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로망대로 입히는 건

by 보리차
폴로 랄프로렌 공식 홈페이지



"네가 원하는 스타일의 옷 좀 골라줘."
그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 순간 설레었다.
그에게 한 번도 말한 적 없는 로망이 있었다.
폴로 랄프로렌 포플린 블루 스트라이프 셔츠.
네이비색 면바지,
갈색 벨트.

왜 이렇게까지 구체적일까 싶긴 하지만
10년이 넘도록 바뀌지 않은 취향이다.

깔끔하고 단정하지만
허투루 입은 게 아니라는 느낌.
색은 파랑, 회색, 흰색, 검정, 그리고 조심스럽게 고른 파스텔 정도.
브라운은 특히 신중해야 한다.
조금만 어긋나면 우중충해지니까.

그는
내가 원하는 게 뭔지 궁금해한다.
그리고 기꺼이 바꾸려고 한다.


그의 취향대로 자유롭게 살도록 하고 싶었는데

자꾸 나의 문을 두드린다

누가 내 옷을 골라주는 건 처음이라며
기뻐하는 그 앞에서
조심스러운 욕심이 난다.


내가 골라줘도 될까.
내 취향이 그의 옷깃에 머물러도 괜찮을까.
그의 옷장에서
그의 기억 속에서

아마 모든 곳에서
내가 한 겹씩 쌓여가도 되는 걸까.

사랑이란 건
내가 조금씩 스며드는 과정을
조심스럽게 허락받는 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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