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황찬란한 감옥
우연한 계기로 같은 결을 지닌 일곱 분과 함께 글쓰기 모임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시를 주로 써오던 저는 이번엔 소설을 선택했습니다. 제 삶의 특정한 사건(Plot)을 서사(Narrative)를 통해 새롭게 바라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시를 쓰고 해석을 덧붙이는 작업도 흥미롭지만,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서는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지난 모임에서는 ‘가방’과 ‘밤’이 글쓰기 주제로 정해졌습니다.
말로만 듣던 명품 가방의 가격을 처음 알게 된 건 2007년 6월, 여주 프리미엄아울렛이 문을 열었을 때였다. 햇살 좋던 봄날, 오랜만의 나들이에 들뜬 아이들과 아내는 엉뚱한 끝말잇기로 깔깔거리고 있었다.
"가방!"
"방해."
그 다음은?
운전대를 잡은 나는 ‘해 질 녘’과 같은 더 이상 이어질 수 없는 단어들을 떠올리고 있을 때, 아내가 불쑥 퉁명스럽게 말했다.
“남들 다 있는 명품백 나도... 하나는 갖고 싶어”
이미 여러 번 들었던 말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아내의 눈빛에는 진심이 서려 있었고, 목소리는 무겁고 진지했다. 나는 애써 웃으며 “그런 게 왜 필요해?”라며 꼰대 레퍼토리로 넘겼지만, 마음 한편에는 알 수 없는 안타까움이 자리 잡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명품백을 단지 일반 핸드백보다 세 배, 네 배쯤 비싼 여성들의 사치품 정도로 여겼다.
아내의 말이 과장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내 또래의 여성들 대부분이 명품백을 한두 개씩 갖고 있다면, 나는 참 나쁜 남편이 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에 사로잡힌 끝에, 아내 몰래 삼백만 원이 육백만 원이 된 주식 계좌에서 50만 원을 꺼내 선뜻 건넸다. 선의에서 비롯된 작은 배려였다.
“당신이 갖고 싶어 하던 가방, 이걸로 사.”
아내는 기뻐했지만 곧 웃음을 거두었다.
“명품 가방은 기본이 300만 원이 넘어…”
그리고는 그 돈이 어디서 났냐고 추궁하기 시작했다. 나는 두 번 당황했다. 첫째, ‘세상에, 가방이 300만 원이 넘는다니?’ 둘째, 아내가 돈의 출처를 캐물을 줄은 몰랐다. 머리 좋은 아내에게 거짓말할 이유도 없었고, 도둑질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주식에서 50만 원 벌었어.”라고 대충 얼버무리고 말았다. 구체적으로 말했다면, 그 돈은 아내의 낡은 가방 속을 채웠을 것이다.
여자들의 긴 줄에 뻘쭘하게 서서 명품 매장에 들어선 나는, 가격표를 확인하는 순간 아내의 말씀이 옳았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여자들의 허세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아내 말대로 모든 여자가 명품백을 하나씩 들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의심에, 아내가 옷가게로 들어가 쇼핑하는 동안 나는 주변 여성들의 가방을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젊은 여자든, 나이 지긋한 여자든 하나같이 루이뷔통, 프라다, 샤넬 가방을 메고 있었다. 누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가방은 마치 그녀들의 ‘소망’처럼 보였다. 명품 하나가 한 사람의 삶을 대신 말해준다는 것을 그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아내는 과장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의 자존심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억지를 부릴 핑계를 찾던 나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도… 여긴 여유 있는 사람들이 주로 다니는 프리미엄 아웃렛이잖아?’ 그래서 그런 걸 거야...
그 이후에도 나는 거리에서, 학교에서, 어쩌다 가는 교회에서… 놀랍게도 그 값비싼 사치품을 당당히 어깨에 걸친 여자들을 발견하고 말았다. 나만 명품가방 하나 없다는 아내의 말은 옳았고, 모든 남자들이 아내에게 선물하는 그 명품백을 나만 사주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나쁜 남편으로 낙인찍히기 싫었던 나는 시를 통해 강렬한 뒤끝을 보여주고 말았다.
휘황한 가방 속은
언제나 밤이다
목숨 값과 견주는
순금 열 냥의 무게
그 잔인함 속에
인간은 욕망을 채운다
짧은 밤이 지나
어제는 오늘이 되고
가방에 채워진 건
차갑게 식어버린 공허
번쩍이는 자물쇠로
허무의 실체는 감췄지만
깊은 어둠 속에
그들도 함께 갇혀버렸다
사진의 이미지는 Gemini에서 생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