없이 본인이 생각날 때 일을 시키면서 매번 Urgent라고 수식어를 가져다 붙였다. 


나는 리야드에 있는 대학교에서 물리적으로 혼자 일했다. 물론 센터가 공식적으로 생기기 전이었기 때문에 센터를 설립하기 위한 기반 일들을 많이 했다. 학교에서 9년 정도 일하고 있던 인도 테크니션이 많이 도와줬다. 교수로서는 센터에 공식적으로 나 혼자였고, 건물 2층 사무실 공간에 오피스 룸이 6개 정도 있었는데, 나 말고는 모두 비어있었다. 


10월 초에 사우디에 왔는데, 10월 말에 대학교 총장님에게 내년 Plan을 발표하라고 시키기에 열심히 준비했다. 그리고 늘 회사 다닐 때도 하던 습관처럼, 마감 일에 맞춰서 준비하지 않고 수시로 센터장과 진행 내용들을 공유하면서 호흡을 맞췄다. 음, 내년부터 앞으로 5년 동안 내가 해야 할 계획을 발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 있었기에, 낮에도 저녁에도 틈틈이 자료를 만들어서 준비했다. 이때 발표는 나뿐만 아니라 기존에 있던, 우리 센터 소속은 아니었으나, 기존에 있던 잠재적으로 우리 센터에 데리고 올 교수들도 함께 참여했는데, 다들 발표 당일날 자료를 만들어서 가져왔다. 그래서 역시나 센터장의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다행히 내가 발표한 부분은 대학 총장님과 부총장님이 모두 만족해하셔서 한 고비를 넘겼다. 우리 센터의 전략이 학교 전략과 잘 맞게 설명되어서 2023년까지의 전략 방향에 맞게 하나씩 이제 실행해 나가면 된다고 한다. 내 존재를 총장님께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11월 중순에는 꽤 큰 콘퍼런스에 나보고 스피커로 발표하라고 센터장이 시켰다. 인터폴, 유로폴, 바젤 거버넌스에서 진행하는 콘퍼런스였는데 보통 참석자가 수천 명이 된다. 많이 긴장되었고, 준비를 열심히 했다. 다행히도 콘퍼런스 주최 측 실무 담당자가 인터폴에 있는 한국분이었기에, 그분과는 한국말로 준비사항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었다. 이 발표도 매우 긴장되는 발표였는데, 발표 당일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온라인으로 동시에 들어왔다. 천 명이 가볍게 넘었다. 그 사람들에게 정확하지 않은 발음도 어색한 영어로 발표를 하려니 힘들었지만, 최대한 내용이 흥미롭고 도움이 되도록 준비한 덕분에 좋은 피드백을 많이 받았다. 그렇게 한 고비를 다시 넘기고, 한 달 뒤쯤 인터폴로부터 감사 레터도 받았다. 



여기까지는 그냥 좋은 스토리 같아 보인다. 사우디에 와서 대학 총장님께 내년을 포함한 향후 계획을 발표하고 인정받고, 그리고 국제무대에서 중요한 콘퍼런스에 스피커로 초대되어 발표를 하고. 좋은 그림이다. 그런데, 어느 날 센터장이 앞뒤 아무런 설명 없이 내년 Training을 위한 주제 5개를 정하고, 템플릿을 주면서 내용을 작성해서 보내달라고 했다. 여전히 Urgent를 외치면서. 내가 이건 별도 강의료가 있는지 물었더니 이건 무료라고 내가 급여를 많이 받으니라고 하면서, 도대체 업무 범위와 계약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알 수가 없다. 이번에도 저녁에 연락 와서 빨리 달라고 하면서, 다음날이나 그다음 날까지 달라고 한다. 처음 보는 템플릿에 어떤 내용을 작성해야 할지도 잘은 몰랐지만, 기존 템플릿을 가지고 열심히 만들어봤다. 초안을 작성해서 메일을 보냈더니, 온라인 미팅을 하잔다. 집에서 저녁에 문서를 열고 하나씩 검토를 하는데, 아직 영어도 100% 익숙지 않은 상황에서, 태클을 건다. 5개 코스 중에서 1개 반 했는데 2시간 40분이 지났다. 하나하나 꼬치꼬치 이거 왜 이런 거냐고, Learning Outcome는 이거 맞냐고, audiences는 이게 맞냐고, 왜 이렇게 생각하냐고, 제대로 하는 거 맞냐고, 꽤 공격적으로 압박하는데 부담이 컸다. 내가 수정하겠다고 하니 그럼 수정해서 몇 시간 뒤에 다시 미팅하자고, 밤 10시에 미팅을 시작해서 2시간 넘게 진행했다. 끝날 때 말은 잘해준다. 노력해주서 고맙다고. 그렇게 미팅을 며칠 동안 여러 번 하면서 진이 다 빠졌다. 그 와중에 Dr. Kim을 한국에서 데리고 온 것은 전문가이기 때문에 (자기 나름대로) 고액 연봉을 주고 데리고 왔다고 하면서. 그동안 일을 하면서 앞뒤 설명 없이 일을 시키고, 매번 Urgent라고 하면서, 낮, 밤, 주말 상관없이 일을 시키는 것도 그냥 초반이니까 참고 견뎠는데, 이번 일을 겪으면서 상당히 기분이 나빴다. 20여 년 정도 일을 하면서 최고의 퍼포먼스를 내기 위해 노력했고, 늘 그에 대한 결실을 얻어왔는데, 뭔가 자존심도 상하고, 내가 왜 이런 압박을 받으면서까지 여기 있어야 하는 거지, 와이프에게도 요즘 조금 힘들다고 했더니, 와이프도 고민이 좀 많이 생겼다. 차라리 초반에 빨리 그냥 손절하고 한국에 들어가는 것도 어떻겠냐고. 당시에 잠도 잘 못 자고, 꿈에 어머니도 나왔다. 1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서야 완전 서로 Trust를 하고, 스타일을 알고, 인정을 매우 매우 받고 있기 때문에 괜찮지만, 당시에는 내가 한없이 작게 느껴지고, 센터장은 너무 커 보였다. 어서 내가 다시 쑥쑥 자라서 동급으로, 또는 더 커져서, 함부로 대하지 못하도록 성과를 내야지, 실적을 보여줘야지 하는 생각을 가졌다. 그리고 그렇게 2020년 연말은 많은 스트레스와 부담을 가지고, 2021년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우디 교수 생활 2주 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