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마누라의 대단했던 기억력

내 마누라 탐구 생활 19편

나 또한 기억력이 나쁜 편은 아니다.



하지만 내 기억력은 오로지 내가 기억을 하고 싶은 나의 관심사 내에서만 국한이 된다.



가령 공부와 일적으로 내가 반드시 기억을 해야만 하는 것들을 내 기억 속에 저장해두는 정도이다.



그래서 마누라와 연애 초반에 초반에 힘들었던 적도 꽤 있었다.



마누라의 얘기로는..



"아니, 왜 그걸 기억을 못해?"라고 내게 묻지만 정말이지 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기억이 나지 않으니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마치 드라마에서 장금이가 "홍시 맛이 나서 홍시 맛이 난다고 했을 뿐!"이라고 했던 것처럼 나 또한 기억이 나지 않아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고 했을 뿐인데 연애를 하고 있는 여자 입장에서는 남자의 이런 답변이 '자신에게 관심이 없어서 기억을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서운해 하는 모양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을.. 아무리 기억을 쥐어 짜내보아도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은 역시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과거에 프랑스 시인이었던 모루아가 말했다.



'가장 놀라운 기억력은 사랑하는 여자의 기억력'이라고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관련된 디테일한 기억력은 웬만해서는 남자가 여자를 따라가기가 힘들다.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와 지난 주말 데이트를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알아도 그때 여자의 옷차림, 화장 상태 등 세세한 부분까지 기억하고 있는 남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나의 마누라는 이미 20년이 지난 우리의 첫 만남에서부터, 날짜별로, 순서대로, 몇 시쯤, 어디서, 뭘 하고 있었는지를 아직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심지어 그날 그날에 내가 입고 있었던 옷까지도 모두 기억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내게 기억이 안 나냐는 위험한 질문을 던져오면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 당연하지만 나는 당황하지 않고 슬기롭게 “당신, 그날 참 예뻤다. 내 기억은 그게 다다. 끝!”이라고 이야기를 해서 돌발적인 위험한 상황을 모면하곤 한다.

나의 마누라는 보통의 일반적인 사람들보다도 훨씬 더 기억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마누라가 지금은 비록 나이가 들어 예전만 못하다지만 과거에는 한번 기억했던 것은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는 그녀였다.

마치 복사기처럼 그 때의 그 상황과 장면을 머릿속에 사진을 찍어서 기억에 통째로 저장을 시켜버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 때 내가 붙여준 별명이 나의 '외장하드'였다.

밖에서 둘이 함께 있을 때 내가 기억을 꼭 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마누라에게 "이거 기억해!", "저거 기억해!"라고 해왔으니 말이다.


과거에 마누라가 서양화를 전공하고 그림을 그릴 때에도 물체에 빛이 비치는 그림자가 시시각각 달라지는데 오후 2시 정도에 비치는 그림자를 연상하면서 그림을 그렸다고 했다.


또한 마누라가 음식이나 요리를 잘 하는 이유도 한번 맛 본 것은 정확하게 기억을 하고 그 맛의 조합이 무엇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인지를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기억력 때문에 사실 마누라도 그동안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아무리 잊고 싶은 과거의 기억이라도 잊혀지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부부의 나이도 40대 후반으로 꺾이다 보니 이제는 마누라 폰으로 온라인 예배를 보고 있으면서도 "어? 내 핸드폰이 어디 갔지?" 할 때도 있고.. 냉장고 문을 열어 두고는 "어? 내가 뭘 꺼내려고 했지?"라며 건망을 떨 때가 있다.


그럴때는 내가 옆에서 "괜찮아, 냉동실에서 당신 핸드폰만 나오지 않으면 돼~"라고 위로를 해주고 있다.

그래, 마누라.. 그동안 고생 많았다.

이제는 잊고 싶은 기억들은 잊어버리고 우리의 좋은 추억들로만 머릿속에 잘 간직해보도록 하자꾸나~


p.s. 여보, 오늘 마침 주말이니 고스톱이나 한판 치세~

매거진의 이전글 마누라의 손, 그리고 반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