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 탐구 생활 39화
엊그제 10년만에 남편과 함께 경상남도 진주에 다녀왔다.
남편이 웹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진주 직업학교에 다녔을 때 친했던, 지금은 목사님이 되신 형님의 아버님께서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처음엔 진주에 사는 친구에게 대신 참석하여 조의금을 부탁할 예정이었으나, 그 친구가 하필 코로나에 걸려 우리가 직접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그 친구는 회사에 다니지 않는 일을 한다.)
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 형님께서도 우리 시아버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서울까지 와주셔서 조의금도 넉넉히 해주셨기에 가야만 했던 자리였다.
회사에 사정을 얘기하고 반차를 내어 양해를 구하고서, 12시까지 회사로 오라는 남편의 말에 시간 맞춰 도착을 했다.
새로 이전한 사무실에서 사장님과 실장님께 인사를 드리고 편의를 봐주시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서 12시 20분에 출발을 했다.
회사에서 진주까지는 330km... 혼자 운전해야 하는 남편에게 빡센 거리였다. 이럴 땐 운전면허가 없는 나로선 미안하기 그지 없다...
아침에 준비하느라 사과 1/4밖에 먹지 않은 나는 배가 너무 고프니 휴게소에서 유부우동 하나만 먹기로 하고 일단 달렸다. 다행히 평일이라 차가 많지 않아 정체되는 구간은 없었다.
그렇게 달리고 달려 1시 반쯤 기름도 넣을 겸 휴게소에 들렀다.
난 우동 하나를 다 못먹는다. 우리는 부부는 워낙 소식을 하기에 둘이서 우동 하나면 딱이다.
다 먹고 기름을 꽤 많이 넣었지만 회사에서 진주, 진주에서 우리집까진 왕복 700km... 남편이 나중에 기름을 더 넣어야 할 거라 한다. ㅠㅠ
그렇게 또 달리는데 밥을 먹어서 졸렸는지 남편이 아무래도 휴게소에 한 번 더 들려 세수라도 한 판 해야 되겠다길래 그러자고 했다. 세수하고 나온 남편이 졸려우면 안 되니까 겉옷까지 벗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계속 달리고 달려 5시 반에 장례식장에 겨우 도착~ 나나 남편이나 그 지인 형님은 4년 만에, 사모님은 12년 만에 만나는 자리였다.
목사님이신 형님은 가족들에게 우리가 서울에서 왔다고 강조를 하시며 소개를 해주셨다. 돌아가신 형님의 아버님께서도 집사님이셨기 때문에 장례식은 교회장이었다. 국화꽃을 한 송이 놓고 목례를 하는데 그 전날 잠을 너무나도 못자 어지러운 난 아주 살짝 비틀거릴 수밖에 없었다. ㅠㅠ
조의를 마치고 식사를 하게 됐는데, 내 경우 수면제를 먹고도 잠을 너무 설치면 손을 떠는 경우가 있다. 아뿔사... 잠도 제대로 못잔 상태에서 남편이 졸까봐 옆에서 자지 않고 꼬박 5시간 넘게 차를 타고 오다보니 너무 피곤했나 보다. 다른 때보다 손이 더 떨려오기 시작했다.
남편과 형님의 오랜만의 회포를 푸는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올 줄 알았으면 절대 만류했을 거라고, 이 먼 길을 오면 어떡하냐고, 고맙지만 맘이 편치 않다고... 남편은 당연히 와야 될 자리였다 했고 나도 그렇다 말씀을 드렸는데... 속으로 난 이걸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목사님이시기에 차라리 솔직하게 얘기를 하는 게 낫겠다 싶어, 내게 그간의 안부를 물으시는 자리에서 인사를 받고 어제 제가 너무 잠을 설쳐 제 수전증이 오늘 좀 심하다는 말씀을 드렸다. 남편은 그제서야 알고서 내가 수면제와 신경 정신과 약을 먹고 있어서 그렇다는 상황을 알려드렸다.
