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여행 1: 누군가를 기다리며
누군가와 약속이 있는 날은 아침에 조금 더 일찍 깬다. 무슨 얘기를 나눌까 잠시 생각도 하고, 여유 있게 도착해 함께하는 시간을 온전히 즐기고 싶어서다.
뮤지컬 빨래를 보러 간 날도 그랬다. 지하철이 혼잡할까 봐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나왔다. 30분 정도 여유가 생겨 약속 장소 근처에 있는 마로니에공원을 둘러봤다. 마로니에공원은 옛 서울대 터, 대학로 문화예술의 공간이기도 했지만, 오늘 내가 본 마로니에 공원은 조금 달랐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은행나무가 곱게 물들어 다른 사람들도 사진 찍기에 바빴다. 나무 주위에는 언제 들어도 좋은 말들이 있었다.
―오늘도 파이팅, 난 네 편이야, 항상 널 응원해, 꽃길만 걷자. 잘하고 있어, 혼자가 아니야, 행운을 빌어, 네가 최고야, 너를 사랑해.
마로니에공원의 이름은 익숙했는데 고산 윤선도 생가 터도 이곳에 있는 줄 몰랐다. 친구를 기다리며 돌에 새겨 있는 윤선도의 <오우가>를 읽었다.
―내 버디 며치나ᄒᆞ니~
다섯 벗, 수‧석‧송‧죽‧월. 맑고도 그치지 않는 물, 변치 않는 바위, 눈서리 모르는 소나무, 곧고 속이 비었으며 늘 푸른 대나무, 밝고 과묵한 달.
곧 만나게 될 친구와 함께, 내 주위의 한결같고 편안한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마로니에공원에는 장애인전용 그네도 있었다. 주변에서 많이 봤던 건 휠체어 통행로,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처럼 불편함을 덜어주는 것들이었다. 즐거움과 오락을 제공하는 시설도 있어야 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나를, 반성하게 되었다.
마로니에공원에서 마지막으로 본 건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셨던 김상옥 열사의 상이었다. 여기서 뵈니 감사한 마음과 함께,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잠시 생각해 보았다.
―남을 도우며 자신에게 떳떳한 삶을 살자.
마로니에공원을 충분히 둘러본 뒤 약속 장소에 가서 친구와 톡을 주고받으며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반갑게 맞이할 생각을 했다. 자주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여서 “잘 지내?”라는 말은 조금 어색하고……. 30분 일찍 온 덕분에 곧 만나게 될 친구를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는, 또 하나의 여행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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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여행 2: 출장지에서 본 보름달과 새벽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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