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일렁임 9-1

[폐사지 여행1]원주 거돈사지, 한때 있었고 지금도 있는 곳

by 천천히 꾸준히


폐사지(廢寺址)는 전쟁, 자연재해, 억불 정책 등의 영향으로 번성했던 사찰이 사라진 터를 말한다. 원주에 있는 폐사지는 ‘거돈사지, 법천사지, 흥법사지’가 있다. 폐사지끼리 거리가 조금씩 떨어져 있어서 다 들리지는 못했고, 이번엔 탑이 아름답고 ‘은하수 사진’으로 유명한 거돈사지를 가기로 했다.

거돈사지는 즉흥 여행이라 창덕궁 후원처럼 미리 공부하고 가지는 못했다. 대신 거돈사지를 보기 전, 근처에 있는 거돈사지 전시관에 먼저 들렀다.

거돈사는 9세기 경 신라시대, 지증 도헌이 현계산 기슭에 세워진 교종사찰인 안락사의 이름을 ‘돈오(단박 깨달음) 속에 살겠다’는 뜻의 거돈사로 바꾼 곳이라고 한다. 전시관에서 고증을 통해 1/30으로 축소해 재현한 거돈사의 옛 모습도 볼 수 있다. 그 뒤로 거돈사지 사진이 함께 있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느낌이었다.

전시관을 나와 조금만 걸어가면 거돈사지 삼층 석탑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는 이 석탑은 불국사의 석가탑을 떠올리게 했다. 불국사 석가탑의 화려한 머리장식은 없었지만, 아래가 길고 위로 갈수록 짧아지는 균형미와 각 층 처마가 들린 산뜻한 모습이 아름다웠다. 무엇보다 천 년의 세월을 견딘 기품이 느껴졌다.

거돈사지 삼층 석탑 오른편에는 원공국사탑비가 있고, 뒤편에는 거돈사지를 조망할 수 있는 길이 나 있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원공국사승묘탑이 있다. 원래의 탑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관되어, 이곳에는 2007년 다시 세운 탑만 있었다. 이관 이유를 찾아보니, 일제강점기 때 일어난 일본의 만행 중 하나였다. 일본인들이 잘 만들어진 작품들을 마음대로 이곳저곳으로 옮겼다.

원공국사승묘탑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웠지만, 거돈사만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변화로 보였다. 지금은 텅 비어 있어 터만 남아 있지만, 한때도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습만 달라진 것뿐. 그래서 황량하기보다 고즈넉했다. 잎이 다 떨어진 느티나무가 폐사지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잘 어울렸지만, 잎이 무성한 봄에는 또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주변 폐사지들도 함께 보러 다시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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