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되지 않는 행운

플로깅으로 이어지는 국제 교류

by 닥터플로

삶이 계획대로만 흘러간다면, 계획과 그것을 실행하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지루해질 것이다

환경봉사활동(플로깅) 누적으로 발급된 봉사증

앞날을 정확히 예측해 감당 가능한 수준의 계획을 세우고, 그 궤적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따라간다면 불확실성의 위험은 어느 정도 제거될 수 있겠지만,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얻어지는 즐거움 또한 동시에 사라질 것이다. 다행히 우리는 앞날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으며, 설령 치밀하게 계획을 세운다고 한들 그것을 끝까지 실천해 나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만약 치밀한 계획과 실천으로 다가오는 미래가 확정된다면, 그 지루함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 어쩌면 모든 생명은 죽음이라는 필연적인 종착지를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죽을 위험을 최대한 회피하여 고통스러운 짧은 삶이라도 연장할 수 있도록 진화했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사유를 확장하고, 계획이라는 도구를 통해 온갖 위험 속에서도 겨자씨 같은 희망으로 버텨낸다. 그리고 그 위험을 모면한 찰나를 행운이라고 부르며 안도한다.


정리하자면, 인간은 확실한 미래를 원해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한 삶을 끝까지 견디기 위해 계획을 세우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지난 글에서 이야기했듯이, 매일 주워도 다시 생겨날 쓰레기를 치우는 행위 또한 그러한 삶의 태도가 반영되었던 것이다. 계획대로 되지 않더라도 그 과정을 반복하는 사이에서 보람을 얻고, 같은 생각을 가진 동료들과 연결되며, 생각하지 못했던 행운이라는 결과를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인적 성찰은 아침 운동과 더불어 습관이 된 플로깅의 동기가 되었고, 직장 동호회인 '섬강 푸른 교실' 조직과 교원들로 구성된 'IB 연구회' 운영에 환경 관련 지속가능교육(ESD)을 제안하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졌다. 동료들과 함께 땀 흘리며 달리는 플로깅을 통해 행정실장으로서 교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교육과 행정의 협력 모델을 제시하게 된 것이다.


이 소통의 과정은 우리 주변의 정화 활동을 넘어, 미래 교육의 핵심 역량이라 불리는 6Cs(Critical Thinking, Collaboration, Communication, Creativity, Character, Citizenship)를 학생들이 삶의 현장에서 직접 체득하게 하는 '탐구·실천 기반 프로그램' 기획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지난가을 태국 탐마삿초등학교와 국제교류 활동과 연계된 플로깅 체험에 함께한 학생들은 지역의 문제를 자신의 삶과 밀착된 과제로 인식하고 공동체의 책임을 배웠으며, 교사들은 지식 습득을 넘어선 교육의 실천적 가치를 경험했다는 소회를 전해왔다.


https://www.youtube.com/shorts/EVijaU_l0gA

태국 학생들과 함께한 소금산 플로깅 활동(2025년 10월 29일)

이어 행정과 교육이 협업하여 설계한 작은 실천의 장은 태국교류를 넘어 이웃나라 일본으로까지 연결되었다. 플로깅 모임에 있던 세 학교의 교사 네 분과 함께 일본 나카노쇼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의 초청을 받아 국제교류의 사전답사를 겸한 교류수업에 함께 참여하게 된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sAcTHWUlw2Y

나카노쇼 소학교 방문기(2026. 1. 19.)

우연한 기회에 의기투합하여 만들어진 우리 팀이 호텔에 도착했을 때, 교장 선생님을 비롯한 학교 관계자들이 직접 마중 나와 우리를 환영해 주셨다. 다음 날 나카노쇼 초등학교 교장실에는 유네스코 관계자, 교육장, 참관을 위해 나가노에서 온 교사들, 그리고 방송국 취재진까지 자리를 함께하고 있었다. '환대'라는 말은 아마도 이런 순간을 위해 만들어졌을 것이다.


교장실에서의 환담을 마친 뒤 체육관으로 이동하자,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교직원들과 학생들이 합창으로 우리를 맞아 주었다. 눈앞에서 목격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골든(Golden)에 맞춘 아이들의 신나는 말춤은 지금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K-컬처의 위상을 실감케 한 그 정겨운 환영은 우리 팀 모두에게 벅찬 감동이었다."


환영식 이후 우리는 5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지등 만들기와 전통놀이(비석치기, 제기차기, 공기놀이) 수업을 진행했다. 교육행정직인 내가 수업에 참여하는 것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참여한 교사들 모두가 최선을 다했고, 나 또한 제기차기 시범을 보이고 일본 학생들의 이름을 한글로 적어주며 수업에 작은 도움이 될 수 있었다. 이후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한국의 전통놀이에 빠져들었고 두 시간의 수업시간 동안 우리가 준비한 것보다 훨씬 많은 것들이 오고 갔다.


이어 교장실에서 간소한 급식으로 점심 식사를 마치자, 우리를 위해 교토에서 오신 다도 선생님이 전통 말차를 눈앞에서 직접 만들어 대접해 주셨다. 차와 함께 내어준 달콤한 떡은 말차의 쓴맛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마치 지난날의 경직된 한일관계를 어우르는 듯한 그 조화로운 맛은 지금도 부드러운 혀끝에 생생히 남아있다.


우리는 화기애애한 차담회에서 한 시간여 동안 각국의 교육 현안과 미래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눈 뒤, 교장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학교 시설 곳곳을 둘러보며 특수학급을 포함한 전 학년의 수업 과정을 참관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오래된 시설에서, 학생 개개인에게 지급된 노트북으로 디지털 교과서를 능숙하게 활용하는 모습이었다. 시설은 낡았으나 빈틈없이 관리된 단정함이 돋보였고, 전통의 가치를 지키면서도 시대의 흐름을 신속하게 수용하는 그들의 교육 현장은 우리에게 '지속가능한 교육'의 본질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던져주었다.


수업이 끝난 오후 시간, 저학년 아이들과 교사들이 함께 손걸레로 복도 바닥을 닦는 모습은 이제 우리에겐 사라진 낯선 풍경이자, 나의 어린 시절 '국민학교'의 추억을 소환했다. 아마도 이러한 일상의 실천이 교육을 통해 체화되면서 아이들은 자기의 지역을 아끼는 성숙한 성인으로 자라났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일본의 거리에서 쓰레기를 찾아보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교류 수업을 마친 뒤에는 교육청에서 지원한 버스를 타고 교육청 관계자와 함께 시코쿠추오시의 전통 종이 연구소와 유서 깊은 가와고에성을 둘러보았다. 마침 월요일이라 휴관일이었음에도, 우리를 위한 그분들의 세심한 배려 덕분에 우리 지역의 한지와는 또 다른 결을 가진 일본의 종이 문화, 그리고 그것이 미래 산업으로 연결되는 현장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손을 흔들며 끝까지 배웅해 주시던 교직원들의 모습에서 짧은 방문의 아쉬움을 넘어 오래 알고 지낸 이웃의 온기를 느꼈다.

일요일 연재