그리고 왜 그렇게 됐는 지도 말씀드렸다. 이전 집에서 너무나도 심한 환청과 환각을 경험했다는 것을... 남편은 그간 있었던, 내가 얼마나 그걸로 시달렸는 지를 얘기했다. 형님은 좀 놀라시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이유가, 남편이 하나님을 믿기 위해서라면 내가 나를 바칠 테니 날 들어서 써주십사는 위험한 기도를 했기 때문이라 것도... 목사님인 형님은 "그만큼 너무나 절실했군요."라고 날 인정해 주셨다. 그러니 손 떨리는 거 부끄러워 말라고, 오히려 그걸 자신이 이상하게 생각한다면 그건 자신이 부끄러운 거라고...
그 분이 그러시길 그런 현상이 오는 것은 세 가지 이유라 한다. 심리적인 이유와 육체적인 이유, 영적인 이유가 있는데 난 영적인 이유같다고. 그리고 내가 영적으로 민감한 사람이라고...
자신이 경험했던, 그리고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들도 들려주셨다. 기도를 어떻게 해야하는 지도, 반대로 사람을 대할 땐 어떻게 해야하는 지도 얘기를 해주셨다.
그리고 이제는 남편이 집사가 되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에 무엇보다 좋아하시는 것 같았다. 남편을 오래 봐왔던 형님은 남편이 참 이성적이고 자기 자신을 참 믿었던 사람이었단다. 그런 남편이 이젠 하나님을 믿는다니... 뿌듯하셨을 것 같다. ^^
마지막으로 은혜 넘치는 축도를 받고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중에 집에 와서 들었는데 형님 내외분께서 우리 부부를 위해 기도를 많이 해주신다고 하신다. 감사하기 그지 없다~
그렇게 7시쯤 우린 출발했다. 아직 진주에서 살고 있는 남편 친구들을 볼 시간도 없었다. 네비를 찍어보니 집까지 11시 반 도착... 내일 바로 회사를 나가야 하는 남편을 위해선 서둘러야 한다!!
깜깜한 밤... 남편만 알고 있는 사실인데 난 야맹증 좀 비슷하게 있어서 도로에서 밤길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낮에는 보이는 길이 밤에는 아는 길인데도 커브길 같은 게 잘 보이질 않는다. 그래서 내가 운전면허를 따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울 남편은 밤에도 운전을 넘 잘 한다. 출발해서 처음엔 내 눈에 길이 보이질 않아 너무 불안했는데 조금 지나니 웬일로 길이 보이길래 그때부턴 나도 남편에게 맡기고 밟는 대로 놔두었다. 1차선에서 남편은 어지간한 차는 다 제껴버렸다.
남편이 친정 부모님이 걱정하실 거라며 전화 연락을 드리라면서, 우리가 연애할 때 고속버스를 타면 항상 들리던 금산 인삼랜드 휴게소에 간 것 빼고, 남편은 논스탑으로 집에까지 왔다. 시간은 정말로 11시 반... 차에서 내리니 다리가 후달렸다.
결국... 아빠께서 차 조수석에 앉아서 자면 안 된다는 얘기를 어렸을 때부터 엄마한테 들었던 나는, 어제 잠을 설쳐 피곤한 상태에서 단 한 번도 눈을 감지 못해서인지 집에 오자마자 옷만 갈아입고 머리에 심한 현기증을 느끼며 쓰러져 버렸다. 화장도 지울 수가 없었다. 눈을 뜨고 있으니 세상이 다 빙빙 도는 것 같았다.
남편한테 양해를 구하고 난 한동안 눈을 감은 채 쉬어야만 했다. 혼자 조촐하게 뒷풀이를 하고 나와 얘기를 좀 나누던 남편도 뻗어버렸다.
그래도 10년 만에 진주에 가니 좋긴 했다. 남편은 경황이 없어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했다는데, 진주엔 서울과 다른 지방의 정취가 있어 내겐 좋았었다.
다음에 언젠가 또 진주에 가게 되면 남편에게 절대 차를 못갖고 가게 할 생각이다!! 그리고 절대!! 혼자 자가운전으로 당일치기는 하지 말기를!!
울 남편, 진주까지 왕복 10시간이나 혼자서 운전하느라 너무 고생했어요~ 오늘도 푹~~~ 자고 주말엔 더 기절해서 잘 쉬어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