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누라 탐구 생활 20편
20년전 와이프..가 아닌 당시에는 연인 사이였던 마누라가 와인숙성 통 삼겹살집에서 내가 좋아하는 고기를 사주겠다며 자신의 집근처 커피숍으로 나를 불렀다.
당시 26살이었던.. 파릇파릇 했던 나는 연신내 사과나무 커피숍에서 지금의 마누라를 만났던 일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마누라는 녹차를, 나는 당시에 즐겨 마시던 카푸치노를 주문하여 한 모금, 두 모금 마시다가 마누라가 그 자리에서 뻗어 버렸다.
'아니,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이럴 때 나는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고기 사준다며.. 그렇다면 내 고기는..'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안되겠다. 고기는 포기해도 마누라부터 살려야겠단 생각으로 그렇게 마누라를 들쳐 업고 연신내 번화가를 가로질러 처가댁으로 뛰어가는 정신없는 상황에서도 주위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생생하게 들려왔다.
"어머, 어떻게.. 저 여자 많이 아픈가봐.."
시선을 돌릴 여유도 없었다.
업고 뛰고 있는 마당에 혹시라도 돌뿌리에 걸려 자빠질까, 실수로 마누라를 떨어뜨릴까.. 노심초사하였다.
힘겹게 다다른 처가댁에서 초인종을 쉴새없이 눌러댄다.
"딩동, 딩동딩동~ 딩동딩동~"
그렇게 처가댁 문이 열리고 장모님의 안내에 따라 마누라를 2층 본인의 방 침실에 눕혀 놓고 또다시 장모님의 친절하신 안내에 따라 1층으로 내려와 보니 나는 어느덧 식탁에 앉아 있게 되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식탁 위에는 내가 좋아하는 LA갈비와 함께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고 심하게 갈증을 느꼈던 나는 물을 한잔 주십사 청했다.
"많이 놀랬죠? 물 대신 이거 한잔 마셔요~"
장모님께서는 물 대신 대형 컵에 맥주를 하나 가득 따라 주셨다.
당시 처가댁 지인의 연주회 자리에서 한번, 이후 처가댁 식사 자리에서 한번, 그리고 이번에 세번째 부모님을 뵙게 되는 자리였다.
이 때까지는 장모님께서 내게 말씀을 낮추기 어려워 하셔서 내게도 존댓말을 해주셨던 때였다.
벌컥벌컥.. 거의 원샷을 하다시피 맥주를 마셨고 맥주 잔이 비워지자 장모님께서는 친절하게 맥주를 또 리필해 주셨다.
'맥주 무한리필 집인가? 아니다.. 여기는 내 여자친구의 부모님댁이고 지금 내 여자친구는 위독한 상황이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장모님과 장인어른께서는 차려둔 음식들이 식으니 내게 어여 식사를 들라고 하셨다.
'저기요~ 아버님, 어머님.. 지금 이 집 따님이 생사를 알 수 없는.. 아니 많이 아픈 상황입니다.'
그 분들은 태연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그리고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나는 먹어야만 했다.
평소에 그토록 먹고 싶어도 먹기 힘들었던 LA갈비를 들고 뜯고 뱉고.. 들고 뜯고 뱉고.. 몇번을 반복하니 어느덧 접시가 비었다.
'연륜이 많이 쌓이면 이 정도 경지에 다다를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따님이 집에서 내놓은 자식인 것인가.. 아니면 평소에도 이런 상황이 자주 발생하고 있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계신 것인가..'
아직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저기.. ㅇㅇ는 괜찮을까요?"
"너무 걱정하지 말게~ 한숨 푹 쉬면 괜찮아질거야~"
'어떻게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있지? 걱정이 된다.. 나는 걱정이 된다.. 부모님들은 정말 따님이 걱정되지 않는 것인가? 내가 있어서 앞에서 애써 태연한 척을 하고 계신 것인가?'
그 분들은 계속 태연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허겁지겁 입으로 먹는지, 코로 먹는지 모르게 식사를 마치고 부모님들께 ㅇㅇ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를 남기고 자취를 하고 있던 내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후 나에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던 부모님 말씀에도 '나는 계속 걱정이 된다.. 부모님들은 정말 따님이 걱정되지 않는 것인가? 내가 있어서 앞에서 애써 태연한 척을 하고 계셨던 것인가?' 반복되는 생각에도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하루가 지나 토하고 푹 자고 마누라가 멀쩡히 살아났다.
살아난 마누라에게 그때서야 자초지종을 듣게 되었다.
늦가을에 감기가 들어 감기약과 더불어 타이레놀을 먹었고 4시간 이후에 다시 먹어야 할 타이레놀을 4시간이 안되어 다시 먹었더니 이 사단이 일어났다고 한다.
나는 한때 사랑이가 다 썩어 밤새 통증을 잊기 위해 6시간 동안 타이레놀을 11개를 씹어 먹었는데도 멀쩡했는데 사람에 따라 정해진 양을 초과하면 심각하게 안좋아지는 케이스도 있는 모양이다.
결혼을 해서도 내가 예전에 겪어봤을 때 괜찮았다고 하여 그 잣대를 마누라에게, 자식들에게 들이대는 것이 100% 맞는 일이 아닐 수도 있음에 대해 경각심을 갖자는 차원에서 이야기를 해 본 것이니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p.s. 20년을 같이 살다 보니 이제는 나도 연륜이 쌓여서 그런지 이 정도 일에는 전보다는 편히 넘어가는 편이다.
진짜로 마누라가 죽을 뻔한 일들을 몇번이나 겪어 본 지금이니까 말이다.
부디 이 글을 읽는 분들이 큰 일을 겪기 전에 처자식을 위해 보다 더 신경을 써주고 잘 대해 줄 수 있는 당신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